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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 Mar 26. 2022

나를 사랑하는 가장 쉬운 방법

오직 나만을 위한 점심을 정성스럽게 준비 한다

나의 첫번째 휴직이었던 4년 반의 휴직 후 복직을 했을 때 나는 신랑과 아이들 아침은 어떻게든 챙기면서 내 아침밥은 거르기 일쑤였다. 정신없이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출근하면 빈속을 노란 커피믹스로 달래곤 했다. 물 한잔 마시지 못하고 출근한 어떤 날은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며 이게 내 첫끼라며 쓴웃음을 짓곤 했다.


그러다가  복직을 하고 8개월 만에 큰 탈이 났다. 그때가 코로나가 전 세계를 덮치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코로나를 공포처럼 인식하던 코로나19 사태 초기였는데 목감기가 길어진다고 생각하면서  목감기약만 몇 주째 달고 살던 어느 날, 39도가 넘는 고열에 시달리며 몸살로 밤새 뒤척이다 아침을 맞이했다. 병원까지 운전해서 갈 힘도 없어 엄마를 불러 병원에 갔는데 의사는 내게 코로나가 의심된다며 진료를 거부했고, 선별 진료소에 가서 검사를 권했다.


그때는 병원에 방문한 환자가 확진자가 되면 며칠 동안 병원을 폐쇄하는 등 그 파장이 엄청 클 때라서 의사는 내가 병원에 방문한 것 자체만으로도 매우 꺼림칙하다는 태도였다. 그냥 몸살감기라고 생각했는데 의사의 진료거부에  그 자리에서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의사의 태도에 속상했다기보다 정말 코로나에 걸렸을까 봐 두렵고 무서웠다. 내가 확진을 받으면 아이들과 신랑은 어쩌나, 사무실에 지금 중요한 업무가 진행 중인데 그 일은 어떡하나, 확진자의 모든 동선이 공개되며 주홍글씨 같은 편견이  심했던 시기라 극한 두려움에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의사의 진료거부로 약도 받지 못하고 선별 진료소에 가서 검사를 했다.  아이들과 신랑을 시댁에 보내고  PCR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까만 밤을 눈물로 지새웠다.


혼자 안방 침대에 누워 밤새 고열에 시달리며, 기침을 하며 타이레놀로 하루를 버티다 '음성'이라는 PCR 검사 결과를 문자를 받고 코로나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두렵고 무서웠던 그 밤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고열과 기침 증상이 너무 심해  종합병원 호흡기내과에 갔더니 심한 폐렴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평상 시라면 입원을 해야 하는 상태였지만 코로나가 심한 시기라 지금은 입원이 안되니 집에서 약물 치료하며 푹 쉬라고 말했다. 약국에 약을 받으러 갔을 때 요즘엔 젊은 사람이 폐렴에 잘 안 걸리는데 어쩌다가 폐렴에 걸렸냐며 밥 잘 챙겨 먹고 몸 관리 좀 하라며 나에게 약을 처방해 주던 그  약사의 안쓰러운 눈빛을 기억한다. 내가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내가 아프니 아이들도, 집도, 사무실일도 모두 엉망이었다. 아니 사실 가장 엉망인 건 나였다. 나도 모르게 얼마나 내 몸을 혹사시킨 건지 약을 먹어도 좀처럼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다.


간호사인 언니의 도움으로 며칠 동안 집에서 링거를 맞고, 엄마가 해주시는 보양식을 열심히 먹고 겨우 이주만에 출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몸이 회복되었다. 그제야 나는 내 몸이 나에게 주는 경고를 인식할 수 있었다. 믹스커피로 쓰린 속을 달래던 그 수많은 날들을 떠올리며 나는 그때부터 악착같이 아침밥을 챙겨 먹고 출근하기 시작했다. 30분만 더 일찍 일어나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던 날들이었다. 된통 당하고 난 뒤에야 내 아침밥 사수를 위해 나는 무려 새벽 기상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당시 새벽 기상이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지만 조금씩 일찍 일어나는 습관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런데 육아휴직을 시작하고 나서 나는 하루 종일 집에서 보내면서도 가족이 아닌 나 혼자 먹기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무의식 중에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자꾸 식사를 거르거나 라면을 끓여먹거나 빵조각으로 점심을 대충 먹는 나를 발견하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출근을 할 때는 아침, 저녁은 아이들 식사 챙기느라 내 식사는 좀 허술하게 먹더라도 점심은 남이 해주는 밥(식당밥)을 하루 중 가장 잘 챙겨 먹었는데 이제 점심마저 부실해져 버린 것이다. 아이들 아침 먹고 남은 밥 한 덩이를 라면 국물에 말아먹던 어느 날, 그렇게 서글플 수가 없었다. 이러다 또 그때처럼 아플까 봐 덜컥 겁이 났다. 마음을 단단히 고쳐먹었다. 하루 세끼 식사 중에서 점심만큼은 오직 나를 위해 가장 정성을 들이겠다고 나 스스로 다짐했다.


그 결심을 한 다음날부터 나는 아이가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집에 오는 12시가 되면 내 점심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학교에 다녀온 아이는 태권도 학원에 가기 전까지 책을 보거나 간식을 먹으며 자기 나름의 휴식을 즐겼으므로 그 시간은 내가 음식을 만들기에 적절한 시간이었다.  간단한 반찬 한두 가지를 하거나 반찬이 있으면 밥이라도 금방 지어 내 점심에 온기를 더했다. 마음만 먹으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를 위해서는 계란 프라이쯤은 금방 하면서 나 혼자 밥을 먹을 때는 계란 프라이 하나 하는 것도 귀찮다 생각하던 지난날이었다. 그러나 내 점심을 준비하는 시간이 나를 사랑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백숙이라도 끓일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물론 아직 백숙을 끓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육아휴직은 아이를 키우기위한 시간이지만 나를 키우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니 나를 잘 돌봐야지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아이를 잘 돌볼수 있으므로 나를 돌보는 것이 더 중요한 시간이다. 나에게 주어진 육아휴직 기간동안 아이 밥챙겨주는데만 집중할 일이 아니다. 내가 나를 위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내가 평소에 먹고싶었던 음식을 정성껏 준비하는 것.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 남이 만들어 주는 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

삶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위에 놓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아이를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선택이어야 한다.

아이의 선택이 아니라 어머니의 선택이어야 한다.

이때 우리는 종속되어서도 기쁠 수 있다.

희생의 의미를 알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낯선 곳에서의 아침, 구본형> 20p    

시금치,당근,콩나물 무침에 계란후라이,김자반,참기름 뿌려 고소하고 담백했던 비빔밥
양배추 당근 샐러드에 한살림 치킨텐더 가득 올려 사과, 요거트 까지 더한 점심
겨울배추를 넣은 무생채를 엄마한테 얻어온 다음날, 따뜻한 새밥에 된장찌개 두숟갈, 고추장 반숟갈, 참기름 쪼르륵
토마토양파샐러드에 한살림순살치킨, 간단하지만 푸짐한 한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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