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양현 Mar 29. 2018

연구비를 먹는 하마, 산학연

달콤하기도 씁쓸하기도 했던 7년 동안의 소기업 창업일기

산학연의 현재


지난 22일 한국과 베트남이 합작한 한-베 과학기술연구원(VKIST) 착공식이 하노이에서 열렸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VKIST는 한국의 대표적인 연구기관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 KIST를 벤치마킹해서 만든 것이다. KIST 역시 미국의 원조를 받아 만든 기관이다. KIST는 1962년에 설립된 이후 지난 50여 년간 다양한 기업들과 산학연을 통해 한국의 경제성장과 산업을 이끈 주역이라 할 수 있다. KIST는 연구를 통해 다양한 기술들을 쏟아내었고 기업은 기술을 고스란히 이전받아 사업화를 진행했다. 산학연에 기반한 기술이 회사 성공에 밑거름이 된 셈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일까? 지금의 산학연 시스템은 KIST의 옛 영화와 달리 연구비를 먹는 하마로 전락한 지 오래다. 나는 대학원에 입학한 이후 창업을 한 지금까지 다양한 연구기관들과 회사차원에서 혹은 개인연구자 차원에서 산학연 기반의 연구과제들을 경험하면서 여러 형태의 부조리들을 목격하게 되었다. 2015년에 서울대가 내놓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백서라는 게 있다. 백서는 서울대 공대가 단기적인 성과, 양적 지표에 급급해서 미래를 혁신할 가치 있는 연구성과도, 시장을 주도할 기술도 내놓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백서의 내용은 그동안 산학연을 경험하면서 내린 내 판단이 틀리지 않음을 드러내는 정황 증거였다.      


한국의 산학연은 대부분 실패하고 있다.

그렇다.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산학연 과제들은 대부분 실패하고 있다고 봐도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그럼 왜 대부분의 산학연이 실패할까? 사실 국내의 대학, 연구소 등 다양한 연구기관 중 사업화가 가능할 정도의 뛰어난 연구개발 역량을 가진 기관은 사실 소수다. 몇 개의 톱클래스 대학이나 연구소 이외에 대부분의 이공대는 연구역량을 가진 석박사급 인력들이 부족한 상황이고 이 부족한 틈을 메우기 위해 상당수는 외국인 학생들로 채워지고 있다. 연구인력의 핵심인 석박사급 연구인력 자체가 부족하거나 연구인력이 있다고 해도 역량 자체가 떨어지기 때문에 교수가 나서서 제안서부터 연구까지 이것저것을 챙겨야 하는 경우도 많다.     


사실 과거와 달리 기술개발의 주도권은 일찌감치 산업계에 넘어갔다고 보는 게 맞다. 경쟁이 도입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온실과도 같은 학교나 연구소와 달리 기업은 시장에서 경쟁업체와 치열하게 싸우고 이기기 위해서 연구개발을 한다. 기술개발도 당연히 경쟁원리가 작용하기 때문에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거듭 내놓는 기업을 학교나 연구소가 따라가기 어렵다. 내 분야인 디지털 콘텐츠 분야 역시 새로운 기술이라 여겨 직접 관심을 가지고 대학에 찾아가 담당교수에게 설명을 들어보면 현장에서 전혀 통용될 수 없는 이른바 기술을 위한 기술들이 많았다.  이 시점에서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전자기술은 삼성, 자동차 기술은 현대. IT 기술은 네이버나 다음카카오 혹은 무수한 벤처기업과 스타트업들이 주도한다고 보는 게 맞다.      



