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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 Mar 30. 2022

아이 등원 후에는 무조건 30분 걷기

아침 등원 전쟁을 치르고 심신이 지쳤다면

이 휘황찬란한 책상 위에 나는 얼마나 많은 밥을 차렸나


둘째를 낳고 산후조리원에서 홈쇼핑을 보다가 귀신에 홀린 듯 나도 모르게 결제했던 돌잡이 시리즈 세 박스 중 두 박스는 개봉도 안 하고 조카에게 줬지만 사은품으로 받은 알록달록 그림이 그려진 앉은뱅이책상은 우리집에서 가장 유용하게 쓰는 물건 중 하나이다. 아이들 아침밥은 꼭 여기서 먹여야 밥을 가장 빨리 먹일 수 있다. 아침밥은 짜장, 카레, 볶음밥 같은 한 그릇 음식으로 준비한다. 반찬을 따로 먹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아침에는 입맛이 별로 없기 때문에 간단하면서도 한 그릇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제일이다. 내가 아침밥을 내어와도 아이들은 작은 책상 옆에 장난감이나 책을 늘어놓고 밥보다는 다른 활동에 여념이 없다. ‘민제! 민우!’ 이름을 열 번도 더 불러가며 어서 밥 먹으라는 이야기는 낮은 옥타브로 시작해 높은 옥타브로 넘어간다. 그러나 결국 떠먹여 준다. 5살이나 8살이나 상황은 똑같다. 여기서 더 큰 소리가 안 나면 그나마 평온한 아침이고 여기서 내 옥타브가 음계를 벗어나는 순간 그 시간, 그 공간이 전쟁터가 되고 만다.    


그래도 아침밥만 먹이고 나면 등원 준비의 반 이상은 성공이다. 나머지 준비는 세수, 양치를 하고 옷을 입히는 것이다. 양치를 할 시간이 없으면 자일리톨 사탕을 입에 하나씩 넣어준다. 아침에 양치를 제대로 못하는 날이 많기 때문에 밤에 하는 양치는 꼭 한 명씩 엄마 아빠가 붙들고 깨끗이 닦아주어야 한다. 옷은 언제까지 입혀줘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입혀준다. 혼자 입을 수는 있지만 바쁜 아침시간에 아이들이 스스로 옷을 입을 수 있게 기다려 줄 시간은 없다.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의 문제라기보다는 시간의 문제다.    

 

마스크 줄에  마스크를 바꿔 끼워서 목에 걸어주고 마지막으로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고쳐주고 나면 첫째는 아빠와 함께 나간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사랑해, 하트 잊지 않는다.   하나라도 먼저 문을 나서면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한다.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이제 장난기 가득한 둘째가 남았다. 둘째는 손수건에 적신 물로 고양이 세수다. 씻으러 들어갔다가 아침부터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아침에 싸다가  유치원 가방을 챙기면서 틈틈이 나도 옷을 입는다. 둘째 등원과 동시에 나도 해야  일이 있기 때문이다.     


전쟁 같은 아침을 보내고 나면 아이들 등원과 동시에 나도 녹다운이 된다. 아침시간에 하루치 에너지를 다 써버린 것 같다. 그럴 때 등원 후 집에 들어와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손에 드는 순간 온라인 세계의 파도타기는 시작되고, 유일하게 혼자 있을 수 있는 큰아이 하교 전까지 몇 시간이 순식간에 끝도 없고 남는 것도 없는 온라인 세계로 사라지고 만다. 핸드폰이 내 시간을 쥐도 새도 모르게 뭉텅이로 잡아먹는다. 정말이지 돌아서면 아이의 하교 시간이 된 경험이 나에게만 특별히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3월, 아이들이 정상적인 등원을 시작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것이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집에 바로 들어오지 않고 산책을 가는 것이었다. 우리 집 근처에 공원은 없지만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대로변 주위는 논밭이 있고 그 대로변 끝에는 작은 지방대학교가 있다. 그 길이 나의 산책로다. 첫날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학교까지 걸어갔다가 집에 오니 딱 30분이 걸렸다. 그 코스를 나의 산책코스로 정하고 비가 많이 오는 날이나 중요한 일정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 거의 매일 등원 후 30분 산책 루틴을 꾸준히 지키고 있다.    


