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지긴 한 걸까.
대학생 때부터였지 않을까 싶다. 동기들과 시간표가 달라 공강 시간을 혼자 보내게 되면서 혼자 있는 것이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던 것 같다. 건물 1층 로비나 학교 휴게실에 가면 다른 사람들도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곧 수업에서 친구들을 만날 테니까 이 시간을 혼자 보내는 것은 필요한 프린트도 하고, 과제도 할 수 있는 유용한 일이었다. 그래도 학생식당에서 가서 혼자 밥을 먹는 건 하지 못했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 앞에 혼자인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 시간과 공간에 혼자 인 것이 이 세상에서 혼자인 것 만 같았다. 그래서 밥에 국이 먹고 싶은 날에도 꾹 참고 매점에서 샌드위치를 사 먹었다.
학창 시절에는 혼자인 것이 정말 싫었다. 중학교 때 다른 반 친구와 집에 같이 가기 위해 두 시간을 기다린 적이 있다. 차가운 복도 계단에 교복 치마를 입고 앉아 그 친구가 청소를 마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렸다. 집 방향이 달라 교문만 나서면 헤어져야 했지만 말이다. 그 시절에 학교 운동장을 홀로 가로지르는 것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도 나를 지켜보지 않음에도 무의식의 나에게 내가 외톨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만 했다. 혼자 있는 사람은 친구가 없는 사람이었다. 여러 행동에 각각의 친구가 필요했다. 급식 같이 먹을 친구, 쉬는 시간에 같이 떠들 친구, 등하교를 같이 할 친구가 따로 있었다. (그 목적에 필요한 친구들이었는지 지금 연락처가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돌이켜보면 나는 친구 사귀는 것을 잘하지 못했다. 항상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가졌다. 그룹보다 일대일이 편했다. 학창 시절 내내 시기별로 딱 한 명의 친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전학을 가면 남은 학년을 혼자 보냈었다. 함께 노는 것이 재미있는 친구들은 있었지만 집안 분위기가 비슷하거나 가치관이 맞는 친구는 없었다. 사는 곳으로 묶인 모집단 안에서 얘기가 통하는 친구를 만드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게다가 해가 바뀌어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것이 꽤나 부담스러웠다. 오히려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이 훨씬 좋았다. 전국에서 모인 비슷한 공부 실력의 같은 진로를 꿈꾸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외국 생활 5년 차. 예전보다 친구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외국에서도 금방 그룹을 만들어서 여행도 같이 가던데 나는 여전히 한 손에 꼽을 만큼의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 게다가 얼마 전에 지역 이동을 해서 지금은 정말 친구가 한 명도 없다. 그토록 싫어하던 혼자가 또 되고 말았다. 이제 혼자 식당에 가서 밥도 먹고 여행도 갈 수 있는데. 그냥 누군가와 같이 할 때만큼의 재미가 없다. 둘이라면 주말에 집 근처 맛집도 가고 유명 관광지 투어도 할 텐데. 혼자인 나는 대충 밥을 때우고 유튜브로 맛집 탐방 영상을 본다. 하고 싶은 것들은 친동생이 한국에서 놀러 오면, 장거리 연애 중인 남자 친구가 나를 방문하면 할 것들로 미룬다.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현재의 나날들은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다. 맛있는 요리도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고, 새로운 경험은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고, 둘만의 세계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싶다. 둘이서는 처음 보는 낯선 곳이 함께 가본 곳이 되고,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둘러싸여 오랫동안 알고 있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깨닫는다. 그날이 오려면 아직 멀었으니 결국 혼자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혼자 만의 공간에서, 혼자 밥을 먹고 시간을 보내야 한다. 분위기가 좋은 카페에 가거나 미술관에 가면 좋을 텐데. 혼자서는 일정을 미루는 것도 쉬워서 주말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것이 당연해진다. 모든 것을 혼자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는데. 혼자서는 여전히 하루가 채워지지 않고 조금씩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