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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 Dec 08. 2022

슈투름프라이,메라키,모르겐프리스크,아르바이스글라에데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그림책을 읽고

독일/슈투름프라이     


나는 슈투름프라이를 좋아한다. 가족들이 분주한 아침을 보내고 썰물처럼 빠져나간 오전 9시. 그때부터 시작되는 나의 슈투룸프라이는 솜사탕 보다 더, 꿀물보다 더, 마시멜로 보다 더 달콤하다.     

아이들 내복이 널브러진 거실 바닥도, 아침 먹은 설거지가 쌓인 주방 개수대도, 빨래가 다 돌아갔다는 소리를 내는 세탁기의 멜로디도 이 시간만큼은 모른척 한다. 이 시간이야말로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남아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로운 나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라디오의 볼륨을 높이고 햇볕이 들어오는 창가 옆 나의 책상에 앉는다.      


따뜻한 차 한잔, 새콤달콤한 귤 한바구니, 보송보송하고 보드라운 털 담요, 어제 배송 받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들의 책 3권, 노트북. 이것만 있으면 나는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어제 늦게 잔 피로가 확 몰려오다가도 싹 달아난다.      


매일 펼쳐지는 나만의 슈투름프라이.   

   

그리스/메라키  

   

나는 매주 목요일마다 열리는 <그림책 글쓰기> 모임을 메라키한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그림책을 통해 서로가 서로의 글로 안부와, 마음과, 슬픔과, 기쁨과 사랑을 나눈다. 그 모임을 시작하기 전에 내 마음은 ‘목요일 오전마다 시간 내기가 부담스러운데...’라고 생각했다면 마지막 모임을 앞두고 있는 오늘 ‘이렇게 끝난다는게 믿기지 않을만큼 아쉽다..’라고 생각하며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책을 펼쳐 그림책 일기를 쓰고 있다. 이 모임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나는 그 과정에 깊이 녹아 들어가 진심과 영혼을 쏟아 부었다. 평소에 그림책을 많이 읽지 않는 내가 모임을 마치자마자 도서관에 가서 그날 만난 그림책들을 모조리 다시 빌려와 내 책상에 쌓아두고 몇 날 몇 일을 읽었다. 마감이 있는 날 새벽까지 노트북을 붙들고 있었으며, 새벽 또는 언제든 틈새시간이 날 때마다 글을 썼다. 이 모임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그림책들을 만나며 이 모임이 아니었다면 절대 쓰지 않았을 글을 썼다. 내가 온전히 메라키한 시간들이었다. 물감을 뿌려놓은 듯 파란 하늘에 하얀색 성처럼 생긴 집들에 둘러쌓인 티비 광고에서 본 것 같은 그리스의 풍경을 떠올리며 “메라키”라고 발음해본다. 이 과정이 끝나면 나는 내 일상에서 또 어떤 메라키를 만나게 될까?              


덴마크/모르겐프리스크     

나는 매일 새벽 모르겐프리스크를 느낀다. 오늘도 모르겐프리스크.

잘 자고 일어난 새벽에 느끼는 상쾌하고 청량한 기분. 그래, 새벽은 이 맛이지.        

  

덴마크/아르바이스글라에데     

나는 일을 할 때 아르바이스글라에데를 바랐다. 그런데 나의 바람과는 달리 나는 나의 일에세 아르바이스글라에데를 느끼기는커녕 일을 하면 할수록 내가 왜 일을 선택했는지에대한 후회와 일에 진심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자괴감만 올라왔다. 일에서 어떤 행복과 만족, 보람을 찾을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그런 내게 배부른 소리라고했다.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잘 마련된 제도와 정년이 보장되는 철밥통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야한다고했다. 그러나 그건 그 사람들이 밖에서 보여진 것들이지 삶으로 살아낸 결론이 아니었다.     

 

일을 할 때 나는 8시 20분에 집에서 나오며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풀타임으로 근무 후에 겨우 상사와 직원들의 눈치를 봐가며 6시 반을 훌쩍넘겨 퇴근했다. 미친 듯이 엑셀을 밟아 어머님집으로 가 티비에 넋놓고 있는 아이들을 흔들어 옷을 입혀 집에 데리고 오면 7시 반이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그때서야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냉장고 마른반찬을 꺼내고 겨우 있는 힘을 짜내어 계란프라이하나 부쳐내어 저녁을 먹고 나면 저녁에 아이들에게 하루 일상을 물어볼 힘도, 지친 하루를 보낸 나에게 책 한 줄 읽어낼 힘도 없어, 아이들을 재우며 널부러져 잠들어 덕지덕지 묻은 화장 그대로 씻지도 않고 잠들어 다음날 세수를 하고 그 얼굴에 다시 화장을 하던 쳇바퀴같은 날들이었다.

    

그 일상의 반복이 뭔가 잘못됐다고 느낀 것이 내 삶의 변화의 시작이었다. 나는 이대로 살다가는 내가 정말 사라질것같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 두려움을 잊기위해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계속 읽다보니 어느 순간 ‘쓰고 싶다’는 내 안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쓰고 싶다’는 내 안의 소리를 듣고 내가 바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수많은 저항이 올라와 나를 한 줄도 쓰지 못하게 하던 시간들이 오래도록 있었다. 그러나 결국 그런 지난한 시간들을 통과해 지금 나는 나의 글을 쓴다. 그리고 그 글을 쓰는 내가 좋다.

    

남들이 얼마나 우러러보는지와 상관없이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기는 것. 아르바이스글라에데. 글쓰기는 나의 아르바이스글라에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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