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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May 31. 2021

떠남 옹호

글의궤도 3기

관객의취향에서는 매일매일 글쓰는 모임 '글의궤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글의궤도 멤버들의 매일 쓴 글 중 한편을 골라 일주일에 한번씩 소개합니다. 아래의 글은 매일 쓴 글의 일부입니다.



오늘은 내가 서울에 산 지 1년째 되는 날(차마 잊고 싶어도 월세 내는 날이라 잊을 수 없다). 딱히 기념하려던 건 아닌데 퇴근하고 뮤지컬 <시카고>를 봤다. 내가 가질 수 없는 비싼 취미라고 여겼던 것. 멀었다면 아예 생각을 안 했을 텐데, 마침 매일 출퇴근길에 있는 공연장에서 하길래 큰 맘(=큰 돈)을 먹었다. 완벽히 원하던 캐스팅은 아니지만 그래도 만족, 아주 가까운 자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만족. 이게 내가 제대로 보는 첫 뮤지컬인데(기억은 못 해도 어릴 때 학교나 어디서 단체로 보러 갔을 수도 있으니까?) 다 보고 나니 과연 이래서 n차 관람을 하는구나 싶었다. 첫 곡인 올댓재즈부터 소름이 계속 돋았고 왠지 눈물이 찔끔했다. 누가 너무 잘하면 눈물이 난다(ㅋㅋㅋ). 라이브밴드의 연주를 듣는 것도 음악과 타이밍이 딱 맞는 동작들도 표정 연기도 노래도... 저 많은 사람들이 나로서는 짐작이 안 가는 수많은 연습을 했겠지 생각하면 더 벅차오른다. 


내 고향은 대도시가 아니어서 이런 뮤지컬을 볼 기회가 많지 않다. 서울에 온 뒤로는 눈이 핑핑 돈다. 내가 쥘 수 있는 그 모든 경험들, 기회들, 쥘 수 없대도 존재함을 알고라도 있는 것들... 때론 멀미를 각오하고서라도.


고향에 있을 때, 청년 관련 사업을 하는 한 대표가 떠나는 청년들을 보면 안타깝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 한 번도 거길 떠난 적 없던 나는 그 말에 속으로 반발심이 일었다. 순전히 내 기억이지만 상황 자체를 안타까워 한다기보다는 떠나는 사람들을 조금은 나무라는 뉘앙스였다. 이곳에 남아 계속 활동하고 시도하는 청년들은 지지하는 게 마땅하지만 그게 반대로 떠나는 청년들이 아쉬운 소리를 들어야 하는 일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야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런 불균형의 문제를 해결해야 함도 알고, 떠나온 곳에 대한 아쉬움이 또 있지만 어쨌든 그 말이 퍽 괘씸했다. 나를 둘러싼 이 닳고 닳은 풍경, 기어이 다른 풍경에 속하고 싶은 마음 또한 그것대로 응원받아 마땅하다고 믿으니까. 이곳이 내게 더 이상 가르쳐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느낄 때(이런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 사실 여부는 덜 중요해진다), 누군가는 떠난다. 그건 원래 있던 곳에서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내는 것만큼이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심란해했던 1년 전의 내가 있다. 비록 내가 원해서 한 선택일지라도 그랬다. 어딘가를 등졌을 때 오직 기쁘기만 할 수 있을까? 안주하고 싶은 내가 더 가 보고 싶은 나를 원망하고 나조차도 내 선택에 확신을 가지지 못해 두 배로 외로운 기분을 이해하는지. 괜찮아졌나고 물으면 '나아졌다'고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관객의취향_취향의모임_글의궤도_ 김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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