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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Mar 24. 2021

그곳에도 동백꽃이 있었네

여수 향일암

여수 하면 다들 '향일암'을 떠올리는데, 세 번이나 여수에 갔으면서도 정작 향일암을 가본 건 딱 한 번뿐이다. 그나마 일출명소인 향일암에 간 시각은 늦은 오후여서 해무 어린 남해바다와 동백꽃만 실컷 보고 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던 향일암여행이었다.

바다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보기 위해 동해는 호미곶/간절곶/정동진을, 서해는 왜목마을을 찾는다면 남해는 당연 여수 향일암이다.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율림리 70번지에 위치한 향일암은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40호이기도 하다.

"금거북이 등에 올라 해돋이를 볼 수 있는 천하제일의 명소"인 금오산 향일암은 금오산의 기암절벽 사이에 울창한 동백이 남해의 일출과 어우러져 절경을 빚는 데서 '향일암'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주위의 바위모양이 거북의 등처럼 되어 있어 영구암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때문인지 향일암 곳곳에는 돌거북이 참 많이 눈에 띈다. 목에 염주를 건 올망졸망한 크기의 돌거북들을 계단과 담장 곳곳에서 마주친다.

향일암은 조계종 제 19교구본사 화엄사의 말사로 동해의 낙산사, 서해의 보문사, 남해의 보리암과 함께 전국 4대 관음 기도처 중의 한 곳이다. 백제 의자왕 4년(664) 신라의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원통암이라 부르다가, 고려 광종 9년(958)에 윤필거사가 금오암으로, 조선 숙종 41년 (1715년)에 인묵대사가 향일암이라 개칭했다. 임진왜란 때는 승군의 본거지이기도 했다.

사찰 아래 마련된 주차타워나 근처의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다보면 매표소가 나온다. 특별한 보물이 없음에도 향일암 자체가 문화재라 입장료가 있다.(대인 2500원, 청소년/군경 1500원, 어린이 1000원) 사찰은 오후 6시 이후엔 매표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향일암은 6시 이후에도 불을 환히 밝히고 매표를 하니 이 점 참고하시길. 매표소를 지나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계단길은 10분, 평길을 돌아오르는 길은 15분이 걸린다고 안내문이 나와있다.

나는 일주문 앞에 환하게 핀 동백꽃에 이끌려 계단길을 택했다. 동백꽃을 보기 위해 먼저 찾았던 오동도보다 더 탐스럽게 핀 동백꽃들이 내방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하얀 동백이 빨간 동백과 한 나무에서 피어있어 눈길을 끌었다.

일주문과 등용문을 지나 암자근처에 이르면 길을 가로막은 듯한 거대한 바위 두 개 사이로 난 해탈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곳이 다른 사찰의 불이문에 속하는 곳이다. 겨우 한 사람이 빠져나갈 수 있는 좁은 사잇길을 소원을 빌면서 걸어가면 꼭 한 가지 소원은 이뤄진다고 한다. 암자에 이르기 전 마음을 공손히 다듬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다.

동백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들이 양쪽으로 우거진 돌계단을 좀더 오르면 드디어 남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향일암에 다다른다. 향일암은 원통보전, 삼성각, 관음전, 용왕전, 종각, 해수관음상을 복원, 신축하여 사찰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는데 2009년 12월 20일 화재로 소실된 원통보전, 종무소(영구암), 종각을 2012년 5월 6일 복원하였다. 어쩐지 건물들이 무척 새것 같다 여겼는데 불이 나서 새로 지은 탓이었다.

바다에 있는 사찰은 관음신앙이 강한데, 그 이유는 관세음보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에 있는 보타낙가산에 상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향일암의 꽃도 그래서 관음전이다. 원통보전에서 관음전으로 올라가는 길에도 암벽 사이의 동굴처럼 생긴 곳들을 지나쳐서 가야하는데, 어떻게 이 험한 곳에 암자를 지을 수 있었나 놀라울 따름이었다. 관음전 옆으로 아담한 크기의 해수관음상이 동백꽃 그늘 아래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고, 주변엔 소원을 적은 황금빛 잎사귀가 주렁주렁 매달려 바닷바람에 나부꼈다. 관음전 아래로는 원효대사가 참선을 했다는 네모반듯한 바위가 보인다.

시간이 늦어 더 올라가진 않았지만 향일암 뒤 금오산에는 왕관바위,경전바위,학사모바위,부처바위가 있다고 한다. 이런 바위들이 병풍처럼 둘러처진 가운데 들어서있는 향일암은 정확히 동쪽을 바라보고 있어, 바위산에 막혀서 혹시나 기대했던 일몰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일몰시각 즈음한 6시에 종각에서 울려퍼지는 범종 소리를 가까이 들으며 저녁놀이 퍼지는 남해바다를 그윽히 감상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향일암은 비구니승들이 계신 곳이라 비구니 스님 한 분이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온 힘을 다해 종을 치며 저녁예불시간을 알렸다.

내려올 때는 삼성각으로 해서 그 아래 있는 돌문 하나를 지나 돌아내려가는 평길로 가다가, 일주문 앞의 동백꽃이 다시 보고 싶어 중간에 계단길로 이어진 야생화산책로를 따라서 계단으로 해서 내려왔다. 아직 남은 빛으로 붉은 동백꽃들을 한 번 더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나올 땐 이미 날이 어두워져서 확인해보진 않았지만 향일암이 있는 임포마을 입구에는 수령이 5백년이나 된 동백나무가 있다고 한다. 향일암 가는 길에 보이는 가로수들도 모두 동백나무여서 인상적이었다.

남해 일출도 장관이지만, 바다에 비치는 달빛 또한 보는 이의 마음을 정갈하게 씻어준다는 향일암. 비록 구름이 하늘을 가려서 바다에 비치는 달빛을 온전히 보진 못했으나,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평안해지는 풍경이었다.


향일암 일출. 펌사진
일주문 앞의 동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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