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7년 차
최근 캐나다 이민을 준비하고 계시는 분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직장의 스폰을 통한 이민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과 함께 마지막에 물어보셨다. 현재까지도 캐나다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지.
내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막상 살면 일상은 한국과 똑같다.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머리 감고 출근준비하고 5시까지 어떻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일한 다음 집에 와서 저녁을 해 먹고 자기 전까지 넷플릭스를 보는 일상. 다른 사람들이라고 다르지 않겠지. 주말에는 장을 보거나 세차를 하고 여유가 되면 외식을 하는 평범한 날들. 그 생활에 얼마나 만족하느냐는 개인차가 있을 것이기에 참고하는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 요새 역이민 관련 유튜브 영상이 많이 보인다. 당황스러운 영상들도 있었다. 이민에 실패하고 체류 비자가 만료되어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역이민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반면 힘들게 얻은 영주권을 버리고 온 가족과 함께 다시 한국으로 가시는 분들 이야기도 보았다. 여러 이유들이 언급되었지만, 가장 큰 부분은 말도 안 되게 비싼 캐나다의 집값과 물가일 것이다. 둘이서 동네 밥집에서 저녁 한 끼를 먹으면 8만 원이 나오는 데 얼마를 버는지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세금은 수입의 반이고 받는 의료 혜택의 질은 너무나 떨어진다. 한국에 캐나다가 어떻게 비치는지 잘 모르겠지만 캐나다 거주민들이라면 현재 캐나다의 어떤 문제가 있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아마 한국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뼛속까지 알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한다.
작년 가을 한국에 3개월 정도 머물렀었다. 아버지 49제를 치르고 출국한 뒤 2년 반 만에 가는 한국이기에 엄마, 동생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목표였다. 친구들과도 한국 왔다고 보자 해서 보는 게 아니라 서로의 일상을 보내다가 금요일 밤에 만나자 해서 보는 만남을 가지고 싶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룸메이트와 살던 아파트의 리스 계약을 정리했다. 모든 가구를 팔고, 남은 짐을 창고를 빌려 맡긴 후 비행기에 오르는 큰 여정이었다. 오랜만에 간 한국은 너무 좋았다. 한국에 살 때는 몰랐던 것들이 외국인의 눈으로 보니 보이기 시작했다. 앱으로 집의 가스레인지나 보일러를 켜고 끌 수 있다는 것부터 놀람의 시작이었다. 어렸을 때 상상하던 것들이 현실이 되어 있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집안에서 누를 수 있고, 주차장에 등록한 차량이 도착하면 알림이 온다. 음식은 또 얼마나 싼지. 싸다 김밥이라는 체인점에서 음식을 3개 주문했는데 16,000원이었다. $16불이라니(토론토 식당들의 메뉴 1개의 가격은 보통 $24이다). 게다가 음식점 계산서에 13%의 세금이 더해지지도 않고 팁을 낼 필요도 없다. 정말 천국이었다. 지난번 뉴스에서 논란이 된 적은 양의 광장시장 음식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내 주위 누구도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에게는 그 가격에 그 양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음식점이 너무나 많다. 세상 각지에 음식을 현지 퀄리티로 쉽게 맛볼 수 있으며, 선택의 옵션이 정말 다양하다. 캐나다에서는 팔지 않아서 먹지 못했던 평양냉면, 장어구이 같은 것들을 먹으면서 원할 때 바로 먹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슬펐다. 카페는 또 얼마나 발전을 했는지. 상상을 초월하는 인테리어와 메뉴들을 보면서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TV를 틀면 덕질하고 싶은 연예인들이 나왔고, 거리에서 들리는 노래들은 가사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고,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이 생겼다. 감정이 생긴 기분이었다. 나이가 들고 딱히 좋아하는 것이 없는 무감정의 사람이 된 줄 알았는데, 한국에 오니 나는 좋아하는 것들이 많은 사람이었다. 뉴욕의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소주잔 한잔에 $16을 내고 마신 청주를 한 병에 $16에 살 수 있는 것도 행복이었다. 아 나는 와인보다 청주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지. 요즘 나오는 막걸리는 이런 맛이구나. 느끼는 작은 것들이 주는 기쁨이 너무 커서 세상이 살만하다고 느껴졌다.
어느 날은 대학교 친구와 국밥집에서 점심을 먹다가 오래된 배려를 너무 익숙하게 받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말하지 않아도 휴지를 꺼내주고, 젓가락을 떨어뜨리면 새로 주문해 주는데 그게 서로에게 너무 당연해서 내가 일일이 "땡큐"라고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편하고 따뜻했다. 배우 손석구 님이 캐나다 생활을 정리하고 인천 공항에 입국한 날, 오랫동안 쌓여있었는지도 몰랐던 모든 긴장이 다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외국 생활이 그렇다. 아무리 익숙해져도 내가 몰랐던 것들이 항상 있고, 익숙해질 수 없는 것들에 긴장하게 되고, 그곳의 문화를 존중하며 살다 보면 피로가 쌓인다. 회사에서는 말을 하기 전에 문법이 맞는지 머릿속으로 곱씹고 구글로 검색해 봐야 하기 때문에 한 마디 한 마디가 신중하고, 단번에 읽히지 않는 영어덕에 업무 시간에 남들보다 더 소요된다. 최근 나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건조한 공기와 3월에도 영하인 날씨인데, 수족냉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에게는 온돌방이 너무 그립다. 발을 디딜 때마다 소름 끼치게 차가운 바닥이 더 싫을까 미세먼지가 더 싫을까 생각한다. 한국 사회는 달라졌고, 달라지고 있다. 이제 나이 먹고도 혼자 사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출산은 선택이 되었고, 전세 제도가 있으며, 금액을 감당할 수 있는 피부과들이 많이 있다. 과연 한국을 떠나는 게 옳은 선택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