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ErA May 23. 2023

고양이

닫다. 그리고 닿다

서늘한 봄비가 내리던 날. 작은 노란 고양이 한 마리가 태어났다.

꼬리 끝이 갈고리 모양으로 휘어진, 방어의 언어를 가진 작은 노란 고양이.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길로 내몰린 형제들을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는 새 꼬리를 움츠릴 수밖에 없었겠지. 


시간과 계절의 간격을 두고 작은 고양이는 그의 손길과 시선을 받아들였다.

철저하게 자신 만의 방식대로.


태양의 고도가 가장 높아지는 시간.
꼬리 끝을 살랑이고 말랑이는 걸음으로 돌풀 가득 핀 자리로 그를 이끈다.
새로 돋아나 물기를 머금은 돌풀 위, 마당의 버드나무 잎 부딪히는 소리.

딱따구리의 퍼득거림. 주고받는 장난과 웃음.

자연의 소리와 볕을 온전히 느끼며, 사랑스러운 장난을 치는 순간에도 그 작은 고양이는 여전히 꼬리 끝을 움츠리고 있다.


태양 빛이 늘어져 뒤뜰의 풀숲에 해가 들면 작은 고양이는 그곳으로 걸어간다.

화려한 장난감을 눈앞에 흔들고 아쉬운 눈빛과 마음을 가득 보내 보아도

그저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뒤뜰만을 향해 걸어간다.


풀숲에 몸을 뉘인 작은 노란 고양이를 그는 멀리서 바라본다.


 고양이를 감싼 고요한 공기의 흐름. 고요히 파고든 고독.
 주변의 소음과 시선을 단절 한 채, 깊게 들어보는 내면의 소리.
 꼬리 끝에 서린 불안을 찬찬히 가다듬는 시간을 보낼 것이다.


내일의 해가 뜨면 빛이 내리쬐는 돌풀의 자리로 그를 이끌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시간을 보낼 것이다.


서정연 씀


오늘, 기분 어때?/실크에 채색/100x100cm/2023

<작가 소개>

안미선(Ahn Mi Sun)

개인전 16회(부산, 도쿄, 홍콩, 대만, 중국)

기획초대전 및 아트페어 100여 회


작가 작품 인터뷰 영상 

"서로의 언어를 읽을 수 있을 때 자발적 고독을 즐길 수 있다." by 안미선 작가 



매거진의 이전글 팬지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