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 문화
한국에 살 때는 캐나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고 장담한다.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 퀘벡이 유명해지기 전에는 빨간 머리 앤의 고향, 내가 좋아하는 유키 구라모토의 곡이기도 한 Lake Louise가 있는 곳,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딴 밴쿠버 동계 올림픽이 열린 나라 정도의 정보가 있었다.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어떤 환경인지 생각하면 딱히 그려지는 이미지가 없었다. 그렇기에 해외여행을 계획할 때도 목적지로 캐나다를 고려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느덧 캐나다에 산 지 5년이 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캐나다에 대한 선명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없는 이유는 너무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과 프랑스 이주민들이 시작한 이 나라는 넓은 땅덩어리를 기반으로 매년 40만 명 넘는 이민자를 받아들이고 있다. 이민자들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수업에는 이탈리아, 포르투갈, 터키, 콜롬비아, 홍콩, 러시아, 이란, 케냐, 시리아 등에서 온 사람들이 어우러져 있다. 무심코 거리를 걷다 보면 내가 지금 어떤 나라에 살고 있는지 헷갈리기도 한다. 브라질 주짓수 도장, 한국 한의원, 태국 마사지샵, 자메이칸 레스토랑이 한 거리에 나란히 붙어 있다. 다문화 국가라고 지칭하던데 이 정도면 지구촌을 한 나라에 몰아넣은 수준이다.
당연히 이 모든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만든 마트가 있다. 우리 집 앞에는 큰 중동 마트가 하나 있는데 거기 신선 코너에는 세상에서 제일 꾸덕한 요거트와 요즘 한국에서 유행이라는 카이막을 판다. 회사 건물 밑에 있는 중국 마트에는 동남아 여행을 가야지만 볼 듯한 과일들이 널려있다. 식당으로 말하자면 더 종류가 드라마틱하다. 인도, 그리스, 베트남, 벨기에 식당 정도야 어떤 나라를 가던 어렵지 찾을 수 있지만, 우크라이나, 나이지리아, 말레이시아, 모로코 식당은 캐나다에서 처음 접했다. 이렇게 다양한 국적의 음식이야말로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이민자인 캐나다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사실 캐나다에도 국가를 대표하는 음식이 하나 있다. 바로 감자튀김에 치즈 커드와 그레이비소스를 올린 푸틴이다. 바삭한 감자튀김을 손으로 집어 소스에 찍어 먹기보다는 소스에 저며져 눅눅해진 튀김을 포크로 한 덩어리씩 집어먹는 음식이다. 특별한 맛은 아니어서 평소에는 전혀 생각나지 않지만, 왠지 놀이공원에 가면 한 번씩 사 먹고는 한다. 푸틴 전문점에 가면 치킨, 베이컨, 스테이크 등의 고기 토핑을 추가하거나 커리, 랜치, 메이플 시럽(캐나다의 명물) 등의 소스를 선택할 수도 있다. 불고기와 김치가 올라간 한국 스타일과 미소와 김가루가 올라간 일본 스타일도 인기가 많다. 현지 음식인 푸틴에도 이민자들의 식성이 스며들어버렸다.
나는 한식을 가장 좋아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식을 제일 못한다. 남들은 뚝딱 만드는 미역국이나 김치찌개가 나한테는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집에서 자주 해 먹는 음식은 타코다. 간 소고기를 멕시칸 시즈닝에 볶고 토마토, 양파, 상추를 썰면 준비가 끝난다. 또띠아를 살짝 데워 고기와 야채를 넣고 치즈, 사워크림, 살사소스를 올리면 금세 타코 하나가 만들어진다. 만들면서 바로 먹을 수 있어 편한 데다가 모든 재료는 현지 마트에서 살 수 있다. 캐나다에서 멕시코 음식을 요리하는 한국인. 지극히 평범하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