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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용담 Jan 11. 2022

커fee!


전 내내 머리가 아프길래 어제에 이어 식사량과 먹는 가짓수를 제한한 이유인가 했는데, 아무래도 탄수화물보다는 커피가 공급되지 않은 이유인 것 같다.

피가 마시고 싶다.

오랜 습관 탓에 아침에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어쩐지 뇌가 뿌연 느낌이고, 무엇보다 하루를 시작하는 종소리 같은 의미가 '아침 커피'인 것이다.

무언가는 마셔야겠기에 커피 대신 따뜻한 차를 계속 마시며 책을 보았다.


<숲 속의 자본주의자>

얼마 전 다녀온 제주의 '소리소문' 책방에서 사 온 책이다.

한국에서 최고의 학부를 마치고,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저자는 서울 생활을 정리한 후 남편 그리고 두 아이와 미국 시애틀 외곽에서 한적한 시골살이를 시작한다. 정기적인 급여를 위한 노동을 하지 않고, 원하는 만큼만 일하는 삶이 가능한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한 시골살이가 벌써 7년이 되었다고 한다.

최소한의 노동과 최소한의 지출,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자급자족과 시대가 발전함으로써 노력하지 않아도 이미 곁에 와 있는 좋은 환경들을 최대한 이용하며 살아가는 일상이 소소하게 적혀있다.

지출을 줄이기 위해 커피를 끊은 저자의 이야기가 오늘의 나에게 매우 공감이 된다.

나에게 커피도 그랬다. 커피를 마시는 분위기, 아름다운 커피 기계들, 그리고 감할 수 있는 수준에서 다소 과한 돈을 쓴다는 사치스러운 일탈의 기분, 커피를 마시는 순간의 여유를 즐겼다.

아주 바쁜 출근 시간, 그날 처리해야 하는 업무에 대한 부담감에서 잠깐 해방되는 느낌도 포함해서. 이 모든 것이 커피의 기쁨이었다.

·_1장_제철에 블랙베리를 따는 삶 (p.48)



나 또한 그랬을지 모르겠다.

여고생 시절, 어떤 소설 속에서 읽었던, 자신의 일로 밤을 꼬박 새우고 빈속에 마시는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대신하던 젊은 여자의 모습.

소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장면 묘사는 강렬하게 가슴에 남아, 어서 나도 어른 되어 신새벽 마른입에 한잔 털어 넣고만 싶던 커피!

커피가 몸에 미치는 효과나 영향보다는 심리적으로 끼치는 거부할 수 없는 것들- 향과 공간과 함께 향유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들까지!

그것들을 사랑하다 보니 어느새 일상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루틴으로 자리 잡을 만큼 중독이 되어 버린 거겠지만.

어쨌든 나는 커피가 좋다.

이번 단식 일정을 기회 삼아 커피와도 작별을 해볼까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젓는다.

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 '우리, 커피 한잔해요'라는 따뜻하고 향기로운 말을 할 수 없다면 살아가는 것이 훨씬 재미 없어질 것이 확실하니까!


Ditz <afternoon coff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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