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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양현 Apr 19. 20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가야만 한다

달콤하기도 씁쓸하기도 했던 7년 동안의 소기업 창업일기

40의 나이에 서서


이제 마지막 이야기만이 남았다. 그동안 브런치 위클리 매거진에 매주 글을 실으면서 여러분들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많은 분들이 공감도 해주시고 따뜻한 격려도 보내주었다. 메일로 자신의 사연을 구구절절 보내준 분들도 있었다. 서툴고 투박한 글에 관심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2018년. 내 인생에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일들이 일어났다. 올해 나이로 나는 마흔이 되었고 준비와 각오를 하지 못한 채 아버지와 세상에서 작별을 하기도 했다. 올 여름 두 달은 그동안 숨가쁘게 달려온 시간을 잠시 멈추고 안식월을 가져보려고 계획 중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성인 나이 40은 여러 가지를 의미한다. 직장에서는 중간관리자로서의 이력을 쌓기 시작한 시점일 것이다. 남자의 평균수명을 현재 기준으로 대충 80으로 본다면 정확히 절반을 살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제부터는 살아갈 날이 산 날보다 적은 셈이다. 야근과 술 담배로 몸 관리에 소홀한 사람은 서서히 건강에 적신호가 오고 온몸이 슬슬 아파오기 시작할 것이다. 나 역시 최근에 종합검진을 받았는데 간수치가 다소 높다는 진단을 받고 한 달치 간장약을 다발로 받아왔다.     



인생, 3막의 드라마


사람의 일생은 이야기 이론으로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비추어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의 삶도 탄생이라는 시작과 죽음이라는 결말이 있고 삶의 전성기가 있는 일종의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드라마, 즉 이야기는 보통 3막으로 구성된다. 인생의 정 한가운데 있는 40의 나이는 인생을 총 3막으로 치면 2막의 중간, 미드 포인트에 해당한다.      


인생을 막에 빗대어 좀 더 이야기해보자. 1막에서 우리들은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여러 가지 과정을 거치고 학습을 한다. 2막에서는 본격적으로 삶을 살기 시작하는데 좌절이나 성공을 겪기도 하고 시행착오를 경험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3막에서는 우리가 그동안 경험했던 다양한 희로애락의 삶을 정리한다. 3막까지 삶의 여정이 순조롭게 잘 끝났다면 우리는 마지막에 행복하게 눈을 감으며 삶을 마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좋은 영화의 결말을 보고 나오는 상황과도 빗댈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훌륭한 드라마는 반드시 카타르시스를 낳는다고 말한다. 카타르시스는 감정의 정화를 말하는 것인데 쉽게 이야기하면 우리가 잘 만든 영화의 해피엔딩을 보고 가슴이 뿌듯해지거나 멜로드라마의 비극적인 결말이 끝난 후 눈물을 흘렸지만 뭔가 시원해지는 느낌이라 할 수 있다.     


3개의 막 가운데 2막은 우리가 인생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에서 다양한 장애물과 좌절들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갈등이 증폭되어가는 순간을 다룬다. 시학에 기초한 주요 드라마, 서사 이론에 따르면 아직 갈 길이 남은 2막의 나머지와 3막은 2막 한가운데 있는 미드 포인트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그 갈등이 해결되거나 더 증폭될 수 있다. 드라마를 삶으로 바꾸어 이야기하면, 인생의 물꼬를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 향후 살아갈 나머지 삶의 행복과 불행이 바로 40이란 나이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정확히 드라마 이론대로 나눠지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사람의 일생은 나이와 역할을 기준으로 3등분해볼 수 있다. 1~30세는 부모와 주위 사람들의 조력과 가르침을 받아 끊임없이 시행착오를 하고 학습을 해서 미래를 준비하는 나이라 할 수 있다. 30~60세는 준비한 것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자기 소유의 것을 갖고 본격적인 삶을 살아가는 시기다. 처음으로 직업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다. 40이란 나이는 일이나 결혼 같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잘 꾸리고 관리하는데 집중을 해야 한다. 60세부터는 인생을 정리하는 시기라 할 수 있다. 이 시기부터는 인생을 정리하고 마감하는 절차에 돌입하면서 죽음이라는 결말과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왜 창업이라는 힘든 길을 선택해서 40살이 되도록 좌충우돌하고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의 드라마 이론처럼 내 인생이 세 개의 막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나는 창업이라는 경험이 궁극적으로 행복하고 충만한 삶의 종결부 즉 3막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남의 간섭을 받거나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일을 구하는 주체적인 과정, 월급통장에 월급이 입금되길 기다리는 것보다 직접 돈을 벌어 월급통장에 채워놓는 노력으로 가득한 현재가 내 삶의 3막에 해당하는 인생의 후반부를 아름답게 장식하며 카타르시스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삶의 주인공으로서 창업이라는 현재의 삶에 충실하다면 관객들이 보기에 썩 괜찮은 결말을 가져다줄 수 있지 않을까?     



상승의 판타지와 하강의 판타지


그동안 글에서 개인주의자 성향을 가진 내가 오롯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으로 창업자의 삶을 찬미했지만 그렇다고 월급쟁이의 삶이 형편없다고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남의 밑에서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도 알기 때문이다. 보통의 샐러리맨들이 꾸역꾸역 살아가는 삶 또한 위대한 것이다. 삶을 살아가는 선택과 방향이 다소 다를 뿐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맞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에 의하면 삶에 대한 다양한 욕구는 상승의 판타지와 하강의 판타지로 구별해 볼 수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두 가지가 격렬하게 충돌하면서 삶을 살아가는데 창업자들은 상승 판타지가 다소 강한 이들이다. 남들의 간섭을 받는 것을 싫어하고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스스로 주체적으로 일을 해서 성공으로 나아가려는 욕구가 바로 상승의 판타지라 할 수 있다. 하강의 판타지는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물러나고 침잠하려는 근원적인 무의식과 본성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출근시간에 맞춰놓은 알람시계가 울리고도 10분 더 잠을 자려하거나 주말에는 밖을 나가기보다 소파에 널브러져 있고 싶어하는 성향이 바로 하강의 판타지라 할 수 있다. 또 경험 상 알지 못한 세계나 미지의 영역은 맞서기보다 회피하는 경향 역시 하강의 판타지적인 속성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창업자처럼 굳이 모험을 하지 않고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는 샐러리맨들은 하강의 판타지가 다소 강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상승의 판타지건, 하강의 판타지건 그것은 자신의 성향이라 근본적으로 바꾸긴 어렵다. 그래서 누군가는 창업이 체질에 맞겠지만 삶의 안정성을 추구하는 누군가는 당연히 창업이 겁이 나고 쉽지 않다. 창업자와 월급쟁이의 삶이 반드시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가야만 한다...

샐러리맨이든, 창업을 선택한 이든 꿋꿋하게 삶을 살아내는 과정 앞에는 공통적으로 온갖 시행착오와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앞에 펼쳐진 인생이라는 이 길을, 그리고 나는 창업이라는 이 길을 가야만 한다. 인생의 3막이 가져올 카타르시스를 위해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러시아의 문호 푸쉬킨의 시를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그동안 글을 읽고 공감해준 많은 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푸쉬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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