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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검 작가 Jun 23. 2022

담뱃갑과 흡연자 손님들의 부탁

<3> 같은 담뱃갑을 보고 느끼는 자세와 행동이 다른 알바생과 손님들

한 달. 내가 담배와 친해지기까지 걸린 시간. 한 번씩 버벅거릴 때가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손님들께서 찾으시는, 그러니까 인기 있는 담배들은 몇 가지로 추려낼 수 있었기에 처음에 비해서는 덜 긴장한 채로 담배를 팔 수 있었다.


에쎄 라이트, 말보로 라이트. 담배 이름을 외우는 내내 헷갈렸던 두 담배. 분명 진열대에 적혀있는 이름은 '에쎄 체인지'나 '말보로 레드'인데 왜 사람들은 적혀있는 이름보다 '라이트'란 말을 좀 더 자주 언급했던 걸까. 대부분의 담배 이름을 외우긴 했지만 여전히 담배와 친하지는 않았던 내겐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경우였다.


하지만 담배를 구입해가시는 손님들 덕분에 나중에는 그마저도 익숙해지게 됐다. 어느 순간부터는 손님께서 요구하시는 담배 이름을 듣자마자 몸부터 반응하게 됐달까. 이래서 사람이 익숙해지는 게 무서운 거구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어느덧 내가, 담배 쪽으로 몸을 돌리면 이미 손이 담배를 꺼내 들어 포스기에서 바코드를 찍고 결제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에이, 그 그림 징그럽다. 다른 그림으로 도.


편의점 알바에 익숙해질 무렵부터 은근히 자주 듣던 말, 바로 그림이 징그럽거나 잔인해 보일 때, 최대한 덜 징그럽고 덜 잔인한 그림으로 바꿔달라는 말이었다. 경상도 아저씨분들의, 그 특유의 투박한 사투리와 반말은 상관없었다. 이미 그러한 말들은 어느 정도 많이 들어온, 같은 부산 사람이니까.


처음에는 나도 담뱃갑에 그려진 다양한 그림들이 낯설게 보였다. 아무래도 처음에는 사람의 장기가 그려진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시선을 회피하게 만든달까. 하지만 꾸준히 일을 해야 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그 어떤 그림이라도 익숙한 눈으로 매번 바라보며 담배를 팔기 시작했다.


그런데 흡연자이신 손님분들 중에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 사람이 있구나 싶을 때가 더러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내어드린 담배에, 그림이 징그럽다며 다른 그림으로 그려진 걸로 바꿔달라고 하시는 분들을 볼 때였다.


초반에는 그렇게 요구하시는 손님들의 모습이 흥미롭기만 했다. 흡연하시는 분께서 단순히 그림이 징그럽단 이유로 같은 담배인데 다른 그림이 그려진 걸로 바꿔달라고 하시니 말이다. 어차피 담배  피우시고 나면 담뱃갑 쓰레기통에 버려질 텐데. 하지만 손님의 요구이시기도 하고 손님 또한 의견을 굽히지 않으셨기에 묵묵히 바꿔드리곤 했었다.


하지만, 점점 편의점 알바에 익숙해질수록 그런 요구들을 들을 때면 조금씩 짜증이  것도 사실이다. 이유는 똑같다. 그저  생각과 감정이 바뀌었을 뿐이다. 사람이 초심을 유지한 채로 사람을 대한다는  이렇게 힘들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일이 익숙해지니까 손님들의 사소한 요구가 때로는 귀찮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나중에는 아무 데나 버려질 담뱃갑인데 당장의 필요에 의해서 담배를 피우는데 그림이 징그럽고 해괴하단 이유로 계속 뒤로 진열되어 있는 담배들을  꺼내 보이며 끝끝내  해괴한 사진이 실려있는 것으로 사가시는 손님들을, 어느 순간부터는  모습들이 보고 싶지가 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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