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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재 Mar 02. 2016

애국심이 없는 애국자

애국심을 외치는 목소리 앞에

합리적 토론이나 생각은 위축

정치적 동원 목적의 구호보다

다양성을 보장하는 게 합리적


존 케리(현 미국 국무장관)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2004년 11월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에게 무릎을 꿇었다. 공화당은 의회 선거에서도 승리를 거뒀다. 상원과 하원에서 모두 다수당으로 올라섰다. 


승리 비결은 ‘애국심’ 마케팅이었다. 공화당은 애국심과 국가 안보를 강조했다. 부시 진영은 미국인들의 공포심을 자극했다. 민주당은 “부시가 아무리 허튼 짓을 저질러도 유권자들에게 그 일만 떠올리게 하면 우리는 끝장”이라며 무력감을 표시했다. 


‘그 일’이란 바로 9∙11 테러를 가리켰다.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공포’가 ‘논리’를 압도했다. 공화당은 유권자들의 공포감을 최대한 자극했다. 유세 기간 중 ‘테러 위협’, ‘쌍둥이빌딩’, ‘알카에다’, ‘국가안보’ 등과 같은 단어를 밥 먹듯 되풀이했다.  


알카에다는 2001년 9월11일 미국인들을 공포의 소용돌이에 몰아넣었다. 미국이 대형 테러로부터 안전한 곳이라는 믿음은 깨지고 말았다. 미국인들의 심리적 평정은 무너졌다. 


정파를 가리지 않고 한 목소리를 냈다. 공화당도 민주당도 미국을 위협하는 모든 세력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국민적 화합을 강조하는 한편 기독교 이외의 다른 문화에 대한 적대감도 드러냈다. 


반대를 용인하려는 모습이 사라진 반면 강력한 보복을 외치는목소리만 높아졌다. 부시 대통령은 “하느님이 세상의 악(惡)을 없애라는 임무를 나에게 부여했다”고 천명했다. 미국인들은 카리스마가 넘쳐흐르는 리더로부터 큰 위안을 얻었다. 


부시 대통령은 테러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다. 이런 결연한 의지는 지지도를 크게 끌어올렸다. 9∙11 테러 한 달 후 부시의 지지율은 90%를 넘어서기도 했다. 이런 지지율은 몇 달 동안 이어졌다. 미국인들의 절대 다수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대한 군사작전을 지지했다. 


부시 대통령은 2003년 1월 연두교서를 통해 이라크 침공을 공식화했다. 그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알카에다 조직원을 비롯한 테러범들을 지원, 보호하고있다”며 “테러리스트들이 대량살상무기를 미국으로 들여올 경우끔찍한 공포가 시작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군과 영국군은 그 해 3월20일 합동 작전을 통해 이라크를 침공했다. 마침내 사담 후세인도 제거했다. 하지만 대량살상무기는 찾지 못했다. 


대가는 혹독했다. 미국은 막대한 전비 부담을 떠안았다. 국방비는 눈덩이 불 듯 늘어났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전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4%에 불과했지만 국방비는 전세계 국방비 총액의 50%에 육박했다. 당연히 재정건전성은 무너졌다. 미국은 아직도 그 부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담 후세인을 제거했지만 더 끔찍한 괴물까지 만들어냈다. 바로 이슬람국가(IS)의 출현이다. IS는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안보를 위협하는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IS는 테러의 세계화를 실천하고 있다. 


이런 패착은 ‘애국심’이란 말로 합리화됐다. ‘애국심’은 맹목적이다. 합리적 성찰이나 토론이 발붙일 틈을 허용치 않는다. 특정 방침이나 주장을 따를 지 말지를 강요한다. 거부하면 ‘매국’이나 ‘배반’이라는 주홍글씨를 붙인다. 편리하고, 유용한 무기다. 


‘애국주의’가 전세계적으로 가장 성행했던 때가 19세기 유럽이다. 평민들에게 참정권을 허용한 후 선거를 통해 이들을 동원하기 위해서였다. 우파 민족주의 세력은 ‘애국’을 외치면서 자신들에게 반대하면 ‘배신자’로 몰아붙였다. 독일에서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을 ‘조국이 없는 사람들’로 부르며 외국인처럼 취급했다. 


‘애국심’은 정치적 동원에 큰 도움을 준다. 북한의 안보 위협에다 선거까지 겹치자 ‘애국심’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애국심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합리적 사고나 토론은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애국심은 애국자를 가려내지는 못한다. 특정인의 기준으로 애국심이 없더라도 스스로를 애국자라고 자부하는 사람은 많다.


참고문헌

1)   하영선 김상배 지음. 2006. 네트워크 지식국가. 을유문화사.

2)   에릭 홉스봄 지음. 김동택 옮김. 1998. 제국의 시대. 한길사 

3)   마이클 본드지음. 문희경 옮김. 2015. 타인의 영향력. 에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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