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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 Sara Dec 22. 2022

촌스러워도 괜찮아

구사일생한 온수매트 이야기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온수 매트를 꺼냈다. 사실은 몇 년 전에 버려질 운명이었는데 남편 덕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장롱 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겨우 목숨만 붙어있던 것이다. 



나는 버리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어떤 물건을 더 이상 쓰지 않고, 앞으로도 쓰지 않을 것 같다는 결심이 서면 그 순간부터 그것에 미운 털이 박히기 시작한다. 그냥 원래 있던 그 자리에 있는 것뿐인데도 눈에 가시처럼 신경이 거슬린다. 그런 것들은 바로 비워줘야 제맛인데 그럴 때는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우리 집 방해꾼 남편이다. 나와는 반대로 버리는 것이 참 힘든 사람. 



첫째가 갓 태어났을 때 썼던 온수 매트는 한참 동안 쓰임 받지 못했다. 그 자리에 아이들 매트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고이 접혀서 장롱 안에 들어가 있던 온수 매트는 문을 닫을 때마다 골치 덩어리였다. 부피가 커서 좁은 장롱에 제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래서 늘 서재 안 장롱문은 제대로 닫히지 않았다. 참다못한 내가 큰맘 먹고 버리겠다 선언하던 날,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던 남편이 며칠 후, 어디서 커다란 흰 봉지를 구해왔다. 그리곤 매트를 차곡차곡 접어 봉지에 넣더니 내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올려 두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올해. 작은 아이가 다섯 살이 되면서 집에 있는 아이들 매트를 모두 치워버렸다. 로봇청소기를 돌릴 때마다 접어서 치워두는 것도 귀찮았고, 무엇보다도 이제 아이들이 어느 정도 말이 통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잘 뛰는 아이들도 아니라 매트 없이도 층간 소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아무것도 깔리지 않은 맨바닥에서 지내는 첫 겨울. 둘째와 세트로 감기에 걸리면서 둘이만 따로 잘 일이 생겼다. 어떻게든 첫째는 지켜야겠기에. 



거실에 뭐 깔고 잘만 한 것이 없나 두리번거리다가 장롱 위에 처박아둔 온수 매트가 기억이 났다.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꺼냈는데. 역시나, 촌스러웠다. 몇 년 전에 버리려고 마음먹었던 데에는 쓰지 않기 때문도 있지만, 커버가 너무 촌스러웠던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거실 중앙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알록달록 매트 커버를 보고 있자니 견디기 어려웠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뜨끈뜨끈한 바닥이 괴로운 마음을 상쇄시켜주었다. 



감기만 나으면 얼른 치우자 했던 그 온수 매트는, 그렇게 한 달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나와 함께 하고 있다. 결혼하고 아파트에 살면서 가스비 걱정 때문에 한 번도 방바닥이 이렇게 뜨거워 본 적이 없는데, 온수 매트 위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아이들 보내놓고 여유로운 오전 시간에는, 과자 한 봉지 뜯어서 배 깔고 누워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 행복이 뭐 별건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저녁이면 다 같이 그 위에 오순도순 모여 앉아 아이가 좋아하는 보드게임도 같이 하고, 책도 함께 읽는다. 각자의 공간에 있던 식구들을 모으는 사랑방이 되었다.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이 늘었다. 이렇게 좋은 온수 매트를, 생긴 것만 보고 내다 버릴 뻔했다. 내 구박을 견뎌내며 온수 매트를 지켜낸 남편이 참 고맙다. 여보, 이젠 촌스러워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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