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用之物
#내가 가장 불편해하는 것에 대하여.
신입 때로 거슬러 올라가서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입사하고 3년의 시간이 지났을 때
처음으로 퇴사 얘기를 꺼냈다.
"사수님.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당시에 나는 '사수님 사수님~' 하면서
선임을 굉장히 따랐었다)
"어. 회의실로 가자."
조심스럽게 퇴사에 대해 말씀드렸더니
느닷없이 나를 데리고 회사 밖으로 나가셨다.
지하철을 타고 30분이나 갔을까..
회사에서 꽤나 멀리 떨어져 있는
어느 한 카페로 들어갔다.
알고 보니 그곳은 사수님의
오랜 친구가 운영하는 카페였다.
사수님은 그분에게
얘가 정신 빠져 퇴사 얘기를 꺼냈다고
바깥세상이 얼마나 차가운지
과감 없이 얘기해 달라고 했고,
정확한 워딩과 내용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그 친구분께서는 처음 만난 나에게..
회사가 전쟁터면 밖은 지옥이라는 것을
차근차근, 하나하나, 잘근잘근 설명해 주셨다.
덕분에 나는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전쟁터에.. 아니 회사생활에 전념했다.ㅎㅎ
오래된 흑역사를 다시 꺼내는 이유는
'내가 가장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와서
나는 그때 당시 병에 걸려 있었다.
3년 차, 누구나 한번쯤은 걸린다는 에이스 병.
저 연차임에도 사수 덕분에 중요한 프로젝트에
계속 투입되었고, 매번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다 보니
'에이스뽕'에 취해있었다.
그러나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 있겠는가.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연달아 미끄러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내가 이 팀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에 깊게 빠지다 보니
결국은 퇴사까지 생각이 뻗어 나갔던 것 같다.
-
단편적인 사례이지만
이와 같이 어떠한 조직 안에서
내 쓸모가 다했다고 느껴졌을 때,
또는 내 쓸모를 찾지 못할 때,
그때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불편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러한 불편함은
또 다른 방향으로 진화하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일을 업으로 삼다 보니
열정과다표출이었을까.
일과 쉼의 경계 없이 지내는 날이 대부분이었고,
일로 바쁜 것이 내가 쓸모가 많다는 뜻으로
착각하면서 자아도취에 빠졌던 것 같다.
그렇게 몇 년을 숨 가쁘게 지내오다가
요 근래 오랜만에
바쁘지 않은 시기가 내게 찾아왔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이 상황이
매우 불편하다.
동료들은 또 바빠지기 전에 지금을 누리라고 하지만
바쁘지 않은 지금의 상황이
나의 쓸모를 다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
불편한 마음을 한켠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
.
.
나는 왜 이렇게나
나의 쓸모를 증명하는데
애를 쓰고 있을까.
이 글을 쓰면서도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든다.
어떤 물건이나 존재에 대해
쓸모를 다했다고
감히 섣불리 판단하거나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 누구도 쉽게
쓸모에 대해 판단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나 자신의 쓸모에 대해
항상 성급히 평가를 해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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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쓸모를 판단하는 일 자체야말로
무용지물 (쓸모가 없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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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것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나의 강박에 대해 깨닫게 된 하루다.
평생 쓸모를 증명하려 애써왔으면서도
예쁘고 쓸모없는 것을 좋아하는 예쓸러인
내가 오늘따라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불편한 것
#쓸모있음쓸모없음쓸모쓸모무쓸모
#이모든건 다 무용지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