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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양현 Apr 05. 2018

놀랍도록 연애와 닮은 직원의 입사와 퇴사

달콤하기도 씁쓸하기도 했던 7년 동안의 소기업 창업일기


잘 할 거 같아서 뽑았더니만 생각만큼은....
  

똑같은 상황에 대한 서로 간의 인식차     


창업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쉬운 일은 하나도 없지만 그중에 사람 다루는 일이 어렵다고들 한다. 직원이 사장처럼 자발적으로 움직여주면 좋으련만 사장의 눈에는 직원들이 일하는 모습이 늘 신통찮다. 사장들은 직원을 다루는 일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며 사장 마인드 다르고 직원 마인드 다르다는 푸념을 하게 된다. 이런 상황은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스타트업의 창업자도 다양한 사람들을 채용하고 그들과 일을 하면서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겪게 된다. 나도 저마다 개성이 강한 다양한 사람들을 직원으로 뽑고 퇴사시키면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사람을 만나고 보내는 일은 좀처럼 능숙해지지 않고 처음 하는 일처럼 늘 서툴다. 창업자들이 서로 만나면 이런 이야기를 곧잘 한다.      


“잘 할 거 같아서 뽑았더니 생각만큼은 아니네."

“주변 사람들하고 잘 지내지 못하고 회사 분위기를 너무 흐리네.”

“직원들이 많지도 않은데 그 안에 자꾸 파벌을 만들고 정치를 하네.”     


뭐 이런 식이다. 그래도 차마 입 밖으로 해고 통보를 외칠 순 없기 때문에 직원이 뚜렷한 해사행위를 하지 않는 이상은 꼬박꼬박 월급을 주며 직원을 다독여나가는 것이 대표의 일반적인 행동일 것이다.     


그러나 직원을 바라보는 대표의 사고방식은 지독한 착각에 불과하다. 오로지 경영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주관적인 입장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상황에 대한 직원의 생각은 당연히 다르다. 위 이야기를 두고 아마 직원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잘 할 거 같아서 뽑았더니 생각만큼 아니네.” → “아니 내 전문분야는 이건데 이것저것 자꾸 다른 일들을 시키네.”

“주변 사람들하고 잘 지내지 못하고 회사 분위기를 너무 흐리네.” →  “왜 일도 못하는 직원을 자꾸 데리고 와서 내가 이런저런 잔소리하게 만들지”

“직원들이 많지도 않은데 그 안에 자꾸 파벌을 만들고 정치를 하네.” → “저 팀장은 대표한테만 잘 보이려고 하고 우리를 자꾸 무시하네. 그럼 우리도 가만있을 순 없지”     


직원의 입장에서 바라본 생각은 대표와 천지차이다. 대기업 정도의 처우를 기대하기 힘든 스타트업의 경우 보통 직원은 회사의 처지와 상황을 감안해 내 능력보다 못한 연봉을 받았지만 회사에 할 만큼 했다고 여긴다. 대표는 직원이 나만큼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가질 수 있겠지만 직원의 눈에 스타트업의 대표가 밤낮없이 일에 매진하는 상황은 해석이 다르다. 대표가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상황이 사업이 처음이라 일에 서툴고 시행착오를 겪고 있기에 불필요한 시간을 소모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회사 내부에 뭔가 문제가 생기면 대표는 직원의 역량 부족을 탓하겠지만 직원의 눈에는 이 모든 일이 대표가 회사 경영의 초짜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래도 회사가 점점 발전하는 상황이 보이고 연봉도 조금씩 오르면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불만을 억누르고 감추면서 꾸역꾸역 서로가 맡은 일을 할 것이다. 문제는 회사의 상황이 안 좋아졌을 때다. 전개했던 사업이 지지부진하고 매출도 잘 안 오르면 대표나 직원의 초심은 흔들리게 된다. 월급이 며칠씩 밀리거나 잦은 회의와 달리 실제 진행이 지지부진하면 그때부터 대표나 직원은 점점 지쳐가게 된다. 회사와 운명을 같이할 수밖에 없는 대표는 상황이 나빠지면 조바심이 나면서 즉흥적인 지시들을 직원에게 수시로 내리게 된다. 그러나 직원 입장에서는 대표가 특별한 대책 없이 난발하는 지시사항들에 짜증이 난다.