산학연이 망가진 원인


산학연을 이렇게 망가지게 한 주범은 일단 정부라 할 수 있다. 현재 진행되는 산학연 과제들을 보면 정부가 여러 가지의 산학연 연구개발 과제를 가판대에 늘어놓고선 "이중에 어느 것을 가져갈래?"라고 말하는 식이다. 그러면 대학, 연구소, 기업은 관심이 있는 과제를 하나 고르고 다른 산학연과 경쟁해야만 과제를 따갈 수 있다. 정부가 내놓는 과제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대부분 현재 기술현황을 반영한 것들이나 패스트 팔로워가 퍼스트 무버를 따라가기 위한 내용들이다. 예를 들어 AI 인공지능이 전 세계적인 기술 이슈로 떠오르면 인공지능 과제가 나오고 미국발 가상현실 기술이 붐을 이루면 가상현실 과제를 내놓는 격이다. 그러니 연구자들이 자발적인 의지를 가지고 진행할만한 연구나 시대를 앞서갈 만한 혁신적인 연구는 좀처럼 진행되지 못한다. 끊임없이 선두두자의 눈치를 보면서 뛸 수밖에 없는 후발주자의 비애라 할 수 있다.      


또 현재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경우 구조조정 붐이 불면서 예전처럼 연구원들이 안정적으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환경이 사라져 버렸다. KIST와 더불어 한국의 대표적인 연구기관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사례를 들면, 과제를 진행해야만 연구가 돌아가고 과제를 맡아야만 연구원들의 인건비가 나오는 식이다. 결국 진행하던 연구과제가 종료되는 시점에는 연구원들이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리면서 과제를 또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현재의 연구환경에서는 과거 KIST의 원로 연구원들이 목숨 걸고 연구를 진행했다거나 밤을 새우는지 모르고 신명 나게 연구를 했다는 경험담은 말 그대로 전설 같은 일이 되고 말았다.     


지금의 연구풍토에서는 과제 종료일까지 적당히 무리하지 않고 연구를 하고 결과물을 만들어서 평가를 받고 과제평가를 넘겨보자는 심리가 만연되어 있다. 결과물 중에는 정량지표라고 해서 논문이나 특허 같은 것들이 줄줄이 쏟아지지만 대부분 시장에서 쓸모없는 것들이거나 사업화와 괴리가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연구기관들 안에서 실제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는 젊은 연구원들은 계약직이 많다. 과제가 종료된 후 후속과제가 이어지지 않으면 퇴사 걱정을 해야 하는 이들인 것이다. 정작 정규직인 책임급 이상의 연구원들은 과제의 관리나 진행만 할 뿐 연구에 깊숙이 참여하지 않는다. 나는 현재의 연구 구조가 민간기업이 젊은 계약직 신입사원들을 야근시켜가며 노동을 착취하는 상황과 뭐가 다른지 묻고 싶다.     


기업들도 문제가 많다. 산학연을 진행하긴 하지만 정말 기술개발과 사업화가 절실해서 산학연을 진행하는 회사는 많지 않다. 단순히 과제를 따먹어 인건비나 메우겠다는 심산이 크다. 기업들 역시 산학연 과제를 어슬렁거리고 대학과 연구소를 찾아가지만 연구역량을 알기에 이들 연구기관이 회사에 커다란 도움을 준다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보통은 대학이나 연구소와 컨소시엄을 맺으면 그림 상 과제를 따기가 유리해 보이기 때문에 진행하는 식이다. 실제로 연구과제가 진행되면 연구기관 따로 놀고 기업 따로 놀면서 과제평가가 있을 때만 급하게 회의를 잡아 내용을 정리하는 상황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우리는 스탠퍼드대와 MIT가 만들어내는 혁신적인 연구결과들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있다. 대학에서 이뤄진 기술개발 성과가 기업으로 연결된 엄청난 사례들을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사례들이 산학연을 통해서 한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아직까지 믿고 있다. 그러나 기술 연구의 주도권이 시장과 기업에 넘어간 상황에서 정부가 지금의 산학연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우리는 성공적인 산학연 모델을 만들 수도 없고 퍼스트 무버도 절대로 될 수 없다.

이전 16화 돈 내고 돈 먹는 곳, 벤처캐피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