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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Nov 01. 2020

호마이카에서 자개까지

장롱 연대기

며칠 전 남편이 가족단톡방에 자개장롱에 대한 추억이 담긴 글 한 편을 올렸다.

그 글을 읽으신 어머님께서 그간 살아오시며 마련한 장롱의 역사를 구구절절 말씀해주셨다.


현재 쓰고 계신 장롱은 세 번째이고 그 전에 자개장롱,

그 전에 최초로 마련하신 게 호마이카 장롱이란다.

호마이카... 이름도 아련한 그 단어의 정확한 뜻이 궁금해  

 '호마이카'로 검색을 했더니 다음의 내용이 나왔다.


'포마이카(Formica)'의 비표준어.

그래서 포마이카로 다시 검색하니 다소 장황한 해설이 나왔는데,

길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옮겨본다.


- Formica(호마이카)는 "내열 플라스틱판"이다. 나무, 섬유, 종이 등의 표면에 멜라민 수지를 덧입혀 내열성을 갖는 동시에 깨끗한 느낌을 주는 플라스틱 박판을 말한다. 한국에서도 가구에 많이 쓰여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호마이카는 191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의 웨스팅하우스 공장에서 일하던 엔지니어 댄과 허버트 파버가 발명했다. 이들은 이 발명에 대해 회사에서 보상이 너무도 적은 것에 실망한 나머지 회사를 뛰쳐나와 자신들의 회사를 차렸다. '제품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당시 전기의 절연체로 가장 많이 쓰이던 물질 마이카(운모)라는 광물을 대체하는 물질이란 뜻에서  "마이카의 대체물(substitute for mica)"로 하고, 이 단어에서 "formica"를 가져와 Formica라는 제품 이름을 만들어냈다.

Formica라는 상표명이 나오기 이전에 이미 formica(포르미카 : 모든 개미 종류를 총칭하는 라틴어)라는 단어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formica는 몰라도 Formica는 알게 되었다. -


이 설명에 따르면 호마이카Formica는 엄연히 상표권을 가지고 있는 특정한 회사의 회사명이자 제품의 브랜드명으로 사전에도 고유명사로 등록되어 있는 단어이다. 제록스가 복사기를 생산하는 회사의 이름이지만 "복사하다"는 의미로 전용되어 사용하게 되었고, 버버리 역시 특정회사의 브랜드 명칭이지만 특정스타일의 "외투"를 부르는 의미로 보통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는 것처럼 호마이카 역시 한 회사의 이름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표면마감자재의 대명사처럼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호마이카 라미네이트 제품의 독특하고 미려한 표면의 탁월한 질감덕분에 그 명칭이 유명해진 탓에 예전에는 페인트업계에서 칠의 기술로 그 반짝거리는 느낌을 흉내내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이어령님의 수필에 '호마이카 책상'이라는 말이 나오고, 조정래 소설 한강에도 호마이카 책상이 잠깐 나온다. 1995년 영화로 만들어져 수많은 중년여성들을 달뜨게 한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원작 소설에도 '호마이카 테이블'이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이들에 나온 호마이카는 정확히 말해 표면마감이 호마이카 자재로 되어 있는 책상과 테이블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처럼 칠로 표면에 반짝거리는 느낌을 내서 호마이카 책상, 밥상, 장롱이라고 판매하곤 해서 어머니 세대들은 호마이카 밥상이나 장롱에 대한 추억을 하나쯤 가지고 계신다.


우리 어머님도 예외는 아니시다.

70년대 유행하던 호마이카 장롱를 마련하기 위해 동네 아줌마들과 장롱계를 묻었는데 당시에 호마이카 장롱이 일금 만 오천 원이었다고 한다. 에계계~~ 하실 분들이 계실지 모르니 가격을 함 따져보기로 하자.


당시에 쌀 한 말 값이 800원이었다고 하니, 지금 시세로 따지자면...

쌀 한 말은 8kg 이고 요즘 쌀이 10kg 평균 3만원이니까, 8kg 이면 2만 4천 원. 여기에 곱하기 18.75를 하면 45만 원이다. 그런데 쌀값은 물가인상요인에 가장 영향을 덜 받는 편이니, 인플레이션 요소를 감안해서 70년대 초반 만 오천 원이란 돈의 가치를 오늘날로 환산해보면 실제로는 45만원 보다 훨씬 높았을 것이다. 그러니 계까지 묻어서 장롱을 사지~ (그땐 돈 백 원을 들고 장에 나가면 하루 반찬거리를 다 샀다고 하신다. 콩나물 한 봉지 20원, 큰 두부 한 모 20원, 배추 한 포기 20원...  싸다 싸!^^)


암튼 그렇게 계로 사들이신 호마이카장롱이 신혼집 안방을 차지하고 있다가, 1984년 양재동으로 이사를 가시면서 당시 유행하던 자개장롱을 들이셨다고 한다. 그 장롱을 사기 위해 어머님께서는 밤샘 작업도 불사하시며 열심히 일해 돈을 모으셨다고. 그렇게 힘들게 모은 돈으로 자개장롱을 들여놓고 나니,  집에 놀러온 사람들마다


"이 집은 살림살이가 참 좋네~" 

하며 그 장롱을 쓰다듬어 보며 감탄을 했다고 하신다. 재미난 건 그 장롱 살 때 돈 한 푼 안 보태신 아버님이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와 자주 술추렴을 하셨는데, 그 친구분들이 자개장롱에 더욱 찬사를 보내셨다고 한다.  

어머님의 얼굴에 그때 느끼셨을 뿌듯한 자랑스러움이 살며시 스친다.


나도 그 자개장롱을 본 적이 있다. 1997년 남편과 연애를 하면서 집에 놀러갔을 때 봤는데, 들여놓은 지 14년이 지난 그때 봐도 참 멋진 장롱이었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완 달리 밑바닥이 들뜨고, 문짝도 잘 안 맞아서 1999년 역삼동으로 이사를 가시면서 대형폐기물 딱지를 끊고 버리셨다고 한다.


남편이 이번에 올려준 글을 보니, 버리지 않고 잘 고쳐서 간수했다면 그 장롱에 얽힌 이야기들을 아래 글에 나온 모녀처럼 어머님과 함께 펼쳐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이사가 코앞인데 자개장만 쳐다보는 엄마 (오마이뉴스 변영숙 기자님의 글)

https://news.v.daum.net/v/20191218114803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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