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이루어진 꿈에 대해
아주 오래전부터 내 꿈은 선생님이었다. 한때 작가로 잠시 꿈을 바꾼 적이 있었지만 재빠르게 현실(고등학교만 가도 나보다 글 잘 쓰는 사람이 널렸구나)을 인지하고 돌아왔다, 원래 내 꿈으로.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것이 재미있고 좋았다. 그리고 누군가의 인생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일이라면 충분히 인생을 걸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원래는 사범대학에 가려고 했는데 초등학교 교사가 더 낫다는 아빠의 말에 마음을 바꿨던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라고 하면 핑계려나.
그런데 시대가 그랬다. 어느 때보다도 교대의 인기가 많았던 시절이었다. 가, 나, 다군 세 군데를 지원할 수 있었는데 교대는 단 한 군데밖에 지원하지 못했다. 다군에는 쓸데가 잘 없었고, 가군과 나군 두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수능을 망친 내 자신감은 바닥이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원서를 잘못 썼다가는 재수를 하기 십상이었다. 그런 도박 같은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아서 저 멀리 경쟁률이 그나마 낮을 것 같은 지방 교대에 원서 하나를 썼다. 그리고 나머지는... 지금은 나의 모교가 된 곳. 생뚱맞게도 법학대학이었다. 그냥 내 최후의 보루 같은 곳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이 학교를 선택하긴 했지만, 점수가 낮은 학과는 지원하고 싶지 않았던 스무 살에서 한 달이 모자랐던 열아홉의 치기, 몹쓸 자존심.
그리고 그 쓸데없는 오기의 대가는 가혹했다. 대학시절 내내 시간 낭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선생님이라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교직이수를 하긴 했지만, '일반사회'라는 과목은 적게 뽑는 만큼 경쟁률이 치열했다. 그래서 도전해 볼 생각도 하지 않고 포기부터 했다. 괴로워하는 내 모습을 보며 교대에 편입하라는 조언을 해 준 이가 있었다. 그런데 또 제도가 바뀌어 그마저도 어렵게 되었다. 차라리 수능을 다시 보라는 말도 들었지만, 도저히 그 시험공부를 다시 할 자신이 없었다. 이제 와서 다시 돌아가기엔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다. 실패가 두려웠다.
그렇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간 내 인생. 어쩌다 보니 영어와 연이 닿아 졸업 후에 어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다. 조금 마음이 단단해져서 교육대학원을 가야겠단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물론 계획대로 되진 않았다. 예정에 없던 응용언어학을 공부하게 됐고, 그 후엔 남편을 만나 결혼하며 길고 길었던 내 고민은 종지부를 찍었다. 아이 둘을 낳고 키우는 것만으로도 바빴으니까. 그냥 주어진 현실에 충실, 혹은 순응했다.
그래서 '선생님'이라는 단어가, 그 자체만으로도 이렇게 애틋하다. 평생 이루지 못한 꿈, 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이루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육아에 집중했던 그 몇 년을 제외하고, 난 늘 누군가에게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이라고 불리며 살았던 시간이 훨씬 더 많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무 살일 때부터 교회 주일학교 선생님을 계속해서 맡아왔었다.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칠 때도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 인스타에서 엄마들의 영어를 도와주는 모임을 만들고 나서부턴 '사라쌤'이라고 부르는 분들이 제법 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눠주고 더 좋은 방향을 제시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였다. 그리고 10대와 20대의 나에게 그런 사람이 되는 길은 선생님이 되는 것뿐이었다. 선생님이 돼야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서른을 훌쩍 넘어 마흔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가 되어 보니, 이제야 알겠다. '선생님'이라는 이루지 못한 꿈에 매여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인다. 선생님이 되지 못했어도, 나는 이미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있다. 내가 읽고, 배우고, 실천한 것들을 교단에서가 아니라 sns에서 나누고 있다. 오히려 어떤 한 과목의 선생님이 아니라 제한받지 않고, 나누고 싶은 것을 마음껏 나누고 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 도움을 주고 누군가의 삶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일을 나는 지금도 하고 있다.
내가 쓸데없는 자존심을 세우지 않고, 오기를 부리지 않았더라면. 임용시험을 보기 위해 조금만 더 용기를 냈더라면. 나에게는 분명 지금과는 다른 삶이 펼쳐졌겠지. 그리고 선생님으로 사는 삶 속에서도 난 행복했을 거다. 그 안에서 나만의 길을 분명 찾았을 테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걸 했을 테니까.
마찬가지로, 교사인 '선생님'이 되지 못한 지금의 나도, 지금의 내 삶도 나에게 소중하고 만족스럽다.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힘들어했던 20대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 30대인 내가 있다. 후회하면서도 용기 있게 도전하지 못했던 그때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은 좀 더 용감해질 수 있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지나온 나의 모든 시간들이 소중하다. 지금의 나를 만든 순간들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