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이 당연해지는 순간
“시엄마랑 친정엄마는 확실히 다르긴 달라”
명절의 바쁜 일정을 숨 가쁘게 마치고 돌아오는 정체된 도로 안에서 조수석에 앉아 대시보드에 발을 올리고 과자를 까먹으며 나는 얘기를 시작했다. 뭐가 다르냐고 묻는 질문에 엄마는 다 만들어서 주는데 어머님은 재료만 주시지 않느냐라고 답했다. 이미 명절 내내 전을 부치고 10인이 넘는 설거지를 하며 며느리 흉내를 제법 냈던지라 꽤나 어깨에 힘 좀 들어간 말투다. 남편이 집에 들어와 여독을 풀며 쉬는 동안, 나는 집에 도착해서도 쉬지 못하고 싸주신 배추며 과일이며 놔두면 썩을 새라 바쁘게 정리하고 삶고 뭔가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을 경험으로 아는 터라 내 말에 반문은 하지 못하고 “아무래도 그렇겠지?”하고 내 눈치를 살핀다. “조금씩만 싸주시라고 말씀드릴까?” 아니 하지마.
어머님은 아버님이 퇴직하신 후론 시골에 집을 지으시고 집 주위로 텃밭이라고 부르기엔 미안해질 정도로 넓은 밭을 일구셨다. 배추며 파, 양파, 고추 같은 흔한 야채뿐만 아니라 고구마, 옥수수, 토마토에 무화과, 살구, 자두나무까지 그야말로 전쟁이 나도 자급자족이 가능할 정도로 없는 게 없다. 명절과 제사나 친척들의 경조사로 시댁엔 1년에 대여섯번 가는 게 전부지만, 시댁에선 며느리라서, 친정에선 딸이라서 하는 자잘한 일들이 조금 억울하게 느껴지는 연차였다. 문제는 며느리잡이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인데 어머님은 늘 이번에 오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처럼 식자재를 싸주시곤 하셨다. 그 양이 어마어마해 트렁크에 꼭꼭 눌러 담고도 부족해서 뒷좌석에 가득 실고, 도착해서도 두세 번은 왕복해야 모두 옮길 수 있는 양이었다.
배보다 배꼽이 큰 타인의 정성들
무화과처럼 잘 상하는 과일을 백개쯤 담아주실 때면 도착 후에 복장만 바꿔 입고 잼을 만드는데 한나절을 보냈다. 잼을 만드는 사이 배추는 겉 입을 뜯어 삶고 시래기를 만들고, 옥수수는 삶아 냉동실로 자리를 잡고, 오이나 고추 등은 분리해서 가까이 사는 친구에게 나눠주고 왔다.
티브이를 보며 빈둥거리던 남편은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이 짧고 말라서 더 극적으로 보이는 나에게 미안했던지, 뭘 그렇게까지 하냐 대충 정리하고 좀 쉬지. 다 못 먹으면 버리면 된다 라며 잔소리를 하곤 했다. 엄마가 가끔 집에 오실 때면 냉동실에 가득한 식자재를 보시곤 아이고 이거 다 언제 먹니. 어머님한테 조금씩만 주시라고 말씀을 좀 드려라며 잔소리를 하시곤 했다. 싫어 안 해.
작은 정성? 큰 정성?
사실 나는 알뜰함과는 굉장히 거리가 멀다. 여유가 있을 땐 과소비도 하는 편이고, 운전을 하지 않던 시절엔 택시를 끼고 살았다. 좋아하는 물건엔 철없이 일단 질러놓고 보는 성격도 있어 의식적으로 고치기도 했다. 돈이 드는 일보다 몸이 귀찮은 게 싫은 게으른 중생이라, 귀찮은 일은 돈이 들고 편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심지어 지갑이든, 핸드폰이든 부피가 크지 않은 물건들을 분실하는 일은 빈번했고, 전자제품도 물건도 거칠게 다뤄 그 생을 짧게 마무리하는 일이 잦아 남편은 손끝에 굿이라도 해야 할 판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남이 준 물건들을 낭비하거나, 신경 쓰지 않아서 효용을 다 하지 못하고 버리를 것을 강박적으로 싫어한다. 챙겨주기 위해 신경 썼을 마음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을 경계한다. 좋아하지 않는 간식 하나라도 챙겨준 물건일 땐 반드시 먹는다.
사기 어려운 콩고물맛 오예스를 가방에 꾹 담아 손에 쥐어준다던지, 사람 많은 곳을 가기 싫어하는 나를 대신해서 과일을 사다 준다 던 지, 매일 세끼 벅찬 엄마 요리를 대신할 햄이라던지, 회사 행사 제품을 약속 때마다 챙겨 나오는 정성이라던지, 조수석에 탈 때 양손에 들려있는 커피라던지, 트렁크에 가득 실은 1년을 먹어도 사라지지 않을 어머님의 식자재까지, 상대를 생각하는 정성에 가격은 없다. 형태만 다를 뿐 배려이고 사랑이다.
정성이 연분을 만든다
친구든, 연인이든 심지어 고부사이 조차도 세상에 천생연분은 없다. 반드시 그것은 누군가의 배려이다. 편안함에 편해지는 것을 조심해야지. 편해지다 보면 너무 당연해지고 당연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당연히 인지해 버린 시간들은, 보이는데 먹을 수 없는 그림 속 떡처럼 눈앞에 있어도 다시는 닿을 수 없는 것들이 되어 돌아온다.
부모도 자식도 연인도 친구도 살아있어서 관계할 수 있었기에 함께라는 이름으로 아름답게 누렸던 시간들. 그렇게 공기처럼 존재하는 귀한 모든 것들을 우리는 너무 함부로 대하고, 당연히 대하는 것은 아닌지.
아무리 잘난 사람도 오른손이 오른 손톱을 왼손이 왼 손톱을 깎을 수는 없다. 사랑의 대상을 향한 순수했던 그런 첫 마음들을 누리고 행할 때, 행하는 나는 순간순간을 당연히 여기지 않는지 항상 돌아보게 된다.
p.s 그때의 어머님은 며느리를 위한 사랑이라기보다, 아들을 향한 사랑이라 생각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어머님은 오실 때마다 두 손 가득 이고지고 오신다. 예전과 다른 점은 내가 좀 뻔뻔 해저서 아이고 어머님 이거 다 못 먹어요 조금씩만 가져오시라니깐 무겁게. 하여간 진짜 손이 크셔.라고 너스레를 떠는 정도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