회사가 더이상 상황을 회복하지 못하고 서서히 침몰한다는 판단이 들면 직원은 대표 모르게 탈출을 준비하게 된다. 회사 분위기가 어수선한 상황에서 직원이 대표에게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한다며 사직서를 들이밀면 대표의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입사 면접 과정에서 마치 이 회사에 뼈를 묻을 것 마냥 토해내던 열정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나 혼자 살겠다고 퇴사해버리는 직원의 이기심에 대표는 적잖은 속앓이를 하게 되는 것이다.      



연애와 닮은 직원의 입사와 퇴사


다시 한번 처음으로 돌아가서 입사에서 퇴사까지의 상황을 복기해보자. 입사 초기 이력서를 꼼꼼히 읽고 세심하게 면접을 진행했던 대표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과 빠릿빠릿한 행동에 직원에게 적지 않은 기대감을 가진다. 실제로 입사할 때의 직원은 회사에 많은 열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마다 널뛰기를 하며 요동치는 스타트업의 상황은 직원의 열정을 지치게 만든다. 동시에 충만했던 애사심도 꺼져간다. 그리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것은 매너리즘이다. 예전만큼 회사생활이 재미없어진 것이다. 회사가 안정적으로 굴러간다고 하더라도 회사라는 속성에 기인하는 반복된 일상과 업무에 직원은 점점 회사생활에 싫증이 나게 마련이다.


대표는 이런 직원을 보고 예전만큼 열심히 일하지 않는 직원을 수시로 나무란다. 그러나 직원의 행동은 좀처럼 시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직원은 대표의 모든 행동과 회사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 퇴사 욕구가 꾸역꾸역 올라온다. 퇴사 욕구가 만성화가 되면 드디어 결심을 하고 호시탐탐 사직서를 제출할 날짜를 기다린다. 그리고 디데이가 돌아오면 할 말이 좀 있습니다라며 대표의 방을 찾아간다. 그러면서 회사와의 관계는 공식적으로 종료된다.     


직원이 입퇴사 과정이 뭔가 낯익어 보이지 않는가? 그렇다. 직원이 회사를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과정은 남녀 간의 연애 과정과 매우 닮아있다. 직원의 입사와 퇴사 과정이 놀랍게도 연애와 비슷한 속성을 지닌 것이다. 연애의 과정을 한번 살펴보자. 남녀가 처음 만나서는 감정이 이성을 압도하면서 불같은 사랑을 시작한다. 연애 초반 연애 외 모든 것은 부차적인 것이 되면서 서로에게 진심으로 헌신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성격차나 다양한 이유로 인해 다툼은 잦아지면서 애정은 서서히 식어간다. 새로움과 기대감으로 가득했던 서로 간의 만남이 이제는 익숙함과 지루한 시간으로 변해버린다. 그리고 그 익숙함과 지루함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지면  누군가 먼저 용기를 내어 이별통보를 하게 되고 서로의 사이는 이제 종말을 고하게 된다.      


연애와 직원의 입퇴사는 과정도 흡사하지만 그중 핵심은 서로 간의 관계가 파탄이 나면 정말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던 것처럼 완전히 남남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남녀 간의 연애는 지금은 뜨거운 사랑으로 충만할지 모르지만 법적인 구속력으로 묶여있는 결혼과는 달리 헤어지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관계가 되어버린다. 언제든 부서지기 쉬운 모래성과 같은 것이 연애인 것이다. 연애는 이렇게 이별 후엔 아무것도 아닌 관계로 바뀔 수밖에 없는 잠재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이별 후에는 서로 간에 쌓아두었던 소중한 감정과 시간들은 매우 덧없는 것이 된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직원이 퇴사를 하면 회사와 직원은 단지 전 직장과 퇴사자라는 기계적인 관계일 뿐이다. 보통의 대표는 회사와 일심동체라고 여긴다. 그래서 회사가 파산하면 동시에 대표의 커리어도 무너져 버리기도 하지만 회사와 직원과의 관계는 고용계약이 끝나버리면 더 이상 서로 간에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않는다. 즉 다른 이와 이미 연애를 하고 있는 여자에게 전남친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아닌 그냥 전남친인 것처럼, 회사에게도 퇴사한 직원은 그냥 퇴사한 직원들 중 하나일 뿐이다.   


