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본계 기업에 종사한다. 일본계 기업이란 정확히 어떤 것을 말하는 걸까? 일본을 본사로 둔 회사가 한국에 법인을 설립한 경우나, 한국 기업과 공동 합작으로 출자 자했거나, 지배구조상 경영 지배를 받고 있는 경우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의외로 이러한 일본계 회사가 한국에 상상 이상으로 많다. 실제 국내에 있는 외국계 기업의 통계를 살펴보면 일본 22.8%, 미국 16.0%, 중국 8.3% 순으로 일본 기업이 가장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의 상당수가 일본 기업과 생사를 함께 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지난해 일본이 위안부 강제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반도체와 같은 핵심 소재 수출 규제 후 한국의 일본계 기업은 많은 것이 변했다. 국민들의 일본 제품 불매 운동과 반일감정으로 인해 국내의 일본 주요 기업들이 매출이 급감했다. 여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의 영향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고 일본 기업들이 한국을 떠나고 있다. 실제 산업연구원과 NICE평가정보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철수한 외국계 기업 중 일본 기업이 45개로 가장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한일관계 악화의 직격탄은 물론 우리 회사라고 피해 갈 순 없었다. 우리가 상대하는 고객사에서도 이러한 국제정세상 장기적으로는 국산 제품을 쓰는데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따라서 앞으로 수주 경쟁에서 점점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게다가 매년 노사 갈등으로도 골머리를 앓고 있으니 일본 본사에서도 한국에서는 더 이상 사업하기 부담스러운 환경이라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영향들로 국내의 일본 기업이 계속 철수를 하게 된다면 국내에선 대규모 실직 사태를 면할 수 없을 것이고, 국내 2차 벤더사까지 사업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이런 까닭에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 나에게도 상황은 안타깝기만 하다. 자유 경제 속에서 제품이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거나 산업군의 패러다임이 바뀌어 도태되는 것이 아닌, 단순 양국 간의 정치적인 요소로 고용 안정성에 빨간 불이 들어왔으니 종업원 입장에선 아쉬울 수밖에 없다. 물론 정치와 경제는 떼려야 뗄 수 없다지만 말이다.
그래서 조금은 조심스럽다. 나의 안위를 위해 혹여나 일본의 경제 보복을 옹호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을까봐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인 이상 일본 기업에 종사 한들, 국가의 정책과 방향에는 수긍을 해야 할 테니까. 다만 이러한 양국의 외교적인 문제가 실제 생업을 살아가는 국민들에게도 피해를 입지 않도록 대항력을 갖출 수 있는 제도도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일본계 회사를 다녀야 한다. 이게 내 전문 분야이고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근간이기 때문이다. 가끔은 회사에 있는 많은 일본 직원과 함께 일하다 보면 느끼는 감정이 우리가 일본이라는 나라를 내적으론 나쁜 감정이 많지만, 일본인 사람 하나하나를 미워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정말 멋진 사람도 있고 본받고 싶은 모습도 있다. 내가 일하는 곳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양국 간의 발전과 화합을 위해 서로 피땀 흘리며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 그리고 그들이 더 이상 불운이 아닌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점. 이것이 나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