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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 Nov 18. 2022

그림책 일기_하늘을 나는 사자

그때의 나를 기억한다

오늘은 6시 30분에 눈이 떠졌다.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늦은 시간이다. 부러 일찍 일어나려고 애쓰지는 않는다. 알람을 맞추지 않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 내 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어서. 물론 마음으로 받는 압박도 있지만 몸을 혹사시키면서까지 새벽 기상을 하고 싶지는 않다. 뭐든 과하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소진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나 혼자 발버둥 치며 애쓴 결과는 내 몸이 아프다는 신호를 온몸에서 보낼 정도의 소진이었다. 아마 그 뒤로 내가 나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런 적신호를 받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다. 그전에는 내가 나를 소진시키는지도 모르고 혼자 얼마나 애썼던가. 그 시기를 후회하는 건 아니다. 그런 시기가 있었기에 나는 내 한계를 인지하고 인정할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경험한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데 이건 내가 경험해 본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엄마가 되고 그토록 괴로워했던 나의 다르마(사회적 의무)를 피하지 않으면서도 나로 살아가는 방법은 결국 ‘자기 돌봄’이었다. 모든 것은 자기 돌봄이 충분히 된 후에야 그 위에 나를 쌓을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쉽게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사람의 에너지는 유한하고 그 유한한 에너지를 적절히 분배하기 위해서는 자기 탐색과 자기 돌봄의 과정이 필수적이다.      


지금 나는 자기 탐색과 자기 돌봄의 과정을 지나고 있으며 나의 자기 돌봄 여정이 시작된 이상 여한 없는 자기 돌봄을 하고 싶다. 내가 나의 엄마가 되어 나를 정성스럽게 돌봐주고 싶다. 우리가 아이에게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까지 주고 싶어 하는 것처럼 그런 마음을 나에게 내어주고 싶은 것이다.      


황금색 갈퀴를 가진 멋진 사자가 고양이들을 돌보다가 지쳐 돌이 되어버렸다는 그림책 <하늘을 나는 사자>가 떠오른다. 그 사자는 고양이들의 칭찬과 인정을 갈구하며 자기가 좋아하는 낮잠도 자지 못하고 얼룩말을 잡느라 매일 하늘을 날았다. 노란 갈퀴가 파랗게 질리도록 창백해져 가는데 자신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계속 자신을 혹사시키다가 결국 돌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사자를 깨운 것은 아기 고양이의 따뜻한 말 한마디. 마지막에 아기 고양이가 사자에게 건넨 이야기들은 힘들었겠다는 진심 어린 공감, 사자의 지금 모습 그대로에 대한 인정, 사자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였다. 사자가 또다시 타인의 인정과 기대에 힘입어 깊은 잠에서 깨어났지만 자기 동력이 없을 때는 타인의 진심 어린 인정과 기대에라도 기대야 함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하늘을 나는 사자가 아기 고양이의 진심 어린 인정과 기대로 자기 삶을 다시 깨어냈다고 하더라도 이번에는 부디 낮잠을 실컷 자고 자기를 충분히 돌보고 넘치는 에너지로 타인을 돌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호되게 아프고 난 뒤에서야 멈추어 나를 돌아볼 수 있었던 지난날의 나처럼 사자 또한 돌이 되었던 시간 동안 충분히 쉬고 충분히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가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얼룩말을 잡으러 가겠다고 하늘을 나는 사자의 갈기에 파란빛이 하나도 돌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특별한 일이 없음에도 어딘지 모르게 늘 얼굴에 그늘이 져 있던 그때의 나를 기억한다. 그때를 기억해야 하는 것은 다시 그때로 돌아가지 않기 위함이다. 사자가 자신의 푸른 갈기를 기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시 그때로 돌아가지 않고 낮잠을 실컷 즐기다가 너무 많이 자서 몸이 찌뿌둥 해질 즈음 일어나 고양이들의 배고프다는 아우성이 아닌 자신의 배고픈 감각에 이끌려 얼룩말 사냥을 가는, 그리고 자신이 얼룩말을 충분히 먹은 후에야 고양이들에게 얼룩말을 나눠줄 수 있는 그런 하늘을 나는 사자가 되길 마음 다해 응원한다.     


오늘 새벽에도 나는 일어나 가장 먼저 글을 썼다. 이 시간이 나를 돌보고 나를 치유한다는 것을 나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을 나는 사자를 응원하면서 써 내려간 나의 글에서 가장 많은 위로를 받은 것은 결국 나였다. 나는 나를 돌보기 위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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