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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 Sara Jun 01. 2023

새벽 1시, 중환자실에서

이렇게 또 인생을 배운다


며칠 입원하며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사설 구급차를 불러 대학병원으로 향했을 때까지도, 이렇게 큰 위기인지 알지 못했다. 응급실에는 보호자 1인밖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남편에게 급히 입원 짐을 챙겨다 달라고 부탁했다. 병원으로 나가기 직전, 혹시 모르니 입원 짐을 챙겨가 보라는 엄마 말에 막연히 입원을 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었나 보다. 입원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는데,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게 된다니 그게 좀 당황스러웠다. 며칠간 병실에서 보낼 지루한 시간이 걱정되어 이북 리더기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이는 수요일에 양치질하러 가면서 화장실 바닥에 미끄러져 넘어졌고, 머리에 큰 혹이 났다. 그날 밤 찍은 엑스레이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찢어진 곳에서 피가 났는데 그마저도 상처가 크지 않아 꿰매지 않고 지켜보기로 결정했을 정도다. 혹시 몰라 집에서 지켜보기로 한 다음 날 저녁, 그 좋아하는 티니핑 보는 것도 마다하는 아이의 모습에 다시 응급실을 찾았다. 그 전날에는 아이에게 좋지 않다는 말에 패스했던 CT를 찍어보니 골절과 출혈이 있다고 했다. 사설 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는 괜찮아졌는지 티니핑 노래를 부르며 놀았는데, 담당 의사가 몇 번이나 다녀가며 어린데 고생하겠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때 알았어야 했다, 우리에게 닥친 위기를. 아무것도 몰랐던 우리는 담담하게 사설 구급차에 올라 대학병원으로 향했고, 아이는 가는 동안 티니핑을 보며 즐거워했다. 



바로 입원실로 갈 줄 알았는데, 우리가 안내받은 곳은 응급실이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아이는 처음부터 겁먹고 다른 병원에 가자고 울먹였다. 그전 병원에서 찍은 CT를 보고 심각해진 의사는 좋지 않은 위치에 출혈이 있다고 말하며, 당장 MRI를 찍어 보자고 말했다. 겁먹고 울고 있는 아이를 겨우 달래고 설득해서 MRI를 찍었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상태가 심각해서 중환자실에 들어가야 하고, 상황에 따라서 바로 응급수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 아닌가. 그런 것은 다 차치하고 중환자실에는 보호자가 같이 들어갈 수 없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와중에, 나도 이해할 수 없는 이 상황을 아이에게 납득시켜야 했다. 떼를 쓰는 것도 아니고 숨죽여 우는 아이 모습에 가슴이 저려왔다. 다행히 아이의 반응을 체크해야 하는 것 때문에 나도 함께 들어갈 수 있었다. 새벽 1시 중환자실. 가슴에 이것저것 주렁주렁 달고 지쳐 잠든 아이를 1시간마다 억지로 깨워가며 이름을 물어보고, 손을 올릴 수 있는지 체크했다. 조금만 반응하지 않아도 응급수술에 들어가야 했으니까. 그렇게 이틀을 보내고 일반 병실로 내려왔다. 고비는 넘겼지만, 머릿속 피를 빼내는 수술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또 결정해야 했다. MRI는 아침 9시가 되기도 전에 찍었는데 그 결과가 종일 나오지 않아 피 말리는 하루를 보냈다. 다행히 수술 없이도, 한 달간 지켜보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그렇게 2주. 병실 침대 위에서 곤히 잠든 아이 얼굴을 볼 때마다, 집만큼 편하지도, 놀 것이 많지 않아도 엄마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게 웃는 아이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바쁘다는 핑계로 당연시하고, 소홀히 했던 소중한 것들이 내 곁에 아직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내 인생에서 진짜 소중한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도. 나에게 소중한 만큼, 나의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 행복한 길임을 깨달았다. 지루하고, 별 보잘것없어 보이던 일상이 미치도록 그리웠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고통을 경축함은 고통이 선해서가 아니라 그 문제를 통해 기도하며 함께 우리가 떡을 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괴로움의 순간도 하나님께 올려 드릴 수 있다. 우리는 감사로 하나님께 그 문제를 올려 드린다.


헨리 나우웬의 <예수의 길>에 나온 문장처럼 같은 마음으로 손 모아 마음 모아 기도해 준 사람들. 그들이 있었기에 이 시간들을 견뎌낼 수 있었다. 나를 괴롭게 하는 상황은 바뀌지 않았고, 고통도 그대로였지만. 그저 그 자리에 함께 있어줌으로, 따스하게 건네는 말 한마디로. 혼자가 아니라 같이 견딜 수 있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대단히 큰 도움이 아니다. 나도 함께 기도하고 있다는 위로, 괜찮냐는 사소한 말 한마디, 힘들 때 마시라며 건네는 커피 한 잔. 외면하지 않고 돌아보는 그 마음. 한없이 낮아져보니 알겠다. 어떻게 마음을 전해주어야 할지 배웠다. 겪어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들. 이렇게 또 인생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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