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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 Mar 31. 2022

나만의 힐링 스팟, 서점

내 몸과 마음이 가장 편안한 내 영혼의 안식처


어느 공간에 들어섰을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공간이 있는가? 나에게는 그런 공간이 있다. 나는 서점에 들어서는 순간  긴장을 안고 살아 굳어진  몸과 마음이 해제되는  같은 느낌이 든다.  손끝과 발끝에서 기분 좋은 떨림이 느껴진다. 서점에서 나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책장 사이를 걸어 다니다 눈길이 멈추는  제목이나 표지가 보이면 책을 꺼내 든다. 그렇게 잠시  손에 쥐어진 책에서  마음을 사로잡는 문장을 만나면 그날  책은 우리집 책장에 꽂힐 가능성이 높다.  

   

우리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는 도서관이 있다. 도서관을 가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도서관은 나에게 책이 많은 장소일 뿐 도서관에서 기분 좋은 떨림을 느낀 적은 거의 없다. 서점의 따뜻한 조명, 분야별 각 책장마다 세심하게 진열된 큐레이션, 차분하지만 감각적인 음악, 서점 특유의 새 종이 냄새까지. 서점 안의 작은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면 내 오감은 모두 충족된다. 서점에서는 하루 종일이라도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가끔은 서점 직원이 되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한다. 물론 좋아하는 것이 직업이 된다면 상황은 달라지겠지만 그만큼 서점은 내게 매력적인 곳이다.    


이런 내 마음과 달리 내가 서점에 갈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 일을 할 때는 더욱 그랬고 육아휴직을 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올해 1학년인 큰 아이는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12시 또는 1시에 하교를 한다.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간단히 집안일을 마치면 금방 열 시가 되고, 씻고 서점까지 왕복하는 시간까지 하면 결국 서점에서 여유롭게 보낼 수 있는 뭉텅이 시간이 없기에 육아 휴직한 지 두 달이 다 지나도록 나는 한 번도 서점에 가지 못했다. 서점에 가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서점에 갈 만큼의 몸과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일을 할 때는 출장 일정이 일찍 끝나거나, 아이들을 데리러 가기 전까지 시간의 여유가 생긴 어떤 날, 또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반가를 쓰고 일찍 퇴근 한날 나는 어김없이 서점으로 향하곤 했다. 서점은 나도 모르는 사이 소진된 에너지를 충전하고 내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나만의 힐링 장소가 되어 있었다.    


어제 오후에는 중요한 일정이 있어 어머님께 아이들 하원을 부탁드렸다. 아이들 등원과 오후 일정 사이에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그 시간 동안 내 목적지는 당연히 서점이었다. 전날 밤부터 마음이 설렜다. 특별히 사고 싶은 책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사고 싶은 책이 있어서 서점에 간 적은 거의 없었다. 사고 싶은 책이 생겼을 때는 온라인 서점 앱을 열어 주문하고 다음 날 바로 집 앞으로 배송되는 시스템에 더 익숙해져 있었다.   

  

서점은 내 영혼의 안식처였다. 서점이라는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괜한 불안감에서 비롯된 걱정과 근심은 모두 잊고 오로지 책의 세계에 푹 빠질 수 있었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무수한 책들 사이에 내가 존재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나에게 기쁨이었다. 그러다 그날 서점에서 내 마음에 들어오는 문장을 만났을 때, 그 문장이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순간이었을 때. 나는 그 순간의 행복감과 희열을 잊지 못했고, 그래서 서점을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렜다. 서점을 갈 때마다 나는 책과, 문장과, 서점이라는 공간 자체에 매료되었다.   

   

요즘은 책의 디자인이 다채롭기도 하고 책등까지 예뻐서 책장에 꽂힌 책등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단정하게 행열을 맞춰 책장에 꽂힌 책 배열을 보면 내 마음도 단정해진다.    

