했던 얘기 또 하는 이유

처음 듣는 것처럼 모르는 척 하기

by 온택

내가 청소년기 때 좋아했던 한 일본 만화책이 있다. 이 만화가 일본에서 실사화 드라마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왓챠를 통해 한국에도 공개되었다. 그래서 사춘기 때의 감성을 느끼고 싶어 해당 드라마를 하나씩 챙겨 보려고 했다.


이 이야기를 지난 수요일 만나 저녁을 함께 먹은 친구에게 얘기를 해주었다. 친구는 구태여 저것을 보기 위해 왓챠 계정을 활성화하는 나에게 오타쿠 라며 놀리기도 했지만, 이내 호기심을 갖고 흥미로워했다. 왜냐면 우리 사춘기 남자들의 마음을 불태웠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이 이야기를 회사 동료들, 그리고 몇몇 친구들의 카톡방에서도 얘기를 나누었다.


아내가 출근한 혼자 남은 토요일, 한 친구 녀석이 주말인데 뭐하냐고 연락이 왔다. 마침 해당 드라마를 정주행 중이었는데 이 녀석에게도 알려줘야겠다 싶었다.


"야 우리 어릴 때 보던 그 만화 기억하냐? 그게 실사 드라마가 나왔지 뭐야? 혹시 너 아냐?"


"야이 ㅂㅅ아! 네가 수요일 직접 만나서 이미 얘기해줬잖아."


아... 그랬다. 이 이야기는 이미 수요일 저 녀석에게 만나서 해준 이야기였다. 내가 얼마나 주변에 이 이야기를 하고 다녔으면 이 사람한테 했는지, 저 사람한테 했는지 구분이 안 갈 정도였다. 혹시나 이 녀석 말고도 또 두 번이나 말한 사람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도 해보았다.


가끔 했던 말을 또 한다는 소리를 주변으로부터 많이 듣는다. 하도 이런 일이 많아 나의 말 시작과 동시에 익숙하게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두 번째 말하는 거라라며 사전 차단하는 친구도 있다. 치매나 정신적인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너무 많은 곳에 이야기를 하고 다니다 보니 이 녀석에겐 했는지 안 했는지 기억을 못 해서 그런 것이다.


무언가 하나에 꼽히면 사람들과 같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내가 새로 가져온 주제를 가지고 타인들과 대화를 다 누며 다양한 생각과 피드백을 받는 것을 즐긴다. 아마 남으로부터 나의 생각을 인정받고 싶어 해서 일 수도 있고, 타인이 어떻게 나의 의견을 생각하는지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에서 비롯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가진 정보를 타인에게 알리고 주입하는 것에도 즐거움을 느낀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내 주변 사람들도 꼭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리고 특정학 리액션이 있을 때까지 납득이 되게 설명하는 나를 볼 수 있다. 좋게 받아들이는 친구는 덕분에 좋은 정보 알아 간다 라고 하지만 질릴 때로 질릴 친구들은 이미 내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고 한 귀로 흘리기까지 한다.


가끔은 정차 없이 달려대는 나의 수다에 지쳐버린 주변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두 번이나 이야기하는 건데도 처음 듣는 것처럼 리액션해주는 친구들도 있을 테고, 두 번째라고 극혐 하며 뭐라 하는 친구들도 있다. 각자의 성향별로 나의 두 번째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데 차이는 있겠지만, 분명한 건 내가 조금은 상대방의 배려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이제는 나도 "아 혹시 내가 이 얘기했던 적이 있던가?" 라며 체크를 하고 이야기를 건네어야겠다고 깨달았다. 왜냐면 얼마 전 내가 했던 이야기를 상대방이 내가 해준 이야기 인지도 모르고 나에게 다시 해주고 있는 모습을 본 이후로 말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MSG를 첨가해서 말이다. 녀석이 민망하지 않게 처음 듣는 것처럼 애써 리액션해주느라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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