회사는 심각한 기억상실증 환자다. 직원이 회사에 재직 당시에는 열성을 다해 일하면서 회사 안에 유무형의 자산들을 쌓아놓겠지만 퇴사 후엔 직원의 흔적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회사 입장에서 퇴사한 직원은 더 이상 기억되지 않는다. 퇴사자가 비운 책상은 순식간에 다른 직원이 메운다. 당연히 회사는 이미 퇴사한 직원을 기억에서 지워버렸기 때문에 퇴사자는 한때 새벽이고 늦은 밤이고 맘대로 드나들었던 회사를 허가 없이 들어가지도 못하고 인트라넷도 전용 이메일도 사용하지 못한다.


삼성에서 일했던 전 직원이 “나는 한때 삼성의 이 부서에서 일했었어.” “저 스마트폰의 부품은 내가 개발한 거야.” “지금 진행하는 저 마케팅 전략은 원래 내가 짠 거야”라고 이야기하며 자신이 회사에 남겨놓은 흔적을 사람들에게 떠벌리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그 직원이 담당했던 일들이 지금도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지 원래 누가 그런 일을 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퇴사한 회사를 다시 가보는 일이 매우 뻘쭘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회사가 그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회사는 수많은 직원의 입퇴사를 경험한다. 퇴사한 직원에 대한 기억을 빨리 잊는 것이 회사에게 여러모로 이득이라 기억상실증 환자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회사와 직원과의 관계에서 사실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쪽은 회사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남녀 간의 이별을 할 때 헤어짐을 많이 겪은 쪽이 내성이 생겨 덜 상처를 받는 것과 비슷한 논리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퇴사한 직원은 더 과감하게 회사를 잊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퇴사 후 직원에게 남은 할 일은 무엇일까? 이별 후에는 다른 연인을 찾아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해야 하는 것처럼 역시 퇴사 후엔 다시 다른 회사에 입사해 그 회사에 열성과 집중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뜨거움이 아닌 쿨함의 태도


스타트업의 창업자 입장에서 직원의 입퇴사에 대해 우선적으로 취할 태도는 뜨거움이 아닌 쿨함이다. 직원이 입사할 때 창업자는 당장 발휘될 그의 업무능력과 열정에 대해 막연한 기대를 할 것이다. 그러나 창업자가 동시에 취해야 할 태도는 회사 상황이 나빠지거나 혹은 회사 안에서 여러 가지 갈등이 발생했을 때 변할 수 있는 직원의 모습을 차분하게 그려보는 것이다. 남녀 간 장기 연애가 어느 한순간에 이별로 종료될 수 있는 것처럼 10여 년의 장기근속 직원도 회사와 트러블이 생기면 언제든지 퇴사할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해봐야 한다. 가족보다도 더 친하게 지냈던 직원이 제 밥그릇을 찾기 위해 사직서를 내놓았다면 야속함을 원망하기보다 직원도 얼마든지 회사에 대한 애정이 식을 수 있고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회사가 있다면 언제든 이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냉정함이 필요하다.


실제로 아끼던 직원이 퇴사할 때는 그 직원을 원만하게 퇴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직원이 더 이상 치열하게 일할 이유가 없어지거나 애사심이 떨어진 후 대표에게 실제로 사직서를 내밀었다면 과감하게 보내줄 수 있는 쿨함이 필요하다. 창업자가 과도한 뜨거움을 억제하고 한발 물러나 거시적인 상황에서 직원을 대한다면 직원의 입퇴사로 인한 상처도 조금 덜 받고 곧바로 기운을 차려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일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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