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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먼 Jan 06. 2022

보이지 않는 힘을 끝내 보여주는 <파워 오브 도그>

파워 오브 도그 해석


 영화는 피터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한다. 피터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 역할까지 자신이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로지 엄마의 행복만을 바라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모든 선택에 엄마가 우선 순위라는 것을 나지막히 드러낸다. 그는 ‘엄마도 지키지 못하면 어떻게 남자라고 할 수 있겠어?’ 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막상 피터가 등장하면 관객이 보게 되는 것은 스테레오 타입의 남성성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종이로 꽃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며 앨범을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 영화에서 스테레오 타입의 남성의 대표로 묘사되는 카우보이들과 피터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대조시킨다. 그런 그가 아빠의 빈자리를 대신 하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만들어놓은 남성성의 기준에 따르는 방식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대신 그만의 방식을 추구한다. 오히려 남성성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를 재건하거나 혹은 완전히 붕괴시켜 세상이 만든 그 기준에 부합하는 지에 상관없이 자신은 남성이라는 것, 그리고 힘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낸다.



 필은 자신의 동생 조지와 함께 일을 하게 된 지 25주년이 되었다. 하지만 동생은 형의 슬하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가 다른 카우보이들과 다르게 정장을 입고 있는 것은 다른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필은 동생에게 끊임없이 브롱코 헨리가 했던 말과 행동에 대해 언급하며 그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말한다. 관객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브롱코 헨리 이야기를 하는 필을 보며, 대체 그가 누구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필이 자신만의 비밀의 장소를 갔을 때 ‘BH’(브롱코 헨리의 이니셜)이라고 적혀 있는 수건으로 자신의 몸을 애무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우리는 그들이 어떤 관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영화는 유려함을 무기로 조심스럽게 비밀을 하나씩 보여주며 필과 브롱코 헨리의 관계를 드러낸다. 마치 장작더미 밑에 숨은 토끼를 찾기 위해 장작을 하나씩 들춰내듯이. 필은 자신의 동생에게 그의 우상과 마찬가지인 헨리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헨리의 길을 따르듯, 동생 또한 그 길을 따라와 주길 바랬을 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삶에는 로즈와 피터라는 존재가 나타난다.



 카우보이들과 25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레드밀 식당으로 향한 필과 조지. 식탁에는 종이 꽃이 몇 다발 꽃혀 있었다. 필이 그 꽃을 만지며 누구의 작품인지 궁금해하자 피터는 당당하게 자신의 작품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 전부터 차별의 채찍질을 받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웃는 얼굴로 자신의 작품임을 자랑한다. 필은 그런 모습을 비꼬며 욕을 한다. 동생은 그런 형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담배를 태우며 그 꽃 한 송이에 불을 붙인다. 그가 꽃을 태운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브롱코 헨리를 동경하고 사랑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남성성의 틀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피터가 그에 부합하지 않은 사람이기에 그를 조롱한 것일 수 있다. 두 번째로는 피터가 자신이 지키지 못한 것을 지키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피터는 남들이 생각하는 남성성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그것에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사람이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던 와이드 진에 셔츠를 넣어 입고 부츠 대신 흰색 스니커즈를 신는다. faggot(게이를 낮추어 부르는 말)이라는 소리를 듣고 아무렇지 않게 새를 관찰한다. 필은 그렇게 당당한 피터에게 일종의 질투심 내지는 열등감 같은 것을 느꼈을 수 있다. 피터는 불타버린 꽃을 보고 분노를 느낀다. 그는 모욕적인 말을 들어도 반격할 정도의 내적 강인함을 가졌지만 자신이 만든 꽃을 망가뜨린 사실은 참을 수 없었다. 엄마가 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조지는 상처 받은 피터를 보고 속상해하는 로즈를 몰래 위로해 준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어 형에게 나무란다. 조지는 형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한 채 로즈와의 결혼을 감행한다. 그리고 그녀를 집으로 들이고 피터를 방학 때 집에 데리고 온다. 조지는 형이 원하는 남성성에 굳이 부합하려 하지 않는다. 필이 조지에게 어머니가 그 여자를 보시면 어떤 감정을 느끼겠냐고 비꼬며 물어보자 ‘버뱅크 부인이 버뱅크 부인에게 느끼는 감정을 느끼겠지.’라고 말한다. 이는 조지가 여성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고 어떤 방식으로 존중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로즈를 완전한 주체로서 존중한다. 반면 필은 아니다. 조지에게 과거의 자신의 집에 끌려온 여성들을 비하하거나 로즈가 돈 때문에 우리집에 들어오려 하는 것이라고 비난한다. 영화에서 조지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도 목욕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형과는 다르게 깔끔하게 수염을 정리하고 정장을 입고 말보다 차를 타고 다니는 장면이 더 자주 등장한다. 이는 조지와 필이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 또는 변화를 받아들이는 모습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준다. 필은 오로지 남들이 보지 않을 때만 자신의 비밀의 장소로 향해서만 목욕을 한다. 그는 어떻게 보면 씻는 과정이 남들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즉, 그가 생각하는 남성성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으로 여기는 듯 하다. 하지만 그의 목욕은 한 가지 조금 다른 점이 공존한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 마치 성관계에 가까운 느낌이 있다. 브롱코라는 유령과 살아 있는 필 사이에 벌어지는 사랑.



