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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Apr 01. 2024

불량며느리와 우렁각시

도라지의 변신은 무죄!


도라지 도라지

국산 도라지

비싸서 잘 못 사먹는

국산 도라지


한 봉다리 5천 원이면

거저가 아니더냐

뒷감당은 나 몰라라

우선 사고 보자


집에 가져와

쏟아놓고 보니

고놈 참 산더미일세

도라지 껍다구는

언제 다 까려느뇨?


 몰랑~

어떻게든 까지겄지

물에 푹 담가서

때부터 불리고

착착 씻어서 건져놓고는


아뿔싸!

이 몸이 급한 일을 잊고 있었구랴

당장 넘겨야 할 원고가 있소

도라지 네 이놈들 조금만 기다리거라


슈웅 달려가

급한 원고부터 써내고 왔더니

그 많던 도라지들이

그새 목욕재계하고

말간 얼굴로

날 쳐다보누나


왜 이제 왔어~ 

우리 다 끝났거든!


어머님은 방에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전국노래자랑 보고 계시네


우렁각시 울 어머니

만세 만세 만만세!



- 불량며느리 지어 올림



오늘 지어 올린 시의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늘이 비록 만우절이지만 제 글은 모두 사실을 기반으로 쓰고 있음을 밝힙니다. 도장 꾸욱!^^




봄이 오면 여기저기 나물 캐러 다니는 분들 계시죠? 바야흐로 다종다양한 나물을 마음껏 해 먹을 수 있는 봄이 왔어요. 여러분은 어떤 나물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나물 가운데 도라지나물을 가장 좋아한답니다. 어릴 땐 저 쓴 나물이 뭣이 맛있다고 제사 때마다, 명절 때마다 도라지나물을 하나 싶었어요. 그런데 나물맛을 알면 나이가  거라더니, 정말 나이가 들수록 도라지나물이 맛있는 거예요.

 

문제는 요즘 도시에서는 국산 도라지를 접하기가 점점 어다는 사실이에요. 무엇보다 가격경쟁에서 중국산 도라 밀리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데요, 국산도라지가 너무 비싸고 구하기 어려우면 어쩔 수 없이 중국산 도라지를 사다 먹을 때도 있어요.


국산과 중국산의 맛을 품평하자면~

제가 입맛이 둔해서 그런지 국산도라지랑 큰 차이는 못 느끼겠더군요. (제가 도라지나물을 너무 맛있게 무쳐서인지도 모르지만^^) 중국산을 사다가 만들든 국산을 사다가 만들든 먹는 사람들은 그 차이를 잘 모르더라구요. 다만 나물 만드는 과정에서 보면 중국산이 국산보다 더 뻣뻣하고, 때론 색이 맑지 않고 칙칙할 때가 있더군요.


먹는 사람이 차이를 알든 모르든, 기왕이면 국산 도라지로 나물을 하고픈 욕심이 있어서 되도록 도라지는 국산을 사는 편이에요. 남 친정에서 몇 년 전까지 도라지를 한동안 키우서 친정 가면 도라지는 주시는 대로 다 얻어와서 잘 먹었답니다.  그러다 도라지 키우시던 뒷밭을 부모님이 더 이상 농사짓기 힘드셔서 젊은 사람한테 땅을 임대하시게 되면서 더 이상 도라지는 못 얻어먹게 되었어요.


마자믹으로 도라지를 다 캐야 했을 때는 어림짐작으로 한 열 근 정도쯤 되는 도라지를 차댕이에 싸서 주는데, 그 많은 걸 마다하지 않고 냉큼 다 받아왔지요. 가져올 땐 좋다고 가져왔건만, 3년근 도라지 그 장대하고 튼튼한 녀석들 껍다구 까느라 며칠 동안 엄청 고생했답니다. 두 다라는 가득 채울 만큼 됐는데, 그때만 해도 어머님이 펄펄 날아다니실 때라 틈나는 대로 제 옆에서 열심히 까주셔서 도라지 사태를 잘 마무리했지요. 어머님 안 계셨으면 어쩔 뻔?


어머님은 손이 빠르셔서 제가 하루동안 세월아~ 네월아~ 할 일도 몇 시간이면 후딱 해치우시거든요. 부모님도 이런 시어머님이랑 같이 사니까 그거 믿고 왕창 캐서 주신 것 같아요. 저 혼자 살 때라면 절대 그렇게 많이는 못 가져간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을 거예요.


친정의 믿음직한 국산 도라지 공급지가 사라진 뒤로는 어쩔 수 없이 가게에서 사다 먹어야 하는데,  한 주먹도 안 되는 도라지가 5천 원이 넘어가면 정말 고민이 막 되더라구요.  중국산을 사? 말어?


그런데 이런 고민을 한방에 해결해 주는 곳이 생겼어요.

바로 우리 동네 몇 년 전 생긴 "수상한 과일가게"

이름처럼 과일가게인데 과일보다 채소를 더 많이 팔고, 최근엔 돼지고기 소고기도 파는 수상한 가게랍니다. 더 수상한 것은 좋은 상품들을 무척 싸게 판다는 점이죠. 사장님이 매일 농수산물시장에서 그날그날 신선한 채소와 과일들을 경매로 낙찰받아서 바로바로 가져오시는 덕분이랍니다. 수상한 과일가게에어느 때부턴 국산 피도라지를 파는 거예요. 피도라지는 껍질을 까지 않은 땅에서 파낸 그대로 흙이 묻어있는 도라지를 말해요.