저렇게 많은 책들 속에 내 이름이 인쇄된 책 한 권이 진열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다가도 매일 쏟아져 나오는 많은 책들 속에 금세 묻혀버리게 될, 책등조차 꽂힐 수 없을지도 모를 책을 쓰면 뭐하나 싶어  글을 써서 책을 한 권 내고 싶다는 나의 작은 꿈이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무의미하고 희미하게 느껴진다.    


어떤 공간에 발을 내딛는 순간 몸과 마음이 해제되는 곳이 있다면 거기가 바로 나만의 힐링 스팟이다. 그런 공간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공간이 없다면 새로운 공간에 또는 익숙한 공간에 갈 때마다 내 몸의 감각에 집중해 보자. 분명 평소와는 다른 미세한 떨림이 느껴지는 그런 공간이 있을 것이다. 동네 아기자기한 소품이 많은 작은 카페일 수도 있고, 나무가 많은 도심 속 공원일 수도 있고, 옥수수 알이 톡톡 터지는 식감이 좋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수프가 맛있는 식당일 수도 있다.     


어디라도 좋다. 그곳이 나만의 힐링 스팟이라 이름 붙여 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해진다. 집은 나에게 휴식의 공간임과 동시에 노동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살림은 나와가족을 돌보는 숭고한 노동임에도 숭고함은 자주 빛을 잃는다. 각종 집안일과 가족들을 정서적으로 돌보며 몸과 마음이 지친 날은 더 그렇다. 그런 날은 무조건 나만의 힐링 장소로 간다. 지친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충전될 것이다. 바닥난 에너지를 끌어 모으다 보면 없던 용기도 생기고, 희망이라는 싹을 틔우기도 한다.     


어제 서점에서 나는 살림에 관한 책을 구입했다. 결혼을 하고 처음 내 살림을 시작하면서 살림을 잘해보고 싶다는 부푼 기대를 안고 여러 권의 살림 관련 책을 집에 들였다. 그러나 끝도 없고 티도 안나는 도돌이표 같은 살림의 실체에 뒷걸음질 치며 좌절했던 시간들을 지나 9년 만에 처음 산 책이었다. 그랬던 내가 다시 살림에 관한 책을 손에 쥔 것이다. 여느 때처럼 책장과 책장 사이를 오가다 단정한 책 표지에 눈이 머물렀다. 책장을 넘겨 프롤로그를 읽다가 이 문장에 내 시선과, 내 마음이 모두 멈추었다.     


어지러운 순간에도 그것을 잘 정돈할 힘이 있다는 것은 곧 나에 대한 믿음이 된다. 집 안이 정리되어갈수록 마음도 정리된다.
매일의 좋은 습관이 삶을 바꾼다.

 엉망이 된 부엌을 말끔히 되돌려 놓는 일, 쌓인 먼지를 닦아내는 일, 몸을 움직여 마음의 짐을 더는 일, 그렇게 인생의 복잡한 문제들을 풀어가고 따로 내려놓는 일, 살림을 한다는 것은 삶을 일으켜 세우는 일이다.
애정을 담은 살림에는 삶을 살리는 분명한 힘이 있다.

<오전의 살림 탐구, 오전열한시 정이숙>

    

지난 1년동안 나의 공간을 비우고 집을 정리를 하며 느꼈던 흩어진 생각들을 잘 정리된 문장으로 만나니 더없이 반가웠다.  1년 동안 공간을 정리하면서 큰 살림들은 정리가 되었지만 육아휴직기간 동안 내 살림과 내 공간에 깊이를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차에 이 문장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서점에서, 책에서 나는 운명적인 순간을 만난다.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서점에 갔다. 그런데 그 서점에서 만난 건 결국 나의 삶을 살리는 살림이다. 늘 그렇듯 삶은 이렇게 이어진다.


 

* 1년동안 나의 비움의 과정

https://blog.naver.com/lluuull/222674174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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