필은 그곳에서 옷을 벗고 온몸에 흙을 바르기도 하고 그 몸으로 물에 뛰어들기도 한다. 처음 그 장소가 영화에서 나올 때 필은 물에 들어간 상태로 카메라를 잠시 응시한다. 이는 마치 ‘너만 알고 있는 비밀이야.’ 라고 관객에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상상 속 브롱코를 쳐다보는 것 같기도 하다. 피터가 처음으로 그 장소를 발견해서 브롱코와 필의 비밀 상자를 발견하게 되면 관객은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그곳에는 남성의 나체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가득 차 있고 책에는 브롱코의 이름이 적혀있다. 피터는 그 순간 필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이 관계에서 가볍게 주도권을 가져가게 된다. 필은 자신의 장소에 들어와 있는 피터를 발견하고 그를 내쫓는다. 하지만 이미 그가 가진 ‘개의 힘’은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영화는 이 시점을 기준으로 챕터 5로 넘어간다. 영화 초중반만 하더라도 일정한 간격을 두고 챕터가 나누어져 있었으나 중반부에 챕터 5가 펼쳐지고 나서는 더 이상 챕터의 변화가 없다. 이는 챕터 5부터 더 이상 주인공이 필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부터는 피터에게 이 이야기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끌어 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마치 이를 알고 있기라도 한 듯, 필은 피터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또는 의도치 않게 보여주게 된) 두 번째 사람이 피터이기 때문일 것이다. 필이 처음으로 브롱코를 만났을 때 그는 '남자답지 못한' 모습이었다. 언덕에서 엘크를 잡다가 험한 날씨를 마주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브롱코가 살려줬다. 필은 점점 피터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언뜻 보면 그가 브롱코가 되어 피터가 자신이 경험한 것을 똑같이 배우게 해주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그 반대가 되기를 원하기도 한다. 그가 브롱코의 말 안장을 피터에게 내어주며 연습해보라고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필은 카우보이들 중 유일하게 특정 시간이 되면 저 멀리 언덕에 생기는 입 벌린 강아지 모양 그림자를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브롱코가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터는 알려주지도 않았는데도 그 그림자를 알고 있다. 그를 통해 필은 브롱코의 환생 조짐을 마두한다. 동시에 그는 스스로가 브롱코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피터에게 꾸준히 승마연습을 시킨다. 이 영화에서 말은 브롱코와 필의 관계를 상징한다. 그가 폐마를 타고도 테이블을 뛰어 넘었다거나 그의 안장을 여전히 보관하고 있다거나 하는 것들로 필과 브롱코 사이에서는 말이 굉장히 중요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피터에게 승마를 가르치는 데에는 그가 브롱코로 완벽하게 환생하기를 바라는 숨겨진 욕망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피터의 계획은 단순했다. 토끼를 잡아 해부해서 토끼의 속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냈기 때문에 그 다음은 토끼의 머리를 쓰다듬어 살살 달래서 목을 꺾어 죽이기만 하면 그의 계획은 마무리된다. 그는 토끼를 해부한 것으로 인해 엄마에게 집에서 살상은 안된다는 경고를 듣지만 그 말에 반대한다.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필과 함께 동행한다. 그의 속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기 위해.



 로즈는 점점 미쳐간다. 필은 소리를 통해 그녀의 목을 조여간다. 그에게 로즈는 자신의 남동생을 뺏어간 도둑이자, 피터를 소유하고 있는 보물창고이기 때문이다. 그는 살상 대신 미쳐버리게 만드는 것을 선택한다. 주지사 부부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하는 피아노 연습을 기타 연주 소리로 방해한다. 날카로운 말들을 그녀의 동맥에 가져다 대기도 하고 발소리만으로도 그녀가 버려진 술을 찾아 마시게 만든다. 피터는 그렇게 힘들어하는 엄마를 보며 그가 아버지에게 배웠던 가르침을 잊지 않고 계획을 실행하려 한다. 장애물을 없애 나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그 가르침.



 필은 소가죽을 잔뜩 모았다가 그것을 불태우기를 반복한다. 이것은 브롱코를 기리기 위한 일종의 의식 같은 것으로 보인다. 필이 가죽으로 밧줄을 만들어 피터에게 선물하려 하는 것을 통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로즈는 자신의 아들마저 조종하려는 그에게 분개해, 그것을 가죽을 구하는 인디언들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준다. 그녀는 그러면서 '이 농장의 주인은 저희 남편이에요.'라고 말하며 자신의 입지를 확인시킨다. 인디언들은 그녀에게 자신들이 만든 장갑을 선물한다. 조지에 부축되어 침대에 누우면서도 장갑을 벗지 않는다. 그 장갑은 그녀가 쟁취한 권력의 증거물이자 그녀에게 필요했던 인간의 온기이다. 그녀는 닿을 수 없는 별처럼 피터가 자신에게 멀어질까 걱정했지만 사실은 정반대였다. 피터는 복수를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차갑게 식히고 있었다. 피터는 가죽을 다 팔아넘긴 사실에 화가 났다. 결국 그는 그 의식을 치를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브롱코의 환생이 코 앞에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의식은 더더욱 필요하지 않았다. 분개한 필에게 다가가 자신의 생가죽이 있으니 그것을 써서 밧줄을 완성해달라고 한다. 그 생가죽은 피터가 탄저병이 걸려 죽은 소에게서 채취한 것이다. 필은 그것을 알지 못한 채 그의 친절함에 감동한다. 밤에 밧줄을 완성할 거라 말하며 그 때 와서 구경하라고 말한다.



