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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양현 Apr 12. 2018

결국 모든 것은 운이 아닐까?

달콤하기도 씁쓸하기도 했던 7년 동안의 소기업 창업일기

이제 운이 다했나 보다. 회사를 접어야 하나?    
 

2014년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던 사이였다. 야근을 밥먹듯이 하며 준비했던 콘텐츠 제작 비딩 건들과 정부지원금 과제들이 한 개도 성사되지 못했다. 그동안 선정되지 못했다는 통지 문자나 이메일 만이 줄줄이 날아왔다. 통장잔고를 찍어보니 다음 달 직원 월급만 줄 수 있는 잔액만이 남아있었다. 추가 대출이라도 받아볼 수 있나 싶어 은행에 갔더니 정중한 거절 의사만 받았다. 은행에서 씁쓸한 기분으로 나오는데 목구멍으로 혼잣말이 저절로 올라왔다. 


"이제 운이 다했나 보다. 회사를 접어야 하나?"


정신을 차리고 늦은 밤 사무실 내 책상에 우두커니 혼자 앉아서 남은 한 달 동안 내가 취할 수 있는 액션들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고민 끝에 창업 후 같이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회사 식구들을 내보냈다. 최소한의 인원만을 유지한 채 이래저래 융통한 돈을 회사 통장에 수시로 주입하며 버티기 직전에 돌입했다. 여름까지 새로운 일감을 수주하지 못하면 폐업 절차를 밟는 것도 각오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던 게 어느덧 8월이 되었고 용역 몇 개를 수주하면서 가까스로 회사가 숨통이 트였다. 회사 운영과 관련된 운이 아직은 남아있던 셈이다.


넋두리 반, 너스레 반으로 시작된 창업 이야기가 어느덧 반환점을 돌아 종착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디지털 콘텐츠 업계의 소기업을 7년 동안 운영하고 경험하면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대부분 털어놓은 것 같다. 오늘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싶지만 결코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 단 한 가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바로 운에 대해서다.       


사업에 성공한 이를 인터뷰한 기사를 읽어보면 그들은 이런 말을 곧잘 한다. “운이 좋았다. 물론 피나는 노력이 있었지만 운이 잘 따라주었다”라고 말이다. 그들의 성공비법이 운이든, 노력의 결실이든 우리는 그들을 부러워한다. 성공의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어쨌든 그들은 우리에게 성공을 결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주변을 살펴보면 정말로 뽑기를 잘하는 사람이 하나씩 있다. 또 이벤트에 당첨도 잘 되고 시험문제를 풀면 남들보다 잘 찍는 사람도 있다. 대학 진학이나 입사시험을 보면 한 번에 착착 잘 붙는 친구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들은 남들보다 인생살이가 비교적 쉬운 사람이다. 지구 상에 약 75억의 인구가 있는데 만약 운이라는 것을 계량화한다고 가정해보자. 가장 많은 운을 가진 10%의 사람들과 가장 운이 부족한 10%의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운을 기준으로 본다면 상위 10%는 당연히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편할 것이다. 무얼 해도 잘되고 손만 대면 모든 게 술술 풀리기 때문이다.     



운의 본질


얼핏 보면 운이라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운명이나 업보가 정해져 있다는 카르마 식의 체념적 사고관의 결과로도 보인다. 카르마는 전생이 원인으로 작용하여 내가 지금 살면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한낮 결과에 지나지 않음을 의미한다. 지금의 삶이 일종의 인과응보인 셈이다. 이런 운명 결정론에서는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결과를 바꿀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결과들은 전생에 대한 현재의 반응일 뿐이다. 결국 이런 식의 사고방식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는 것 없다는 체념론을 떨쳐내기가 어렵다. 인도가 신분제의 잔재를 쉽게 떨처내지 못하는 이유도 인도인들의 삶에 힌두교에 기초한 체념론적인 운명관이 강하고 깊게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운이 운명 결정론의 결정체라는 생각에 반대한다. 오히려 운에 대해 합리적인 사고방식으로 접근하고 싶다. 전 세계에 수십억이라는 사람들이 있기에 확률 구조상 모든 사람들에게 동시다발적으로 공평하게 돌아갈 수 없는 것으로 운의 속성을 분석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즉 물한바가지를 두고 여러 사람들이 동시에 마시지 못하고 줄을 서서 한 사람씩 차례로 마실 수밖에 없는 상황과 비슷한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만약 지구 상에 인구가 1명만 있다면 확률 구조가 소멸되기에 운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다고도 볼 수 있다. 결국 운은 우리가 체념하고 받아들여야 할 운명 같은 것이 아닌 수십억 인구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자 불평등의 산물인 것이다. 그리고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는 이러한 불평등과 차별을 최대한 시스템을 통해 인위적으로 통제하거나 극복하자고 주장한다.     


