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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양현 Mar 15. 2018

멘토열풍 유감이다.

달콤하기도 씁쓸하기도 했던 7년 동안의 소기업 창업일기

스타트업계의 멘토열풍


평일 한낮에 종편의 시사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이런 프로그램에는 단골손님들인 정치평론가들이 패널로 나오고 이들은 저마다 경쟁적으로 정치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낸다. 곰곰이 보니 평론가 중에는 정곡을 날카롭게 찌르며 비평을 하는 이도 있었지만 수준과 자질이 의심스러운 이들도 여럿 있었다. 하루는 정치평론가들에 대한 기사를 읽었는데 인지도를 얻은 이는 여기저기 방송국들을 돌아다니며 생계형 평론을 한단다. 하긴 그 바닥도 치열한 경쟁 세계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좀 더 주목을 받기 위한 자극적인 멘트와 선동적인 제스처들이 보는 내내 계속 거슬렸다.     


스타트업계에도 업계 현안을 비평하고 전문가로 자부하는 이들이 꽤 많다. 보통은 VC나 기업투자부서에 종사하면서 벤처투자를 담당해봤거나 직접 창업을 해본 이들이 대다수다. 또 투자나 창업을 해보진 않았지만 경영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컨설턴트도 상당수가 비평에 나선다. 이들은 블로그나 페이스북 같은 SNS에 열심히 창업 현안도 올리고 업계 분석도 한다. 그중 유명세를 탄 이들은 신문 같은 외부 매체에 기고도 하고 강연 활동도 한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나도 스타트업 관련 이야기를 여기 브런치 위클리 매거진에 매주 정기적으로 올리고 있으니 이 부류에 해당할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예비창업자들이나 스타트업계 초보 대표들과 만나 자문도 해주고 비즈니스 상의 노하우, 전략도 짜주면서 사업 자체에 간접적인 개입을 하는 이들도 생겼다. 직접 스타트업을 운영하진 않지만 생태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이런 이들을 멘토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한국사회가 개인화되어가면서 행복한 삶을 추구하기 위한 사람들의 고민들이 많아지고, 자기계발 욕구가 늘어나면서 가르침을 전달해 줄 수 있는 이들을 찾는 이른바 멘토열풍이 사회전반에 불고 있는데 스타트업계도 이런 움직임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경영 업계야 예전부터 경영상의 코치를 하는 이들이 존재했고 이들을 컨설턴트나 고문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곤 했지만 현재는 가르침을 주는 이를 멘토, 가르침을 받는 이를 멘티 라고 부르며 용어가 자연스럽게 정착이 된 것 같다. 실제로 SNS 상에서 스타트업계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다양한 글을 올리고 댓글에 손수 답변을 주면서 망망대해 돛단배와도 같은 스타트업 대표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분들도 보았다. 그동안 일군 창업 경력을 기반으로 자기 시간과 돈을 써가며 아낌없이 경영상의 노하우를 전파하는 존경스런 분들도 봤다.     


문제는 현재 업계에 만연된 멘토열풍이 너무 과하다는 것이다. 나 역시 멘토랍시고 활동을 한 적이 있다. 7년 전 한창 3D 입체영상 콘텐츠가 활발하게 제작되었던 시기다. 당시 나는 공기관에서 진행하는 3D 입체영상 제작 교육프로그램의 교육생들을 위한 멘토를 맡아달라고 해서 수락한 적이 있었다. 2년 전에도 친한 회사가 진행하는 인력양성 프로그램의 멘토를 맡아 교육생멘토링을 진행한 적이 있다.     



내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 다른 이들한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을까     

나를 기꺼이 멘토로 초청해준 프로그램 기획자 분들에게는 너무 감사했지만 프로그램에 합류하면서 멘토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너무나 거부감을 가졌다. 솔직히 내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 멘토라는 타이틀을 달고 다른 이들한테 교육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이건 내가 겸손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다른 이들의 존경과 귀감을 받을 만큼의 삶을 살지도 않았고 화려한 사업 성공 커리어도 없다. 나에게 멘토링을 받고자 하는 이들은 다들 절실하게 창업을 고민하고 있을 텐데 내가 멘토랍시고 이래라저래라 개입해서 이들의 커리어를 망치지고 싶진 않았다.     


나는 그저 업계를 먼저 입문한 선배이자 같은 일에 종사하는 동료가 아닐까? 나는 교육생들에게 가르치고 전수하는 포지션보다는 내가 경험한 것들을 소개하는 수평적인 관계이고 싶었다. 내 이야기가 반드시 옳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이들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 지식과 경험을 취하거나 버리는 것은 전적으로 그들의 의지에 달렸다고 생각했다. 이런 나에게 멘토라는 타이틀은 너무나 버거운 것이었다.     