 그 날 밤, 소가죽을 물에 담가 온 피터는 필이 가죽을 깨끗이 씻는 과정을 유심히 지켜본다. 그의 손에 난 상처 속으로 스며드는 복수를 가만히 내려다본다. 그 순간 피터는 모든 주도권을 차지하게 되었다. 필과 브롱코의 사이를 서슴치 않고 물어본다. 그러면서 그는 마치 필처럼 담배를 한 대 말아 한 모금 피운다. 그리고 그것을 필의 입으로 가져간다. 서로 한 모금씩 계속해서 나누어 핀다. 영화에서 담배는 필이 브롱코의 빈자리를 느낄 때마다 등장한다. 브롱코 이야기를 할 때나 동생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주도권을 뺏겼을 때, 브롱코의 안장에 앉아 있을 때 담배를 핀다. 그런 담배를 피터가 말아서 자신과 나눠 피는 상황 앞에서 필은 완전히 자신을 내어준다. 브롱코가 완벽하게 환생한 것이다. 그 장면 바로 뒤에 말의 클로즈업샷을 보여준다. 이는 브롱코와 필을 말의 이미지로 연결시키듯, 피터와 필이 그와 같은 관계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게 '개의 힘'을 모두 상실한 필은 자신이 완성한 밧줄을 들고 하염없이 '그 소년'을 찾는다. (챕터 5의 시작에서는 '피터'라고 부르기 시작하다가 그 다음에는 '나의 벗'(my pal), 마지막으로 '그 소년'(the boy)라고 부른다.) 하지만 피터는 그가 완전히 죽기를 집 안에서 천천히 기다린다.



 죽음을 맞이한 그는 깨끗하게 정돈된 머리와 수염과 양복을 입은 상태, 즉, 자신이 원치 않는 모습으로 관에 눕는다. 피터는 장례식에 참여하지 않고 집에 있는다. 그는 집 밖과 주변을 흐뭇한 모습으로 둘러본다. 필의 휫파람에 움직이던 강아지들은 이제 피터의 옆에 얌전히 앉아 있다. 그는 집을 활보하며 책을 읽는다. 그는 성경에서 이런 구절을 읽는다. '저의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고, 가장 소중한 것을 개의 세력으로 부터 구하소서.' 결국 그는 세상이 그에게 '남자답지 못함'을 비난하며 던지는 칼로부터 스스로를 구해냈으며 가장 소중한 엄마를 필로부터 구해냈다. 그는 밧줄로 목을 메달아 죽은 아버지를 목격하고 본인의 칼로 끊었던 그 밧줄을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원상태로 복귀시키며 자신이 그 빈자리를 채웠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는 장례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 온 조지와 로즈를 2층에서 내려다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영화 초반부에  

피터는 엄마에게 자신이 만든 앨범에 있는 맨션을 보여주며 이런 집에서 살자고 말했다. 청소하기 힘들다고 말하자 청소부를 두면 된다고 했다. 그는 이제 맨션도, 청소부도 생겼다. 엄마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뤄 주었다. 이제 집은 그의 것이다.



 동명 소설 원작 작가 토마스 세비지는 3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후 어머니가 농장주와 재혼하면서 두 집안이 같은 집에 살게 되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작가는 이를 바탕으로 해당 소설을 집필했고 그의 다른 작품들에도 이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영화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팬텀 오브 스레드>와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을 떠올릴만큼 유려하고 심리묘사가 탁월하다. 유령과의 사랑, 그 유령을 산 사람을 통해 다시 부활시키고자 하는 욕망 같은 것들이 이 두 작품과 닮아 있으나 끝내 유령을 뒤집어 쓴 사람이 이 관계에서 주도권을 갖게 된다는 것에서 매우 흥미롭다. 영화는 우리에게 힘이란 무엇이고 그것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보여준다. 그리고 힘에 대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가죽 삼아 그것을 비틀어가며 서사를 만들어 나갔다. 우리는 마지막 피터의 웃음을 보면 섬칫한 동시에 안도감이 들기도 하며 공허함을 마주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시각화된 힘, 볼 수 있는 힘이 가진 공허함과 보이지 않는 힘이 가진 날카롭고 섬칫한 강렬함을 느끼게 된다. 영화는 끝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며 뿌듯한 얼굴로 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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