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입원
두 번째 입원 - 자궁이 열리다.
지난 입원으로 고위험 산모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 우리는, 출산까지의 일정이 매우 험난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경각심을 가지고 아내는 3월까지 다니기로 한 직장을 2월까지만 하기로 했다. 아내의 회사 동료들도 이러한 아내의 사정을 알고 업무 배려를 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차례 고비를 넘긴 우히는 대망의 임밍아웃도 하게 되었다.
한날은 아내가 새벽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자고 배를 움켜 집어 끙끙거리고 있었다. 비몽 사몽으로 괜찮아? 를 연발하며 아내 걱정 반 쏟아지는 잠 반으로 새벽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내는 출근 준비를 했다. 그런데 괜히 새벽에 배가 아팠던 게 찝찝해서 병원을 가봐야 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하필 이 날도 토요일이라서 원래 다니던 경상대 병원은 외래 진료가 없었다. 때문에 근처 동네 병원에 가서 아이들이라도 잘 있는지 보고 출근하기로 했다. 장유에 있는 한 산부인과를 방문하여 초음파를 보았다. 그리고 뜻밖의 대답을 듣게 되었다.
"자궁이 열렸습니다. 소견서를 써드릴 테니 당장 대학병원으로 가세요"
머리가 멍 해졌다. 그냥 별일 아니겠거니 하고 아이들만 잘 있으면 안심 되니까 방문 했던 병원인데... 새벽에 아내가 배가 아팠던 건 진통을 했다는 거고 자궁이 0.98cm 열려있었다. 그때까지도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아 또 코로나 검사부터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근데 느낌이 왠지 입원해라고 할 것 같아서 집에서 또 입원 캐리어를 싸서 경상대 병원으로 갔다. 코로나 검사와 기타 수속을 마치고 진료실에 올라가자 당직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긴급 상황이에요. 자궁이 열려 있어 묶는 수술을 해야 합니다. 이대로 두다간 조기 출산, 아니 사산하게 됩니다."
지난번처럼 안정과 휴식을 취할 거라 거 생각하고 왔지만 수술이라니... 아내도 너무 놀래 충격을 받은 듯하여 나라도 침착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교수님은 풍선으로 비유를 하셨다.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으면 커지는 만큼 자궁 속 아이도 카지면서 자궁 입구가 압박을 받게 된다. 따라서 이 입구가 한번 열리면 손쓸 수 없이 쏟아져 나올 태니 이것을 단단히 묶는 수술을 할 거라고 한다.
당직 교수님은 우리 담당 교수님에게 연락을 하셨고 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담당 교수님은 본인의 환자를 책임 지기 위해 병원으로 긴급 출근하셨다. 그리고 수술 동의서를 작성하고 열린 자궁 경부를 묶는 일명 시 로드카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에서 나온 아내는 나를 보자마자 서러움에 눈물을 쏟아 냈다. 너무 가엽고 안쓰러웠다. 그냥 아기는 품으면 끝인 줄 알았던 나의 무지 성에 너무 부끄럽고 속이 상했다. 엄마가 되는 일은 정말 위대하며 힘든 일이다.
아내 상태의 정확한 명칭은 '자궁경관무력증' 이라는 것이다. 열린 자궁 경관를 통해 양막이 돌출 되고 심지어 터지기 까지 한다. 이로 인해 결과적으로 유산이 되게 된다. 아마도 다태아를 지닌 산모에게 자주 발생 한다는 걸 보아 주수 대비 2배로 자궁이 커지기 때문에 자궁내 압력을 증가시켜 자궁 경부를 쉽게 열리게 했던 것이다.
시로드카 수술을 마치면 최소 일주일은 입원하여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이 일주일 동안 아내를 케어 하기 위해 회사를 칼퇴하여 항상 맛있는걸 사서 저녁을 같이 먹었고, 자리 정리도 해주고 양치질 까지도 해주었다. 씩씩하게 이겨내고 있는 아내의 모습에 더욱 잘해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2월까지 출근하기로 했던 아내는 1월까지만 일을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