멘토링 프로그램과 생계형 멘토


현재 스타트업과 관련된 컨설팅이나 창업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부 기관과 악셀러레이터는 경쟁적으로 멘토링이라는 단어를 남발하며 멘토열풍을 부추기고 있다. 예비창업자들에게 멘토를 매칭 해주는 사업들도 여럿 보았고 외부 강연자를 아예 멘토로 못 박아 홍보하는 경우도 봤다. 멘토링이라는 이름을 붙인 프로그램들이 과거의 경영컨설팅 같은 과정과 얼마나 다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시간을 들여 거창한 이름을 붙인 교육프로그램을 수강했지만 실제 내용에 적잖이 실망하거나 커리큘럼이 너무 부실해서 중도에 낙오하는 이들도 보았다. 그중 상당수는 이른바 멘토링이라는 것이 포함된 프로그램이었다.     


멘토링을 수행하는 일부 멘토라는 이들도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멘토로서 예비창업자들에게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말이다. 멘토링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만큼 소명의식과 책임감이 필요한 자리인 것이다. 누군가를 멘토링해서 얻는 충만감보다 멘토링 활동으로 얻게 되는 각종 수당에 더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닐까? 나 역시 과거 멘토링 프로그램에 합류하면서 "내가 이만큼 시간을 쓰며 컨설팅을 해주는 데 왜 돈을 이것밖에 주지 않는 걸까" 하고 속으로 불평한 적이 있다.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실제 창업계에서 멘토라고 지칭되는 이들 중에는 멘티를 올바른 창업계로 이끌어주기 위한 책임감을 가진 이보다 앞서 이야기한 정치평론가처럼 수당으로 먹고사는 생계형 멘토가 꽤 많다. 창업연구소, 경영아카데미 같은 명칭으로 1인 기업을 차려서 각종 자문, 특강, 심사, 보고서 작성 같은 활동을 하고 이런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수당으로 생계를 잇는 것이다.        


나는 이런 일들을 냉소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런 일들 역시 하나의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이자 틈새시장이라 할 수 있다. 또 적절한 멘토링이야말로 창업 생태계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다. 스타트업계는 창업을 꿈꾸는 예비창업자, 이미 창업을 한 스타트업 대표. 이들을 외곽에서 돕는 투자사와 악셀러레이터, 관련기관 같은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창업을 보조하는 활동을 하는 이들도 스타트업의 새로운 일원이자 중요한 축이라 할 수 있다.     


부작용은 이들 중 몇 명이 본래의 의도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닌 멘토링으로 둔갑시키고 포장하는 데서 일어난다. 어떤 이들은 인지도와 유명세를 얻기 위해 스타트업, IT 산업계의 선지자, 예언자처럼 행세하면서 사실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거나 자신의 역할을 과장하고 부풀리기도 한다. 또 자신의 전공분야와 무관한 이야기들을 전문가처럼 늘어놓기도 한다. 신산업 분야의 콘퍼런스를 간 적이 있다. 나는 그곳에서 창업경험이 일천한 단지 투자심사 이력을 가진 이가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B2C 마케팅을 이야기하고, MBA를 받은 컨설턴트가 가상현실 기술에 대해 틀린 용어로 브리핑하는 상황을 보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이들이 얼마나 창업 생태계와 산업에 애정과 관심을 가졌기에 SNS나 강연장 같은 공개자리에서 확신에 찬 문장으로 창업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더 얻어서 개인적인 커리어를 도모하고 돈을 버는데 더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멘토열풍 유감이다


창업에 뛰어든 이들 중에는 정말로 일 자체가 절실한 이들이 대다수다. 능력이 뛰어나서 다니던 회사를 스스로 박차고 나온 이들도 더러 있겠지만 취업에 실패하거나 퇴직을 당해 생계형으로 창업을 결심한 이들이 더 많다. 멘토라는 이들의 가르침을 하나라도 더 얻고자 하는 이들의 눈빛은 간절함으로 가득하다.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한 사심으로 가득한 이들의 활동과 멘토링이라는 유행에 영합한 창업 관련 프로그램들로 인해 피해를 보는 당사자들은 이런 힘없는 예비창업자들이다.      


유시민 작가가 방송에 나와 멘토와 관련된 흥미로운 답변을 한 것이 기억난다. 자신은 누군가를 멘토로 만들려 하지도 않고, 누군가의 멘토도 되고 싶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현재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가르침을 강제적으로 얻어낼 멘토양성은 아닌 것 같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스스로 배우고 자유롭게 지식을 취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멘토열풍은 유감이다. 현재의 창업 관련 컨설팅과 교육시장, 그리고 관련 종사자들은 멘토링이라는 거품을 걷어내고 본래의 정체성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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