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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 Mar 28. 2022

미래의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익숙한 것과의 결별,구본형>을 읽고

<익숙한 것과의 결별> (구본형 저) 제8장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할 다섯 가지 일들 중 가장 마지막글에서 저자는 독자에게 '숙련과 기록'에 관하여 이야기 한다.


"순간순간 하루하루를 기록할 수 있으면 좋다.

일기여도 좋고, 밑줄 친 책의 한 구절이어도 좋다.

짧은 단상이어도 좋고, 편지여도 좋다.

순간을 기록하면 하나의 개인적 역사가 된다.


기록을 통해 우리는 항상 깨어있게 된다.

기록은 순간을 복원하여 우리에게 되돌려 준다.

그것이 우리의 삶인 것이다(379p)"


그리고, 독자의 아이들에게 '당신이 선택한 마음에 드는길'에 대하여 편지를 쓰라 한다.

아직 아이가 없다면, 앞으로 생겨날 아이에게라도.

당신이 누구였는지, 무엇을 바라며, 왜 살았는지에 관해.


아이들은 인생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 미래에 속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에게 나의 삶과 미래에 대한 꿈을 적어 보내는 것.

이것이 저자가 독자에게 들려주는 마지막 이야기였다.


오늘 새벽, 나는 짧은 명상 후 따뜻한 물 한잔을 마시고 나의 공간에 들어와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적어내려간 나의 편지이다.



사랑하는 민제, 민우에게

민제, 민우야.

이렇게 편지로 너희들의 이름을 불러보는 것이 좀 어색하기도 하고 쑥스럽구나.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 봐.

이제 익숙해지게 너희들에게 최소 1년에 한 번씩은 꼭 편지를 써야겠어.

엄마는 너희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 많거든.    


얘들아,

너희들이 조그만했을 때 말이야,

엄마는 기쁨도 슬픔도 잘 못 느끼고 내가 누구인지,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른 채로 아주 오래 살던 사람이었어. 엄마 스스로에게 얼마나 많은 제한과 억압을 했었는지 몰라. 그런데 그런 오랜 결핍의 시기가 있었기에 존재 자체의 기쁨, 풍요의 감각 또한 알게 되었을 거야. 결핍의 감각을 모른다는 건 또 얼마나 불행한 일일까. 그러니 삶은 결핍과 풍요를 모두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렴. 갖고 싶은 것이 있을 때마다 언제든 가질 수 있다는 것이 결코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야. 그러니 엄마가 너희들이 어렸을 때 장난감을 잘 사주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 이해할 수 있겠니?     


그래서 본론으로 돌아오자. 엄마는 사실 너희들이 어렸을 때 깜깜한 어둠 속에 길을 잃은 느낌이 자주 들었어. 왜냐면 엄마는 그때 엄마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했거든. 어디를 가야 할지도 모르고, 지도도 없는데 얼마나 막막하고 두려웠겠니? 그래서 엄마는 너무 답답한데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책을 읽기 시작했어.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너희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몰라 많이 헤매고 미숙했어. 그런데 엄마가 답답한 마음에 어쩔 수 없이 읽었던 책들이 엄마에게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내주기 시작한 거야. 그렇다고 목적지까지 콕 찍어 길을 알려준 것은 아니야. 그저 엄마가 엉뚱한 길로 빠지지 않을 만큼만 엄마에게 알려주었지. 그렇게 엄마가 읽은 책들은 계속 쌓여갔는데 엄마가 나아가지 못하고 계속 같은 지점을 돌고 있는 사실을 발견했어. 뭐가 잘못된 걸까. 엄마는 최선을 다해 걷고 또 걸었는데 왜 같은 지점만 계속 맴돌고 있었던 걸까. 그건 바로 목적지와 방향성이 없었기 때문이었어.   

 

그래서 엄마는 다시 출발지로 돌아왔지.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부터 다시 시작한 거야. 물론 그건 엄마를 이끌어주었던 좋은 안내자를 만나서 가능한 일이었어. 그러나 그 안내자 또한 엄마가 간절히 바라고 간절히 찾은 결과였지. 인생에서 쉬이 얻어지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단다. 누군가 쉬이 얻어진 것으로 잘 사는 것 같아 보여도 그건 그냥 보이는 것이 그럴 뿐이야. 그러니 네가 원하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셀 수 없이 많은 노력과 최선의 시간들이 필요하다는 것, 결국 그러한 것이 쌓이고 쌓여 네가 바라던 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너희들이 알았으면 좋겠어.    


너희들의 감각적 기쁨과 너희들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너 자신과의 충분한 대화를 하고 그에 따른 목적지와 방향성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엄마가 돌고 돌아 얻은 인생에 대한 교훈이란다. 원래 인생은 부딪히고 넘어지며 배우는 것이니 넘어져도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걸을 수 있는, 너의 길을 가다 부딪히면 조금 돌아갈 수 있는 그런 마음으로 이 아름다운 세상을 맘껏 누리길 바라.    