가격도 착하고, 양도 딱 다듬어 먹기 좋은 분량만큼만 팔길래  한 달에 한 번씩 사다가 손질해서 도라지나물을 맛나게 먹게 됐어요. 명절이나 제사를 지낼 때는 좀 더 많이 사게 되니까, 그땐 어머님손도 빌리고, 놀고 있는 남편도 불러다 일 시키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도 하고 그랬죠.

 

* 이런 때 나눈 이야기로 쓴 글이 바로 요 아래 글이에요~

https://brunch.co.kr/@malgmi73/101


그랬는데 지난주에 장 보러 갔다가, 엄청 많은 양의 도라지를 무지 싸게 파는 거예요. 쭉쭉 길다란 상태 좋은 것은 아니고, 비비 꼬이고 잔뿌리도 많아서 상품성 떨어지는 도라지를 봉다리에 가득 담아서 한 봉지에 오천 원! 이렇게 팔길래 후딱 사들고 왔쥬.


사들고 와선 우선 물에 푸욱 담갔어요. 물에 불려서 흙도 씻어내고 해야 껍다구 벗기기 쉬우니께. 근데 이렇게 도라지 씻어놓고 보니,  3월 안으로 마감해야 할 원고가 딱 떠오르는 거예요. 우선 원고부터 마감하고 도라지 요 녀석들 손을 봐야겠다 싶어서 식탁 위에 올려두고는 서재로 달려갔죠. 그렇게 서재에 박혀서 글 쓰다가 커피 좀 마시려고 나오니, 어머님이 식탁에 앉아서 도라지 껍질을 까고 계시는 거예요.


"어머님이 먼저 까고 계시네요. 제가 오늘 안으로 보내야 할 원고가 있어서요, 얼른 글 쓰고 올게요."


어머님이 혼자서 도라지 까고 계신 걸 보니 마음이 급해져서 원고 마무리 속도 더 가열차게 빨라지는 가운데, 화장실 가려고 나와보니 이번엔 남편이 어머님이랑 마주 앉아서 도라지 껍질을 까는 모습이 보이고, 또 물 마시려고 나와보니 남편은 그새 어디로 도망가고 그 많던 도라지가 반 정도 남았더라구요. 저러다 어머님이 다 까시겠다 싶어서,


"어머님~ 남은 건 제가 나중에 할 테니까 그만하시고 쉬세요~" 하니,


"뭘 또 하다 말다 하냐. 손 묻힌 김에 그냥 하지~"


하시곤 묵묵히 도라지 껍질을 까시더라구요. 가만히 앉아서 몇 시간 동안 도라지 껍다구 까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닌데... 속으로 '아... 나 또 불량며느리 되는구나. 그래도 워쪄~ 빨리 글 써서 넘겨야 하는디!"


하구선 원고 마무리 작업에 재돌입하여 일요일 낮 1시가 되어서 드디어 원고를 완성했더랍니다. 후다닥 원고를 이메일로 보내고,


"야호~ 드디어 끝냈다!"


환호성을 지른 뒤, 이제 도라지 까야지! 하고 부엌으로 갔더니 도라지들은 이미 환골탈태해서 깨끗하게 목욕재계까지 하고선 물속에서 빼꼼하니 저를 쳐다보고 있더라구요. 


"빨랑 오지 그랬어~ 우리 다 끝났거든!" 하는 얼굴로.


그새 어머님이 껍질을 다 까신 뒤 물에 씻어서 먹기 좋은 크기로 쭉쭉 찢으신 다음에 볼에 담가놓으신 거였어요. 예전 같진 않으셔도 여전히 손이 빠르신 어머님이 나 같으면 하루종일 붙잡고 했을 일을 오전에 다 끝내버리신 니다.

 

제가 한 일은 커다란 냄비에 물 팔팔 끓여서 소금 넣고 도라지 넣어 푹 데친 다음에 찬물로 헹궈서 다시 볼에 담가 물을 가득 붓고는 도라지의 쓴 기운을 빼는 것뿐이었답니다.

 

그렇게 해서 그날 저녁 식탁엔 색깔도 고운 말간 도라지나물이 '나 잡아 듭셔~'하고 올라오게 되었더랍니다. 어머님이 우렁각시 노릇을 해주신 덕분에 이번에도 맛있는 도라지나물을 편하게 먹게 되었요.


이래서 또 불량며느리는 웁니다아~~~ 

꺼이~ 냠냠~ 꺼이~ 냠냠~

어머님~ 도라지나물 넘나 맛나요~~~ ^^;;





남들은 시어머니 모시고 어떻게 사냐고,

힘들지 않냐고들 지레짐작으로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어머님 덕분에 이리 잘 먹고 산답니다.


어머님이 안 계셨다면,

어머님이 때때로 우렁각시 노릇을 해주시지 않았다면,

제가 살림하며 살기가 그닥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하곤 해요. 살림경력만 70년 +@ 의 베테랑이신 어머님이 조용히, 소리소문 없이, 티 안 나게 도와주시고, 때론 좋은 말로 차근차근 가르쳐주시기도 해서 나이 50 된 제가 이제야 살림 흉내를 내며 살고 있답니다.


뭐... 어머님 눈에는 아직도 제가 하는 살림이 양에 안 차시겠지만... 사람이 완벽할 수 있나요? 사람이 말이야, 실수도 좀 하고, 살림도 좀 못하고 그래야 사람 같쥬~ 안 그런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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