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만에 적어보는 안부
5월 첫째 주 일요일 아침, 9시에 눈이 깨서 30분 정도 침대에서 핸드폰을 보면서 뒹굴었다. 9시 반, 몸을 일으켜 키친으로 나와 전기포트에 물을 끓였다. 지난 1월 집 앞에서 열린 토론토 티 페스티벌에서 사 온 차들이 조금 남아있다. 물을 계속 우려서 몇 시간 동안 마실 수 있는 전통차기 때문에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과 마음에 여유가 생겨야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나는 연재를 하기에는 틀린 작가다. 작가의 서랍에 고인 글들이 스크롤을 한참 내릴 만큼 있지만 어느 하나 마무리 짓지 못하고 오늘은 안부 글을 적으려고 한다. '안녕, 어떻게 지내? 3'이 2023년 5월에 써서 올해 1월에 마무리한 글이니 다시 1년 만에 쓰는 시리즈가 되었다. 나는 과연 어떻게 지내고 있는 걸까? 인사 치례성 대답 말고 마음 정리를 할 때가 되었다.
지난달은 몸이 너무 바쁜 달이었다. 작년 10월에 3개월 동안 한국에 다녀오면서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었다가 올해 2월 세금 회사에 새 직장을 얻었다-한국에서 마케팅을 해서 기술이 없는 나는 캐나다에서 분야를 가리지 않고 각종 사무직 일을 하고 있다. 새 직장은 다운타운에 오피스가 있어서 집 현관에서 출발해 지하철을 타고 8층에 있는 내 책상까지 총 20분이 걸리는 통근이 마음에 들었다. 전체 직원이 60명 정도 되는 회사인데, 한국인이 나밖에 없는 데다가 현지에서 학교를 나오지 않은 사람도 내가 유일했다. 특정 단어의 발음 문제는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문법을 실수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질문 하나를 하기 전에도 많은 자기 점검 필요했다. 사람들의 이름을 듣고 스펠링을 어떻게 쓰는지, 어떤 first name이 어떻게 다르게 불리는지(Bill이라고 불리는 모든 사람들의 원래 이름이 사실 William인 것 같은) 하는 것들이 나에게만 생소했다. 내가 시니어로부터 시스템을 다루는 방법을 배울 때 몇 번째 버튼을 클릭해야 하는지 외운다면, 나랑 같이 입사한 이탈리아 이민 3세대 동료는 그 짧은 순간에 어떤 단어였는지 읽고 그 문맥에서 쓰인 뜻을 이해해서 일을 했다. 스몰 토크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리액션이 미드에서 배운 문장들로 정해져 있다면, 그녀는 본인의 문화와 경험에서 나온 진실된 반응을 해주었다. 나는 지각 한번 한 적 없이 출근하고, 더 빠르고 실수 없이 일하고, 사소한 잡무도 자원해서 했지만 말을 유창하게 하는 그녀가 일을 더 잘하는 직원으로 보였다. 불평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4월 개인 세금 신고의 달이 찾아오고 평일 야근과 주말 출근이 요구되는 업무 양이 주어졌다. 2019년에 한국 여행을 다녀와서 인지 한국 문화를 좀 아는 듯한 러시아 출신 동료가 나에게 요새 한국에서 일하는 것 같지 않냐고 물어봤다.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영양제 챙겨 먹을 시간도 없이 사무실로 출근해서 점심, 저녁을 사다 먹고 일하다가 저녁에 퇴근해서 소파에서 핸드폰 하다가 잠드는 일상. 주말에도 늦잠을 자지 못하고 일어나서 노트북을 켜는 날들이 이어졌다. 한국에서의 삶과 다른 점이라면 이 날들이 일 년에 한 번 찾아오는 일시적인 시즌이라는 것, 그리고 오버 타임에 대한 적절한 페이와 추가적인 보상이 지급된다는 것.
바쁘다고 빨래나 청소 같은 집안일이 밀리는 건 아니었지만, 운동을 그만두게 되었다. 30대의 운동은 지속적으로 느껴지는 통증의 완화와 몸의 퇴화를 늦추기 위한 목적이 큰 데 이상하게도 바쁘면 가장 먼저 포기하게 된다.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살이 조금 붙었고 혼술을 다시 시작했다. 회사 건물을 나오는 순간부터 머릿속에 맥주 생각이 가득하다. 종류도 한정적이고, 비싸고, 인터넷 주문도 안 되는 술을 이렇게 찾게 되는 걸 보면 내가 만약 지금까지 한국에 살고 있었을 경우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어디에서 사는 삶이 더 행복할까?'라는 이민 7년 차의 고민도 일이 너무 바빠지니 떠오를 겨를이 없었다. 해가 늘어남에 따라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집에 갖추게 되고, 비싼 금액을 거침없이 결제하는 소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이민 첫해에 마트에서 만원이 넘는 식재료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면, 이제는 먹고 싶으면 3만 원짜리도 장바구니에 넣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시대를 함께 살아온 친구들이 그립고, 가족의 빈자리가 크지만 감정적인 결핍이 너무 익숙해져서 그것들이 채워질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느낌이랄까. 한국에 있으면 매일 감정선이 오르락내리락 쉴 새 없이 동요된다. 기쁨을 주는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많은 만큼 슬프거나 화가 나게 되는 현실들이 있다. 캐나다에 있으면 표정이 없지만 대신 아픔도 없는 세상에 있는 기분이다. 모든 것들이 무난하다. 음식도, 거주 환경도, 일상도 크게 나쁘지 않다. 세상에 더 좋은 것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여건상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들만 누리는 것이다. 여전히 한국 드라마가 제일 재미있고, 한국 남자 배우들한테 더 마음이 설레고, 한국 노래가 더 좋다.
그렇지만 나는 캐나다에서 나고 자라서 한국 티브이 프로그램을 전혀 보지 않고, 한국말을 열 마디도 하지 못하고, 한국 음식을 일주일에 이틀 이상 먹지 못하는 백인 남자친구가 있으며, 룸메이트와 함께 방 2개, 화장실 2개가 있는 아파트의 월세 400만 원을 내고 있으며, 토요일마다 영주권자 대상 무료 영어수업에 나가고 있다. 회사 네스프레소가 너무 지겨우면 출근길에 스타벅스에 들리고, 머리에 새똥 맞은 날엔 로또를 5장 사고, 집집마다 오븐이 있어서 시작하게 된 베이킹을 하면서, 나는 그렇게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