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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검 작가 Jul 15. 2024

남자로 태어났으면

오히려 나는 남자로 태어나고 싶었다

엄마, 엄마는 내가 남자아이로 태어나지 않아서
아쉽지는 않았나?
딸이 아니라 오히려 아들이기를 바라지는 않았나?


몇 년 전, 실제로 내가 엄마에게 지나가는 말로 물었던 적이 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못 들을까 봐 불안해하며 물었던 게 아니다. 오히려 오랫동안 내가 아들이 아닌 것에 대해 불만이 있어서 물었던 것이다. 그래서 엄마가 어떤 대답을 하든 나는 상처받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니? 엄마는 오히려 딸이었으면 했는데.
아들이 살갑게 대하는 집안도 있겠지만,
보통은 딸이 나중에 커서
친구처럼 지낼 수 있으니까.


무심했던 내 마음에 약간의 요동이 치고 있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 감정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감동인 것인지 아니면 내심 좋았던 것인지.


그럼 할머니나 외할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아빠는
내가 아들이 아니라서 아쉬워하지는 않으셨나?


나는 마음속에 숨겨놨던 질문을 추가로 더 꺼냈다. 뭔가 알고 싶었다. 그냥 나 듣기 좋으라고 듣는 대답이 아닌, 솔직한 엄마의 대답이 듣고 싶었다. 쓸데없는 질문인 줄 알면서도 말이다.


딱히 그런 게 없었다.
친가 쪽에는 이미 아들 둘(오빠가 두 명 있다) 있고 거기다 너희 아빠는 또 막내 아니가.
물론 밑에 막내 동생이 있었지만
일찍 돌아가셨으니…
아들이든 딸이든 그저 좋아하셨지.


실제로 태어난 이후로 참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자랄 수 있었다(보통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부모님뿐만 아니라 가족, 친척, 친척분들의 지인들 사이에서까지. 예쁨도 많이 받고 관심도 많이 받으며 그렇게 성장했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기까지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아버지의 존재는 내 성장 과정에 있어서 큰 영향을 끼쳤고 나는 크면 클수록 예쁨 받았던 과거는 점점 잊게 되고 대신 그 자리에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과정으로 인해 어느 순간부터 내 머릿속에서는 딸이 아니라 아들로 태어났으면,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다.




항상 모든 게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보통은, 그러니까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평균적으로는’, 그래도 딸보다는 아들이 강하지 않은가. 특히 물리적인 힘에서만큼은 말이다. 그래서 나는 성장 과정에서 아들로 태어났었으면 차라리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나이 어릴 때는 아들이든 딸이든 부모님의 싸움이나 아버지의 불같은 성격이 마냥 무서워 벌벌 떨었겠지만,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는 딸보다도 아들이 더 강하지 않았을까, 혹은 물리적인 힘을 보여주어서라도 아버지가 나에게 그렇게까지 함부로 하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들을 참 많이 했었다.


이런 희망을 이루지 못하고 지금처럼 여전히 딸로 태어났어야 한다면, 차라리 내가 둘째나 막내로 태어나고 위(첫째)로는 오빠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다. 내가 둘째가 되든 막내가 되든, 오빠가 나를 이뻐해 주든 괴롭히든, 어쨌거나 ‘오빠’라는 존재가 일단 딱 버티고 서있으니 나는 좀 더 자유롭게 행동하거나 좀 덜 무서워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딸이었고 장녀였다. 10대까지만 해도 내가 장녀라는 것에 대해 얼마나 많이 부정했는지 모른다. 왜 내가 장녀로 태어나서, 왜 내가 딸로 태어나서, 이런 이유로 부정적인 생각을 참 많이 했었다. 그저 힘없이 울고만 있거나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 그 순간, 그 공포감이 너무나도 싫었다. 그래서 힘 있는 아들로 태어났으면, 하는 생각을 수없이 했던 것이다.




30대가 된 지금(만으로는 마지막 20대)은, 어릴 때만큼이나 아들로 태어났으면 하는 욕심, 희망 같은 게 별로 없다. 어차피 딸로 태어난 거 바꿀 수도 없고 태어난 김에 할 수 있을 만큼 강인하게 살아가야지 하는 생각이 더 크다. 물론 마음속 병이 다 낫지를 못해서 속은 여전히 물렁물렁하지만 말이다.


다만, 가끔씩은 한 번씩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만약 아들로 태어났으면, 그때는 좀 더 강하게 어머니와 동생을 지킬 수 있었을까, 조금은 덜 무서워했을까 하는, 그런 생각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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