그럼 어떤 것들이 운이 될 수 있을까? 자신을 발탁해서 이끌어주는 선배 같은 귀인을 만나는 것이나 경제성장률이 7%에 가까운 고도성장기나 컴퓨터, IT 관련 산업이 부흥했던 1980년대 초반처럼 시대를 잘 타고나는 것도 운으로 볼 수 있다. 또 당연히 재산을 많이 가졌거나 고학력 전문직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것, 이른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것도 운에 속할 것 같다. 또 창업자라면 미국처럼 사회인프라와 기업 시스템이 완비가 되었으며 전 세계 인재를 불러일으키는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나는 것도 복일 것이다. TV에서 IT계의 라이벌이라며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젊은 시절을 보여준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나는 TV 속 20대 젊은 청년에 불과한 두 사람의 모습과 이들을 에워싼 활력 넘치는 컴퓨터 산업계를 보면서 이들에게 성공의 기운을 강하며 느끼고 부러움을 느꼈다. 따지고 보면 이들은 컴퓨터 산업의 태동기에 그것도 미국에서 태어나 성공할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종합적인 운을 타고난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도처에 다양하게 깔려있는 운들을 안타깝게도 어떤 이는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처럼 세례를 맞을 테고 어떤 이는 비켜갈 것이다.      



운과 노력의 상관관계


그렇다면 우리는 구조상 어쩔 수 없이 유발되는 불평등과 그 결과인 운에 순응해야만 할까. 살면서 주변을 살펴보고 경험해보니 운을 거머쥐는데도 약간의 노력이 필요한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보자. 복권에 1등으로 당첨되는 것은 확률적으로 매우 희박하다. 그러나 복권을 매주 사는 남자는 그래도 복권에 당첨될 확률이 희미하게나마 존재한다. 반면 복권을 사지 않는 사람은 당첨될 확률이 제로다. 결국 복권에 당첨된 사람은 복원을 구입해서 긁는 노력을 했기 때문에 운을 얻은 것이다.     


복권에 당첨될 확률까지는 아니더라도 백만장자가 되는 것 역시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스타트업의 창업자는 회사 경영을 통해 백만장자가 될 기회가 존재한다. 1등 복권에 당첨될 확률이 몇백만 분의 일이라면 스타트업 창업자는 적어도 100명이나 1000명 중 1명은 백만장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직장을 다니는 연봉 5천의 월급쟁이가 백만장자가 될 확률은 부모에게 재산을 물려받거나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기가 막힌 재테크를 하지 않는 이상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결국 창업을 하고 회사를 경영하는 창업자의 노력이 운을 만나는 데 기여한 것이다. 또 창업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창업한 회사들이 연이어 파산하더라도 계속 창업을 시도하는 이가 창업을 처음 해본 이보다는 확률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실리콘밸리 투자자가 창업 유경험자를 선호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고 재도전이 그만큼 중요한 까닭이기도 하다. 물론 노력을 한다고 곧바로 운을 거머쥘 순 없다. 복권 당첨확률만큼 희박하진 않지만 스타트업 중에 상장을 하고 100억 인수합병이 되는 성공적인 엑시트를 하는 것은 확률상 여전히 소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엄청 엄청나게 노력을 다해서 성공에 다가가고자 했는데 결국 운이 따라주지 못해 스타트업을 성공시키지 못했다면 그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다음엔 순순히 그 실패를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운이 뒷받침해주지 않는 이상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타트업의 경우 5년 생존율이 30%가 되지 않는 것처럼 창업은 사실상 노력과 상관없이 상당수가 실패한다고 보는 게 맞겠다. 그렇지만 뭐 어쩌겠나. 열심히 노력했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았을 뿐이다. 최근에 운칠기삼의 비율이 조정되어 운구구일이라는 말까지 나온 것 보면 그만큼 회사를 성공시키는 데 있어서 운이 커다란 작용을 한다고 밖에 볼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운이 따라주지 않은 실패의 결과를 다른 의미로 바꿀 수 있다. 실패했지만 그동안 회사를 일구기 위한 수많은 땀과 노력의 시간, 경험은 무엇보다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건축현상설계공모를 준비하면서 겪은 내용을 다룬 책 <연전연패>에서 다른 건축가들과의 경쟁하면서 겪은 수많은 좌절과 패배들이 종국에는 창작을 위한 밑거름과 자신을 단련시키는 경험으로 바뀌었다고 털어놓는다. 


노력을 통한 경험들은 마치 우리가 승패와 관계없이 열심히 마라톤 코스를 완주했을 때 느끼는 희열, 뿌듯함과도 비슷하다. 또 소설가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 스타트업을 성공시키고자 한 노력과 경험 자체가 어쩌면 우리를 단단하게 해주는 근육으로 바뀌어있지 않을까. 그 근육만 단단하게 다져졌다면 기초체력을 가지고 우리는 얼마든지 또 다른 인생의 한순간을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테레사 수녀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신은 우리가 성공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가 노력할 것을 요구할 뿐이다.

- 테레사 수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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