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 되면 우리 집 거실 한쪽 벽면을 채운 오디오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렀다. 새소리처럼 청아한 음색으로 노래하는 그녀는 발음도 특이한 '나나 무스쿠리'. 아빠는 나나 무스쿠리의 노래를 좋아하셨다. 그녀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아빠는 가끔 꺼내는 증거로 장식장 제일 높은 칸에 놓여 있던 사이펀 커피 추출 기구를 꺼내 커피를 우리셨다. 과학실험실의 기구처럼 생긴 그 동그란 유리 주전자엔 알코올 대신 까만 커피 액이 똑똑 떨어졌다.
나는 그 옆에서 LP 판 껍데기 가득 웃고 있는 검은 생머리와 검은 뿔테 안경을 쓴 그녀의 얼굴을 보며 자주 들어 익숙한 노랫가락을 흥얼거리곤 했다. 나나 무스쿠리, 패티킴, 조영남 그리고 영화음악 모음집까지, 집에 있으면 자연스레 듣게 되던 그 노래들이 어린 시절 나도 참 좋았다.
아빠는 장남이었다. 우리 집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비롯하여 삼촌, 고모들이 함께 살던 대가족이었다. 삼촌도 고모도 결혼을 해 나가고,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유난히 까다롭던 할머니마저 삼촌 집으로 가신 후 아빠는, 아빠가 만든 가족만 데리고 이사를 하셨다. 넓은 마당과 거실에 이층으로 이어지는 실내 계단이 있던 집, 그 집에서 아빠는 거실에도 마당에도 스피커를 달으셨다. 예민하고 까탈스러워서 음악 트는 것조차 정신 사납다 하시던 할머니도 없는 집에서, 뒷짐을 진 채 집안을 뱅글뱅글 돌아다니며 본인의 선곡대로 음악을 즐기는 모습은 내가 보기에도 자유롭고 행복하게 느껴졌다.
아빠는 그 집을 참 좋아했던 것 같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을 내 힘으로 만들었으니 각별한 애정이 갔을 거라고 충분히 공감이 간다. 돌절구에 심은, 푸른 잎을 많이 가진 옥잠화가 하얀 꽃을 눈부시게 피워 올리고, 나무를 파서 만든 돼지 밥그릇에서는 빨간 제라늄이 낮게 펼쳐져 있는 황홀했던 마당에서 아빠는 음악을 들으며 우려낸 커피를 마셨다. 나나 무스쿠리가 노래를 부르던 그 시절의 아빠는 풍요로웠고, 평화로웠고, 본인이 정해 놓은 어떤 지점까지 거의 다 온 듯 자신감에 차 있어서, 어쩌면 아빠 인생의 ' 화양연화 (花樣年華) '같은 때였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갑자기 쓰러지셨다. 몇 달 입원하면 나을 줄 알았던 아빠는 퇴원 후에도 오랫동안 전처럼 회복되지는 못하셨다. 더 이상 나나 무스쿠리는 우리 집 거실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음악 소리를 들으면 머리가 많이 아프다고 하셨다. 행복한 표정으로 집 안팎을 돌아다니던 아빠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거실 안락의자에 표정도 감정도 없이 앉아만 계셨다. 그런 아빠의 감정선에 따라 우리도 슬픔과 기쁨이 그리고 희미한 기대와 실망이 수시로 교차했다. 나나 무스쿠리의 목소리처럼 빛나던 집안 분위기는 실수로 검은 물감을 떨어뜨린 듯 톤 다운되어 빛이 바래졌다. 그리고는, 아빠는 아빠가 그토록 사랑하던 집에서 어느 밤 돌아가셨다.
아빠가 돌아가신 밤이 생각난다. 주무시던 침대에서 돌아가신 후 연락받고 온 병원 관계자들에 의해, 하얀 천을 머리끝까지 쓴 채, 아빠가 많이도 좋아하고 애정을 쏟던 마당을 가로질러 나가던 모습이... 그렇게 아빠는 집을 떠났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나나 무스쿠리' 노래를 들어 본다. 음악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단박에 나를 그 시절 그 거실로 데려다준다. 나나 무스쿠리는 여전히 새소리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고, 마당으로 집안으로, 이층으로 일층으로 아빠가 돌아다닌다. 아빠가... 건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