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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rA Jun 06. 2023

쏟아지는 별을 품은 호수를 볼 거야

시끌시끌한 마을을 뒤로한 채 한적한 오솔길로 접어든다.

인공적인 소음과 어지러운 주변 시선이 걷힌다.

오늘 생존을 위한 나의 분주함과 애씀은 다행히 저 밑 마을에 처박아두고 왔다.


가끔은 미처 채우지 못한 욕심과 지질한 열등감을 온몸 가득 덕지덕지 붙이고 적막한 숲길 한편에서 신랄하게 자아비판에 열을 올린다. 이 행위의 주체도, 객체도 모두 '나'다.  

그런 다음에는 한동안 오솔길을 찾지 않는다.

시끌시끌한 마을 어딘가에 조용히 웅크린 채 여기서 생존할 수 있을지를 묻고 또 묻는다. 그러다 다른 마을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거긴 여기와 다른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이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어수선한 감정에 한참 시달리다 보면 어느새 감정은 중립 상태가 된다.  그러면 나는 다시 오솔길을 찾는다.


예전에는 오솔길 몰랐다. 마을 안을 서성일 뿐이었다. 마을 중앙 어디쯤 있을 것 같은 화려한 성의 입구를 찾는데 열을 올리면서 말이다. 거기로 인도하는 가이드나 표지가 있는 줄 알았고, 거기에 쉽게 도달하는 프리패스가 있는 줄 알았다.


나와 비슷하게 출발한 남들은 그 거대한 성을 찾았는지 모르겠지만, 난 아직 찾지 못했다. 능력 없는 자의 변명일 수 있겠지만, 지금은 찾을 생각이 없어졌다. 그 대신 마을 밖으로 이어진 오솔길을 더 자주 찾기로 한다.


무리 안에서 우르르 몰려다니며 정체성을 헌납하기보다는 오롯이 나와 동행하며 얘기할 수 있는 고요한 그 길이 좋다. 그 길을 따라 조금씩 조금씩 안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그것들을 나만의 언어로 옮긴다.


지금은 이전에 다녀간 사람들의 발걸음이 만들어낸 길을 따라 걷고 있다. 햇빛을 받아 싱그럽고 온순한 나무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고유한 빛깔을 뽐내는 풀꽃들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바람 소리 따라 경쾌한 리듬을 만들어내는 개울물이 있는 그런 길 말이다.


요즘은 좀 더 숲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자주 든다. 안개에 시야가 흐려지고, 정체 모를 생명체가 내는 소리에 괜히 긴장되고, 서늘한 숲의 기운으로 몸이 저절로 움츠려드는 그런 곳 말이다. 그러려면 마을과 한참 거리를 둬야 할 수도 있다. 길 안내도가 없는 곳을 혼자 걸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다 언젠가는 그 마을로 내려가지 않겠다고 다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은 몸도 마음도 갈팡질팡이다. 마을 생활은 여전히 긴장되고, 압박감을 주지만, 그로 인해 받는 보상을 포기할 용기가 없다.


그때, 나를 황급히 마을로 불러들이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 배고파! 오늘 저녁 뭐 먹어?"

난 주저 없이 방향을 바꿔 마을로 뛰어내려 간다. 난 아직 마을에서 기쁘게 해야 할 일이 있다.

그 녀석은 언젠가 자신이 원하는 마을로, 자신 만 오솔길, 자신이 선택한 숲을 찾아 떠날 테다. 거기로 나를 가끔 초청해 주면 감사할 뿐이다.


예전보다 난 오솔길을 더 자주 오른다. 그리고 조금씩 더 깊이 들어간다. 아직은 가다 말고 다시 내려오지만, 조금 더 지나면 난 누구도 찾지 않은 미지의 숲 속에서 한없이 자유할 테고 그때면 나만의 글을 깊이 세심하게 써 내려가고 있을 테다.  


오솔길 너머 밤하늘 쏟아지는 모든 별들을 품은 호수가 내 앞 펼쳐지는 상상을 한다. 호숫물에 담긴 별의 색깔과 별의 크기, 별의 기운과 감정을 읽어내고 그것들을 쉴 새 없이 풀어내는 그날을 상상하며 기대한다.  


사진: Unsplash의 Jackson Hend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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