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나 Nov 24. 2022

"너는 어쩜 그리 싱그러워?"

<적당한 거리>그림책 일기

평소보다 늦잠을 잔 월요일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와 시계를 보니 7시다. 어젯밤 된장국을 끓이려다가 너무 피곤해서 급하게 자러들어가느라 물에 다시마와 멸치만 넣어 놓은 냄비가 인덕션 위에 있다. 다시마와 멸치는 미지근한 물에 밤새도록 푹 잠겨있었다. 아침에 국이 있어야 밥을 잘 먹는 우리집 남자들을 떠올리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냉장고에서 무와 배추를 꺼낸다. 어머님이 밭에서 뽑아 신문지에 싸주신 무에 덕지덕지 붙은 흙을 털어내고 깨끗이 씻는다. 친정에서 얻어온 배추는 꽤 오래됐지만 아직 잎이 싱싱하다.     

 

감자 깎는 칼로 무 껍질을 벗겨내고 무의 모양대로 동그랗고 얇게 썬다. 동그랗고 얇게 썬 무를 모아 칼을 단정히 잡고 채 썬다. 너무 두껍지도 너무 얇지도 않게 적당히. 배추도 먹기 좋게 적당히 썰어 놓는다. 마늘을 다지고, 손질해 놓은 파도 꺼내어 총총 썰어놓는다. 그러는 동안 멸치다시물은 끓어오르고 미지근한 물에 밤새도록 우려낸 물이라 오래 끓이지 않아도 진한 멸치육수 냄새가 난다. 다시마와 멸치를 건져내고 배추와 무, 파, 마늘을 모두 한번에 넣는다. 엄마는 무를 가장 먼저 넣고 배추와 파, 마늘은 나중에 넣어야 한다고 했던 것 같지만 여러 번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본 결과 순서는 크게 상관없다. 된장을 적당히 풀어 한 이십분 끓여내면 시원하고 달큼한 배추무된장국이 완성된다.      


매번 비슷한 요리를 하면서도 요리 초보자인 나는 요리를 할 때마다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레시피를 물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늘 같은 말을 했다. 소금과 설탕 등 양념의 비율을 이야기할 때면 늘 적당히 넣으라고. 도대체 적당히가 얼마만큼인지 알 수 없어 나는 엄마말을 듣는둥 마는둥 하고 전화를 끊자마자 핸드폰을 열어 레시피를 검색했다. 그럼 아주 친절하게 숟가락 사이즈까지 기재한 자세한 레시피가 온라인에 넘쳐난다. 그중에서 가장 비주얼이 좋은 음식 사진이 있는 레시피를 골라 완벽하게 계량에 맞춰 음식을 만들고 나면 왜 맛이..... 내가 상상하던 그 맛이 아닐까. 결혼 9년 차에도 여전히 초보 요리사인 내게 적당히도 자세히도 둘 다 영 어려웠다.      


그러다가 휴직을 하고 가족이든 나든 매일 삼시 세 끼를 챙겨야 하는 상황이 되자 나는 음식을 할 때 엄마에게 전화도, 인터넷 레시피도 찾아보지 않고 내가 기억하는 그 음식의 맛을 떠올려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엄마가 말한 것처럼 적당히 넣어본다. 적당히 넣었는데 싱거우면 조금 더 적당히, 적당히 넣은 것 같은데 짜면 물을 더 넣는다. 설탕은 많이 넣으면 복구가 어려우니 아주 조금씩 적당히 가감한다. 그래도 맛이 없으면 연두를 적당히 넣으면 꽤 괜찮은 요리가 탄생하기도 한다.      


요리를 자주 하지 않을 때는 그저 모든 게 어렵게만 느껴져 시도조차 엄두가 안 났는데 아주 간단한 것부터 조금씩 하기 시작했더니 양념을 ‘적당히’ 넣으면서 적당히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몇몇 사람을 초대할 수 있을 만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게 엄마가 말한 적당히의 마법인 걸까.      


뭐든지 너무 애를 쓰는 나에게 엄마는 그저 적당히 하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런데 잘하고 싶은 마음, 칭찬받고 싶은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나는 늘 적당히를 훌쩍 넘어서 기를 쓰다가 만신창이가 되곤 했다. 기를 쓰다 완전히 지쳐버린 나의 한계를 여러 번 보고 나서야 스스로에게 ‘적당히’를 허할 수 있게 되었다.      


최선을 다해 살았던 결과가 소진이었다면 이제 진짜 적당히 살아봐도 되겠다 싶었다. 늘 발을 동동 구르며 남을 챙기느라 바빴던 나는 남은 적당히 챙기고 나를 챙기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나에게 이렇게 해야 하나.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만족을 모르는 존재인가’하는 부정적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많이 아팠던, 혼자 외로웠던, 뭐가 잘못되었는지 몰라 답답했던, 아무리 채워도 채워도 허기지던 내 모습을 떠올렸다. 나를 소진시켰던 선명한 기억들은 이제 나를 일으키는 가슴 찐한 추억이 되어주었다.      


식물을 키우면서 작가가 느낀 사유(思惟)를 따뜻하고 예쁜 그림과 함께 아름답게 표현한 그림책 <적당한 거리>을 읽으며 작가가 나에게 ‘적당히’ 해도 된다고, 지금도 충분하다며 쓰다듬고 보듬어주는 따뜻한 손길을 느꼈다.      


“관심이 지나쳐 물이 넘치면 뿌리가 물러지고

마음이 멀어지면 곧 말라 버리지.     

가끔은 가지를 잘라 줘야 힘을 모아 더 단단해지고,

더 넓고 새로운 흙을 마련해 줘야 기지개를 뻗어.”     


작가는 식물을 키울 때 적당한 흙, 적당한 볕, 적당한 물,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다정하게 이야기한다. 마치 내가 오래도록 모든 관계와 상황에 있어서 ‘적당하게’ 조절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을 훤히 알고 있는 것처럼. 한 발자국 물러서 보면 돌봐야 할 때와 내버려 둬야 할 때를 조금은 알게 될 거라고 허브 화분을 돌보며 잔잔한 미소를 짓는다. 돌봐야 할 때와 내버려 둬야 할 때는 구분하지 못하고 타인을 돌보다 지쳐버렸던 과거의 나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타인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일과 가정이라는 피할 수 없는 나의 생의 터전에서 내가 취해야 할 자세는 ‘적당한 거리’였다. 내 몸과 마음이 편안한 ‘적당한 거리’ 말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관계와 일, 가정 안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더 이상 내 몸과 마음이 시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내 몸과 마음을 돌보다 보면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날도 오지 않을까?     


“너는 어쩜 그리 싱그러워?”     

더불어 나의 무지와 무심함으로 말라 간 과거의 나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한다.     

작가의 이전글 그림책 일기_하늘을 나는 사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