아이 등원 준비를 하며 내 옷을 제대로 챙겨 입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니 제대로 챙겨 입기보다는 사실 손에 잡히는 대로 입는다는 말이 맞는 말이다. 운동복 바지를 못 찾은 날이면 니트 바지를 입고 나가기도 하고, 창이 큰 모자를 못 찾은 날이면 떡진 머리 그대로 나가기도 한다. 운동할 때 주로 입는 외투가 보이지 않으면 신랑 외투를 입고 나간다. 무엇을 입고 나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오늘 아침 손에 잡힌 옷이 산책할 때 입기에 적절한가 가 중요하다. 사실 무슨 옷을 입든 중요하지는 않다. 등원을 시키고 집에 다시 들어오지 않고 걷겠다는 나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내가 매일 산책을 하겠다고 결심한 건 머리로만 살던 삶을 몸으로 전환하기 위한 작은 시도였다. 아이를 낳고 운동할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핑계를 대며 제대로 된 운동을 거의 하지 않고 살아오는 동안 내 몸은 나와 조금씩 더 멀어지고 있었다. 아니 그 이전부터 나는 머리로만 사는 삶에 익숙해져 내 몸을 거의 돌보지 못했다. 내 몸을 돌보아야겠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했지만 그 생각이 손끝, 발끝까지 내려와 실천으로 행하는 것이 어려웠는데 드디어 실천에 옮기게 된 것이다. 거창한 계획과 시도는 나를 금방 주저앉게 만들기에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활동을 아주 작게 시도했고, 그 시도는 나에게 최적의 시도였다.    


오늘도 내 외투를 옷장에서 꺼내올 시간이 없어 옷걸이에 걸린 신랑 외투를 걸쳐 입고 급하게 집을 나섰다. 아이를 등원차량에 태워 신나게 손을 흔들어 주면 내 오늘 아침 임무는 성공이다. 이제 큰아이 하교 전까지는 나를 위한 시간이다. 아이들이 돌아오면 힘껏 안아줄 수 있도록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에너지를 가득 충전해야 한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보폭을 크게 하고 팔을 흔들며 걷는다. 아직은 차가운 바람이 두 뺨을 스친다. 음악 같은 건 필요 없다. 이 시간은 내가 나와 만나는 시간이다. 나와 만나는 시간은 걷는 나만 있을 뿐 나른 건 최소화하는 게 좋다. 나와 만난다는 건 특별한 게 아니다. 그냥 내가 걷는 그 행위에 집중한다는 거다. 하루 종일 한 가지의 행위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머릿속으로 들고 나는 많은 생각들을 내버려 둔다. 어떤 날은 생각에 꼬리를 꼬리를 물어 나를 불안하게 할지도 모른다. 그런 불안한 생각들까지도 수용하고 받아들인다. 생각은 결국 지나간다. 그렇게 걷다 보면 나무도 만나고 꽃도 만난다. 흙도 만나고 물도 만난다. 하루 중 유일하게 자연과 만나는 시간이다.    

아침마다 내가 만나는 산, 나무, 밭
봄의 시작을 알려주는 나무, 풀, 꽃


 

내가 정한 코스는 종종 바뀌기도 한다. 삶에는 늘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30분의 짧은 산책도 마찬가지이다. 지루함이 느껴질 때쯤 코스를 바꿔 다른 길을 걸어본다. 그러면 또 새롭다. 그렇게 매일 나는 걷고, 걸으며 나를 만나고 자연을 만난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왜 우리 애들은 아침마다 이렇게 말을 안 듣는 거야!’라는 화가 올라와 침대에 벌러덩 눕고 싶을 때 운동화를 신고 나가 걷자. 일단 걸으면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왜 걸으라고 했는지. 우린 이미 머릿속에  '해야 할 것'들의 목록이 가득하다. 그러니 '걷기'는 그 목록에만 넣어두지 말고 '걸어라'. 우리에겐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닌 실천 하는 행위가 필요하다. 그러니 지금 이 글을 읽는 순간 현관문으로 나가 운동화 끈을 질끈 묶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걷기는 우리의 감정적 에너지들을 신체의 운동 회로로 배출해 줍니다.
 마치 걷기는 욕조 배수구의 마개를 여는 것과 같습니다.
걷게 되면 마음속에 갇혀 있는 꽉 막히고 답답한 감정들이 빠져나갑니다.
 어지러운 생각들이 이내 잦아듭니다.
 사실 걸을 때 쫓아버릴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생각이란 별로 없습니다.
 심각한 고민이라도 걷게 되면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고,
 새로운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이제 몸을 챙깁니다, 문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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