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라인드 사이드> 중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브리서 11장 1절)
올 한 해는 진이 빠지는 시간들의 연속이다.
한 가지 상황을 두고 '믿음'과 '의심'이 같은 바다에서의 밀물과 썰물처럼 내 안에서 반복을 한다.
사실, 믿고 안 믿고는 나의 몫인 거다.
바다처럼 출렁이듯 하는 상대방의 말들을, 마음에 드는 조개껍질을 줍듯 어떤 말들은 믿음의 바구니로,
어떤 말들은 의심의 바구니로 주워 담는 건 바로 나니까.
나는 열 개를 가지고도 혹시 미흡할지 모를 하나를 대비해 아홉 개를 가졌다 말하는 사람이고,
그 사람은 다섯 개를 가지고도 자기만의 공식으로 분화시켜 열 개로 만들어 버리는 사람이었다.
나는 내 성향이 그러하기에 다른 사람도 그런 줄만 알고, 그 사람이 말하는 열 개를 다 믿어버렸었다.
부풀려 말한 그 사람 탓을 하기엔 믿음이라는 말에 숨긴 내 욕심이 열개만큼이었을테지.
열 개의 실체가 다섯 개라는 걸 알아버린 순간부터, 열 개의 믿음은 열 개의 의심이 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성경 구절이 있다.
'믿음'과 '실상'의 관계는 무엇이며, 그 둘 사이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
'믿음'은 내가 바라고 있는 것들이 '실제로 이루어질 거라는 확신'이다.
그 둘 사이에는 강력한 나의 '소망'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무언가를 구하고, 기원하고, 발원하고, 기도한다.
나의 '소망'은 변주곡처럼 '욕심'을 주제로 여러 가지 변형된 가지를 뻗는다.
그래서 자주, 너무 많이 분화된 소망의 가지들 속에서 나의 '참 소망'을 잃어버린다.
타인을 향해 날렸던 나의 막연한 소망이 의심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헛된 믿음 말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는,
내가 모태에 지어지기도 전에 나를 위해 미리 써 두었다는 하나님의 시나리오를
한 치의 의심 없이 믿고 싶다.
나는 마치 바람 앞의 겨처럼 중심 없이 살아가지만,
내가 어느 바람을 타고 날아올라 아무 곳에 떨어진대도 그 모든 것이 완벽한 시나리오의 한 컷임을
믿으며 살고 싶다.
아직 오지 않은 것(yet)을 이미 와 있는 것(already)으로 만드는 힘!
그것이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