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나는 묵묵히 책임을 다 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난 굽실대지 않았고 이웃이 어려우면 그들을 도왔습니다. 자신을 구걸하거나 기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 나, 다니엘 블레이크 중 '다니엘의 글'>
가족들을 뒤에서 받쳐 주는 일이 나의 본캐(본래의 캐릭터)인 삶을 오랫동안 살아왔다. 그들의 껍데기들을 정리하고, 먹거리를 준비하며, 몸상태와 감정상태를 돌보는 일, 그것들이 나의 주요 업무였다. 되도록이면 그들의 취향에 맞는 먹거리들과 생활하기에 편한 환경을 만드는 세월 동안 나라는 사람의 기호라거나 원함, 상태 등은 고려되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누가 나에게 그런 삶을 강요한 건 아니었지만, '강요'보다 더 무서운 게, 학습되고 세뇌되어 나도 모르는 사이 내게 각인되어 있는 '책임의식'이었다. 여자라면, 결혼한 여자라면, 게다가 엄마가 된 여자라면 당연히 해야 한다고 인식되어온 불문율 같은 것들에 충실한 사람이 되고자 인간적으로 존중받기를 스스로 포기하고 살 때가 많았다.
인간적으로 존중받을 권리는 가족이라는 아름다운 울타리 안에서 더욱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음을 느낀다. 연필 세대인 다니엘에게 인터넷만을 요구하는 잔인하다 싶을 만큼 답답한 정부기관의 행정 처리 절차처럼, 알아버린 내 마음을 못 알아챔으로 일관하여 내가 저절로 나가떨어지게 만드는 그런 일들이 가족들과의 사이에서 일어난다.
나는 '헌신'이라 부르고 싶은 것들을 그들은 '기본'이라 부를 때, '배려'라 부르고 싶은 것들을 '당연'이라 부를 때 나는 인간적인 존중을 요구하는 엘로우 카드를 내밀고 싶어 진다. 나는 여자이기 이전에 사람이고, 엄마이기 이전에 하나의 인격체이다. 남편의 경제활동의 수고에 '상응'하고자 그가 편안히 먹고 쉬며 재생산의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가정환경을 만드는 수고를 나 역시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 세대를 위한 자녀 출산과 양육 그리고 한 사람의 인격체를 키우기 위해 교육에 공을 들임으로써 사회에 일부분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가끔 도를 넘어선 책임감으로 가족들에게 원성을 사는 적도 있었지만 그것이 내 딴엔 그들을 사랑하는 최고의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부캐(원래 캐릭터가 아닌 또 다른 캐릭터)를 소망한다. 본캐의 삶의 비중을 줄이고 비축한 에너지로 부캐의 삶을 살아갈 준비를 한다. 나의 부캐가 본캐가 될 수 있도록 그들의 불편을 스스로 감수하는 것, 내가 나에게 배분하는 시간의 양이 늘어남을 이기심으로 치부하지 않는 것 ᆢ 그것이 내가 가족들에게 원하는 '인간적 존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