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궤도 3기
관객의취향에서는 매일매일 글쓰는 모임 '글의궤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글의궤도 멤버들의 매일 쓴 글 중 한편을 골라 일주일에 한번씩 소개합니다. 아래의 글은 매일 쓴 글의 일부입니다.
편두통을 자주 앓는다. 몇 년 전 첫 회사를 다니고부터 새로 얻은 병이다. 1년도 안 됐던 근무기간 동안 평생 겪었던 두통보다 많은 두통을 겪었다고 믿는다. 회사를 관두고 나서도 그게 내 몸에 남았다. 이제는 크게 신경 쓰이는 일이 있거나, 체기가 있는 경우에 곧바로 편두통을 느낀다. 아는 언니는 내가 편두통이 심한 편이라고 했더니 “오, 예술가 기질이 있네”라고 말했다. 무슨 근거인가 싶어 어이가 없었지만 동시에 잠깐 우쭐했던 것도 사실이다. 원래 예술가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런 지나가는 말을 붙잡은 채 못 놓곤 하니까. 신경과 전문의이자 유명한 작가인 올리버 색스는 편두통을 소재로 500쪽이 넘는 책을 썼더라. 그런 사람은 다 가진 사람이다.
편두통을 겪을 때마다 매번 깨닫는 것은 머리(뇌)가 정말 온몸의 관제탑이라는 사실이다. 머리가 아프면 아무리 체력이 남아돈대도 아무것도 못 한다. 몸이 멈춘다. 그럴 땐 정신이 몸을 지배할 수 있다는 말이 하나도 안 믿긴다. 내가 좋아하는 어느 영화의 주인공은 발톱이 빠지고 무더위에 탈진하기 직전이어도 정신력으로 버티며 계속 걷고 또 걷는데, 그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중에 나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라서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질투하고 너무 독하다고 내심 흉보기도 한다.
가끔 누군가와 만나서 신나게 놀고 나면 자연스레 두통이 사라진다. 예상컨대, 크게 떠들고 웃은 덕분에 소화가 잘 돼서 아닐까? 엔돌핀 분비가 무슨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거나. 그럴 때 나는 상대방에게 꼭 말한다. “너무 즐거워서 아까 있던 두통도 사라졌어.”라고. 상대방은 대수롭지 않게 듣고 흘리겠지만, 내겐 그게 ‘이 만남이 꽤 가치 있었다’라는 칭찬이랄까 인증 마크로 기능한다. 한 번이라도 두통을 낫게 해 줬던 사람은 언제라도 또 그렇게 할 수 있다.
두통이 사라지고 나면 일기든 메모든 기록을 남기게 된다. 이번에도 나았다고. 아플 때는 ‘이것만 나으면 제대로 살게요(예를 들어 방도 잘 치우고 공부도 미루지 않을게요)’ 하고 바라게 되는데, 막상 낫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살던 대로 산다. 무서운 관성. 크게 아프고 나서, 거의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와서 삶이 180도 달라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안다. 얼마나 아파야 나도 그렇게 확 바뀔 수 있을까? 얼른 내가 바라는 내 모습으로 살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고통과 아픔이 벌처럼 찾아올까 봐 초조하다. 누가 내리는 벌인데? 종교가 없는데도 아무튼 그런 기분이 든다. 늦기 전에 내가 선수를 쳐야만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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