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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Apr 14. 2021

내 혼에 불을 놓아...

남원 서도역과 혼불문학관

요즘 손현주의 '간이역'이 꽤 인기 있는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뽑힌 군위 화본역을 필두로 전국의 간이역들을 소개하는 프로인데, 오늘 소개할 서도역은 간이역이긴 하지만 지금은 폐쇄되어 있어 기차역로서의 역할은 하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옛 철길을 배경으로 인생샷을 찍는 핫플레이스로 꾸준히 인기 있는 남원의 대표관광지이다. 그리고 최명희의 소설 '혼불'에 등장하는 곳이라서 혼불을 테마로 역주변을 꾸며놓아 역사와 문학의 향기도 느낄 수 있다.

서도역은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132-2번지에 있는 전라선 철도역으로 1930년대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간이역이다. 남원의 숨은 보석 10선 중 한곳이며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영화 동주 등 각종 드라마와 영화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인근에는 혼불문학관이 자리 잡고 있어 최명희 선생의 생전 모습과 육성, 친필원고, 편지 등을 볼 수 있다.      

서도역은「혼불」의 중요한문학적 공간이며 혼불문학마을의 도입부이다. 매안마을 끝 아랫몰에 이르러, 치마폭을 펼쳐 놓은 것 같은 논을 가르며 구불구불 난 길을 따라, 점잖은 밥 한 상 천천히 다 먹을 만한 시간이면 닿는 정거장, 서도역은 효원이 대실에서 매안으로 신행 올 때 기차에서 내리던 곳이며 강모가 전주로 학교 다니면서 이용하던 장소이기도 하다.

전라선 기차역인 서도역은 1934년 10월 1일 간이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여 1937년 10월 1일 보통역으로 승격되었다. 2002년 10월 27일 전라선 개량공사를 하면서 현재의 위치에 역사를 신축하여 이전하였다. 이곳은 1932년 준공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옛 서도역이며, 현재는 영상촬영장으로 옛 추억을 되새기는 문화공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3월에는 봄맞이축제가, 10월에는 가을음악회가, 11월에는 혼불문학회 신행길축제가 열리곤 했는데 코로나로 이런 행사들은 잠정중단된 상태이지만 늘 깨끗하게 정비된 상태로 손님을 맞이하는 서도역은 찾을 때마다 마음이 설레는 곳이다.


지난 3월 구례 산수유마을 다녀오면서 들렀는데 4월 벚꽃 필 때가 가장 예뻐서 벚꽃 필 때 다시 오려고 했으나, 올해 벚꽃이 예년보다 17일이나 빨리 핀데다, 주말마다 연달아 비가 오는 바람에 벚꽃 구경은 직접 하지 못하고, 랜선여행으로 찾은 해랑님 블로그에서 모셔온 사진으로 대체한다.

혼불문학관은 서도역에서 차로 5분쯤 걸리는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522번지에 있는데, 최명희(崔明姬, 1948~1998)의 대하소설 《혼불》의 배경이 되는 노봉마을에 있는 문학관이다. (2004년 10월 20일 개관)

대하소설 '혼불'은 일제강점기인 1930~40년대 몰락해 가는 남원의 양반가 매안 이씨 문중과 그 속에 터전을 일구며 살아가는 상민 거멍굴 사람들의 고난과 애환을 생생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당시 세시풍속, 관혼상제, 음식 등 작가의 철저한 고증을 통해 아름다운 국어로 생생하게 복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록 작가는 짧은 생을 살다 떠났지만 '혼불'을 남원의 문학적 유산으로 남겼고, 그가 남긴 문학세계와 정신이 남원 혼불문학관에 오롯이 남아있다.

문학관 내부에는 소설 속 각종 장면(혼례식·강모와 강실의 소꿉놀이·액막이연 날리기·청암부인 장례식·춘복이 달맞이 장면 등)이 디오라마(diorama; 작은 공간 안에 어떤 대상을 설치해놓고 틈을 통해 볼 수 있게 한 입체 전시)로 전시되어 있다. 또 작가 최명희의 집필실이 재현되어 있으며, 체험시설(인월댁 베짜기)도 갖추어져 있다.

혼불문학관 주변에는 종가·청호저수지·달맞이공원·
노적봉 등 소설에 등장하는 장소가 있다. 문학관 뒤로는 호성암 마애불까지 이르는 등산로도 잘 정비되어 있어, 등산객들도 많이 찾는다.

전주 한옥마을 안에도 '최명희문학관'이 있지만 소설 '혼불'의 배경지가 남원 사매면 노봉마을이고, 남원에 있는 '혼불문학관'이 규모도 더 크다(부지면적 1만 6,653㎡, 건축 총면적 459㎡) 무엇보다 찾는 이가 비교적 많지 않아 코로나 시기에 사회적 거리를 지키며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문학관 아래 청호저수지를 둘러싼 저수지길을 거닐며 노봉마을을 굽어보거나, 초가지붕 누정에 앉아서 차를 마시거나 준비해온 김밥을 먹으며 소풍을 즐기는 맛이 끝내준다. 몇년 전 남원 광한루에 놀러가는 길에 혼불문학관에 잠시 들러서 가족들과 함께 청호저수지 누정에서 먹은 김밥은 정말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 뒤로 서도역과 혼불문학관은 남도여행을 하며 근처를 지나칠 때마다 참새방앗간 들르듯이 꼭 들러서 가는 곳이 됐다. 혼불문학관은 특히나 4월 철쭉이 필 때 가장 어여쁘니, 4월을 넘기기 전에 꼭 한 번 찾아가보시길! (아래 철쭉꽃 핀 사진은 펌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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