엄마는 그렇게 살아왔냐고? 그럼. 엄마도 그렇게 살아왔고, 또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고 너희들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그런데 엄마는 이런 것을 알려주는 어른이 엄마 주위에 아무도 없어서 좀 많이 돌고 돌았지 뭐니. 그러니 너희들은 이런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엄마가 있어서, 엄마의 아들들이라서 엄청 운이 좋다는 이야기지. 그런데 사실은 그 돌고 돌았던, 어떨 땐 엄마의 인생에서 통째로 지워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어떤 일들도 실은 모두 다 좋은 일이었어. 어떤 시기마다 괴롭고 힘들었던 일들도 결국은 언젠가 꼭 겪어야 했던 인생의 좋은 경험들이었지. 그러니, 너희들에게 힘들고 어렵고, 피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어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두려워할 것 없어. 너희들은 그 일들을 맞이하고 이겨낼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는 충분한 존재들이기 때문이야. 그러니 너희들 스스로를 믿고 나아가면 된단다.     


엄마는 마음속에 ‘열정’이라는 불꽃을 품고 있는 사람이야. 힘써 배우고 또 내가 배우고 직접 경험한 것들을 그것이 필요한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단다. 왜 굳이 나누고 싶은 거냐고? 그건 엄마의 소명이기 때문이야. 엄마가 엄마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듣고 이것이 나의 소명이라고 정의했기 때문이야.


엄마는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야. 엄마는 앞으로도 계속 읽고 쓰는 사람으로 살 거야. 엄마가 읽는 것들이 엄마가 되고, 엄마가 경험한 것들이 또 엄마가 되고, 그리고 그것을 다시 엄마의 글로 쓰고. 그리고 그 글들이 그 글이 꼭 필요한 사람들의 마음에 닿는다면 엄마는 정말 행복할 것 같아.    


세상은 너무 아름다운 곳이고, 세상에는 재미난 것도 너무 많지. 그래서 엄마는 그 재미난 것들을 계속 도전하고 경험하고 싶어. 그게 뭐라도 말이야. 뭐라도 가 뭐냐고? 음.. 예를 들면 랩이라던가???(이건 너무 좀 심한가? 그럴수록 막 오기가 생기네?) 나이가 많아서 안된다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고리타분한 말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건 변하지 않는 진실이야. 박막례 할머니 알지? 그 할머니는 71세에 유튜브를 시작했다고. 그러니 엄마가 도전 못할 일이란 아무것도 없어. 너희들도 너희들만의 재미난 것을 많이 찾아 너희들이 일상에 그것을 자주 배치하고 일상에서 그 기쁨을 누리렴. 너희들이 어렸을 때 모래놀이에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숲에서의 그런 날들처럼 말이야. 엄마는 앞으로도 너희들에게 그런 시간을 많이 만들어주고 싶어. 일단 엄마가 먼저 많이 해볼게. 엄마는 너희들보다는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조금 짧잖니?^^


아빠는 우리 가족을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야. 그런 아빠가 우리 아빠라는 사실은 너희들에게도 엄마에게도 최고의 자랑이지. 우리 아빠가 있기에 엄마가 엄마라는 역할이 아닌 나라는 존재로써, 그리고 민제와 민우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꼭 알아주렴.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로서 아빠는 최고의 남자야. 그런 남자가 너희들의 아빠고 엄마의 남편이라니, 우린 이미 엄청난 행운을 타고난 존재들이구나. 너희들이 힘들 때나 지칠 때, 주저앉고 싶을 때 늘 기억하길 바라. 너희들은 이미 엄청난 행운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극복할 수 없는 일이 뭐가 있겠니?


우리 가족이 함께 여행 다녔던 그 많은 날들을 기억하니? 우리 함께 하며 행복했던 그 시간들 말이야. 여행을 출발하면서 설레던 그 마음, 집으로 돌아오며 다음에는 또 어딜 갈까 행복한 고민을 하던 순간들, 낯선 곳에서 깨어나던 그 감각들. 그 시간들을 엄마는 오래도록 잊지 못해. 너희도 그렇지? 엄마는 너희들이 인생을 여행처럼 살았으면 좋겠어. 하루가 기대되고 설레는 그 마음, 내일은 어떤 재미난 일을 할까 행복한 고민들, 오감으로 느끼는 감각이 이끄는 삶을 말이야. 인생은 생각보다 길지 않아. 엄마도 금방 호호 할머니가 되겠지. 그런데 엄마는 그게 슬프지 않아. 매일 호호 웃는 호호 할머니가 될 거거든, 매일 호호 웃는 호호 할머니. 생각만 해도 행복하구나. 아빠는 하하 할아버지가 되어있을까?


이렇게 긴 이야기를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쓰다 보니 이렇게나 너희들에게 해주고픈 말이 많구나.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는 건 그만큼 너희들을 사랑한다는 말이야. 그러니 너희들도 엄마 아빠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겠지? 엄마 아빠에게 해주고픈 이야기가 있을 때 언제든 엄마 아빠를 찾으렴. 우리는 언제든 어떤 이야기든 들을 준비가 되어있단다. 엄마는 너희들이 스스로 설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지만 언제든 너희들을 믿어주고 기댈 수 있는 부모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사실은 엄마와 아빠를 만난 너희들이 운이 좋은 게 아니라 너희들을 만난 엄마와 아빠가 진짜 운이 좋은 거야.      


사랑하는 민제, 민우야.

엄마가 결국 너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나를 엄마로 만들어준 너희들이 엄마의 인생에 가장 큰 축복이라는 거야. 그러니 우리 함께 삶의 축복을 마음껏 누리자. 언제나 사랑해.    

                                                                                              2022.3.28.

                                                                                         사랑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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