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2024년 7월 18일 목요일
쌤, 그러니까 왜요? 왜 그렇게 생각했어요?
왜 이게 그렇게 돼요?
왜요?
왜요?
왜요?
처음 보는 공문에 대한 해석하는 것에서부터 내가 어려움을 느끼며 끙끙 앓고 있는데 나를 인수인계하는 조교샘은 왜 내가 그렇게 생각했고 왜 그렇게 말을 했는지 자꾸만 ‘왜’라는 질문을 반복적으로 하며 추궁하듯 내 대답을 이끌었다. 그래서 머리를 돌려가며 내가 대답을 했음에도 자신의 질문에 부합하는 답을 내가 하지 못해서인지 자꾸만 내게 반복적으로 질문만 해댔다. 반복된 질문에도 내가 정답을 말하지 못하면 깊게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다시 나를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쌤… 이거 해석할 줄 알아야 돼요.
쌤 한 마디에 졸업할 수 있는 학생이 졸업을 못하게 된다거나
다른 사람들이 피해입을 수가 있어요.
그녀의 다그침은 나를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고 익혀둔 것마저 자꾸만 까먹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의 목과 입, 입술은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대답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자꾸 오답만 이야기를 하니까.
순간적으로 봤다고요?
왜 그렇게 봐요?
그렇게 봤다는 건 무책임한 걸로밖에 안 보여요.
그리고 원래 오늘은 다른 걸 알려드리려고 했어요.
공문 해석은 어제 하루 만에 끝났어야 했고요.
그런데 이틀 째 됐는데도 이러면…
나는 어제 처음부터 밝혔다. 사무직과 행정업무는 이번에 처음 해보는 거라고. 잘 모른다고. 그랬던 내게 인수인계 해주는 조교쌤은 내게 첫날에 공문 해석하는 걸 다 익혔어야 했고 오늘은 새로운 걸 배웠어야 했다고 이야기했다. 마음이 착잡했다. 나 자신이, 스스로가 문해력이 이렇게까지 떨어지는 사람이었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일단 내일 오전에 다시 한번 해보고요.
내일 오전에 해보고 괜찮으면 다음 주 월요일에 저 연차 냈으니까 혼자 나와서 일을 해보실 거고
똑같이 잘 못하면 못 나올 거예요.
그러고 화요일부터 출근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점, 알아두세요.
막막했다. 이틀 만에 이렇게 판가름이 나다니. 내가 이렇게까지 못 알아듣는 사람이었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쌤, 팀장님이 잠시 보자고 하셔서 우리 올라갔다 와야 할 것 같아요.
혼자 점심 아닌 점심을 먹고 화장실까지 갔다 와 막 자리에 앉으려고 할 때, 인수인계 해주는 조교쌤이 내게 팀장님께서 보자고 하셨다고 말했다. 그래서 얼떨결에 조교쌤 따라서 팀장님을 뵈러 가게 되었다. 팀장님은 나를 보고자 하신 거라 인수인계 해주는 쌤은 내려가봐도 좋다고 하셨다.
음, 일은 어때요? 할 만한가요?
아까 조교쌤 말로는 업무에 대해 많이 어려워하고 잘 모르는 것 같다고,
그래서 가르쳐주고 인수인계 해주는 게 힘들다고 그렇게 말하던데…
다른 학교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학교 조교는 주로 행정업무를 전반적으로 맡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래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게 좋고 프로그램이야 일을 하면서 조금씩 익혀나가면 되는 거니까 괜찮은데
이 전반적인 행정 업무를 잘 모르고 또 못한다면 아무래도 서로가 힘들어질 수도 있거든요.
그러니 일단 한 번 해보고, 아무래도 아니다 싶으면 일찍 말해주면 좋겠어요.
당장 다음 주만에 공고 올리고 사람도 뽑고 해야 하니.
일단 한 번 해보고, 학과장님하고 얘기해 보세요.
나 혼자 밥 먹으러 간 사이 그새 이런 이야기들이 오고 갔구나. 안 그래도 긴장감으로 인해 몸이 굳어져 있는 상태였는데 더욱 몸이 굳는 듯했다. 점점 용기가 없어졌다. 차라리 내가 하루라도 빨리 그만두는 게 현명한 판단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학과장님 추천으로 인수인계받으러 왔는데 내가 제대로 일을 잘하지 못하는 듯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피해만 주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탈탈 털리고, 힘없이 퇴근을 하는데 먹먹함이 몰려왔다. 솔직히 말해 자신이 없었다. 애초에 행정 업무가 처음이라 처음부터 자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잘 배워서 먼 훗날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려고 했는데. 공문 보는 것부터 어려움을 느끼고 있으니 이 일이 과연 나랑 맞는 건가 싶은 생각이 수없이 밀려왔다. 나는 왜 이렇게 잘 못 알아듣고 이해하는 게 늦을까 하는 생각도 참 많이 들었다. 퇴근 후 엄마를 잠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지만 그 사이 나도 모르게 감정이 북받쳐 올라오기도 했다.
집에 오니 힘이 하나도 없어서 침대에 뻗어버렸다. 그렇게 좀처럼 잘 오지 않던 졸음이 밀려왔다. 그래서 시간만 맞춰두고 잠시 잠들어 버렸다.
한 시간 정도 조금 지나 맞춰둔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일어나기가 버거워 5분만, 이러면서 누워있는데 갑자기 나를 추천하셨던, 교수님이자 학과장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놀란 마음에 벌떡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이제 이틀 정도 됐는데 어때요? 일은 할 만해요?
(중략)
일처리 잘하는 것도 좋지만, 나는 우리 학생들한테 친절하고
또 교수님들하고 원활하게 소통이 되는 학생을 원합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생각난 사람이었고요.
업무는, 일을 하면서 조금씩 배워가면 됩니다.
저도 아직까지도 잘 몰라요.
도저히 못하겠다고 하면 내가 더 이상 뭐라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이왕이면 돌파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교수님은 내가 일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물론 교수님께서 직접적으로 나를 가르쳐주시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일을 배우는 것에 대해 직접 보신 분이 아니기에 그저 좋게 말씀하신 걸 수도 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무엇이 나를 위한 선택인 것인지 잘 모르겠다. 두 사람은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답답해하거나 혹은 멀리 생각했을 때를 대비해 결정을 내리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하고, 한 사람은 내가 해봤으면 하니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지 모르겠다. 나 자신마저 자신이 없는 상태이니 그냥 빠르게 관두는 게 옳은 판단인 것인지, 아니면 묵묵하게 일단 해보는 게 현명한 판단인 것인지. 피하기만 한다고 해서 모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건 아니지만,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게 너무나도 자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