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 말씀만 하시면 뭐든 도울게요" 다니엘의 직장 후배는 심장 문제로 일을 쉬고 있는 다니엘에게 이렇게 말한다. "도울일 있으면 말씀하세요" 다니엘의 옆집 청년은 세간을 팔아 돈을 만드는 다니엘을 지긋이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한마디 덧붙인다. "진심이에요"
나는 다니엘의 이웃들과 같은 말을 잘한다. "언제든 연락하시면 제가 도울게요" 그리고 덧붙인다. "그냥 지나가는 말 아니고, 진심이에요"
진심이라는 말을 왜 꼭 덧붙이게 되었을까? 내가 다른 사람에게 들었던 '내가 도와줄게'라는 말들에 진정성을 느끼지 못했던 걸까... 나는 죽어 나자빠지게 생겨도(아직까진 죽을 것 같은 일은 없어서 단정 짓는 거겠지만) 먼저 도와달라는 말은 못 할 것 같다. 피를 나눈 형제들에게도 차마 할 수 없는 그 말을 남에게는 더욱 못 할 것 같다. 하지만 내 본심은 아마도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 눈빛, 내 한숨, 내 처진 어깨를 보고 먼저 알아채 주면 안 되겠니?'라는 마음일 거다. 그래서 내 눈에 답답해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도와줄게요" "진심이에요"를 건네나 보다.
예전에 마음이 답답할 때,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하고 싶단 생각을 했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어쩌면 더욱 은밀한 나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인데, 그건 설사같이 제어할 수 없는 내 감정의 배설통일뿐 진정한 대화는 될 수 없음에 생각으로만 그치곤 했었다.
지금 나의 이웃은 SNS를 통해 만난 사람들이다. 몇 번 만나 안면은 있거나 아예 실명도 얼굴도 나이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그 누구보다 더 나를 나답게 만들어 준다. 우리는 서로의 배경지식이 없다. 그러므로 서로에 대한 무모한 상상조차 불가능하다. 오직 '그 사람' 자체 그리고 '나' 자체로만 인식될 뿐, 의도적으로 또는 습관적으로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더할 수도, '나'에게서 무언가를 뺄 수도 없다. 그들은 나의 이웃이 되어 보이지 않는 지지기반이 되어주며, 나 역시 그들의 좋은 이웃이고 싶다.
내가 점점 더 용기가 생겨서 좀 더 솔직한 글을 쓰게 된다면, 어느 늦은 밤 내 이웃의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범람하듯 글이 되어 올라올 때, 나는 기꺼이 내 치마를 들쳐 고쟁이 주머니 속 깊이 넣어둔 내 아픈 손수건 같은 글을 건네주고 싶다. 비 오는 날, 기름 많이 두르고 부쳐낸 해물파전 한 접시를 도어벨 소리와 함께 건네주듯, 아이와의 시간차로 발을 동동 구를 때 내 아이를 흔쾌히 받아주듯 , 푸짐한 손과 넉넉한 마음을 가진 옆집 아줌마 같은 글을 나의 SNS 이웃들과 나누고 싶다.
내 글을 읽는, 사랑하는 나의 이웃들... "언제든 말씀만 하시면 뭐든 도울게요." "진심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