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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역사 (1)

글로 쓰는 가족 앨범 <두 번째 페이지>

by 리지사비


공간의 인테리어를 바꿀 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식물을 하나씩 들인다.


작은 화분 하나가 놓이는 것만으로도

방 안의 공기가 달라지는 기분이 좋다.


그래서 지금의 공간에도

예전부터 키워왔던 식물과

새롭게 영입한 식물들이 함께 살고 있다.

식물을 새로 들일 때마다

식물 저승사자가 될까 두려웠지만

의외로 식물을 키우는 데에

꽤 소질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식물 집사가 된 나


그 시작을

앨범으로 남겨보고자 한다


-

<1> 세상에서 가장 신기한 식물 : 미모사

이름만 들으면 굉장히 화려한 꽃을 피울 것 같지만

미모사의 진짜 묘미는 따로 있다.


첫 만남은 초등학교 3학년 여름이었다.


그땐 매년 ‘여름방학 탐구생활’이라는 숙제가 있었다.

탐구할 주제를 정해서

방학 내내 관찰하고 기록하는 과제이다.

그리고 늘 탐구 주제 선정에서 막혔던 기억이 난다.


고민하는 게 안쓰러웠는지

그즈음에 아빠가 퇴근길에 양재 꽃시장에서

식물 한그루를 사 와서 건네주셨다.

바로, 미모사였다.


식물의 첫인상은 매우 단정했다.

가느다란 줄기마다

깃털처럼 갈라진 잎들이 달려있었고,

30~40개의 가느다란 잎사귀들이 모여

손바닥만 한 부채 모양을 이루었다.


-

호기심에

가볍게 손 끝으로 만지는 순간,


잎이 내 손길을 피하듯

'순식간에'

오므라들었다


마치 펼쳐진 부채를 '탁' 하고

한 번에 오므는 형상과 같았다.


그 장면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때까지의 나는
식물은 그저 반응이 없고

말이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모사는

내 손끝을 따라 반응하며

“살아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식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준 순간이었기에,

그 여름 나의 탐구 주제는 자연스레 ‘미모사’가 되었다.


그리고 아빠와 함께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잎 끝에 부드러운 솜을 대보기도 하고,

얼음을 살짝 대보기도 하면서

언제 더 빨리, 더 크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했다.

-


초등교과 과정 6년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탐구생활 숙제를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미모사 탐구 만이 기억에 온전히 남아있는 것을 보면,

그해 여름 방학의 온도는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미모사 탐구에 매우 뜨거운 열정을 쏟아냈던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신기한 식물, 미모사>


그 작은 잎사귀는

아버지의 손을 통해 내게 건네졌고,


식물도

사람의 손끝에

그리고 따뜻한 음성에 반응하는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을

그때 처음 배웠던 것 같다.


그날 이후

나는 식물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잘 잤어?"

"왜 이렇게 시들었어~ 힘 좀 내봐!"


-

식물이 주는 사소한 반응들을

기다리는 사람이 된 건

그날이 발단이 아니었을까.



<식물의 역사>

다음장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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