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호선 지하철 역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친구와의 편한 만남이 아닌 업무 관련한 공식적인 일정이었던 만큼 예정된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서둘렀다. 주변을 살필 여유 없이 지하철 역 입구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덤벙덤벙 뛰어내려 가는데 반대편에서 엄마와 아들이 다정하게 웃으며 서로 손을 꼭 잡고 천천히 계단을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아들은 적어도 대학생 이상으로 보이는 장성한 청년이었고, 그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은 이미 하트로 꽉 차있었다. 나의 청력이 아직 정상적인 수준이라면 그들은 엄마와 아들의 관계가 틀림없었다.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이들 모자의 살가움은 번잡한나의 상황 가운데서도쉽게 흩어지지 않았다.
마주 잡은 손이 조금이라도 헐거워지면 제발 손을 꼭 좀 잡으라고 칭얼대던 꼬마 녀석은 내 키를 앞지르기 시작하면서 부터나와 나란히 손을 잡고 걷는 일을 몹시 어색해했다.
직접적인 충전보다는 블루투스 방식의 보다 고차원적인 사랑의 충전 방식을 선호하는 아들의 선택을 난 별 서운해하지 않았다. 사실 난 다른 엄마처럼 감정의 표현이나 전달 과정이 그렇게 다채롭거나 풍부하지 않다. 이런 날 딱 반만 닮았다 하더라도 아들의 다소 정제된 표현 방식은 내게 그리 이상할 게 없다. 오히려 반대였다면 내가 적잖이 당황했을 수 있다.
그런데 말이지, 난 아직 커가는 아들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고 있다. 보이지 않게 말이다.
나조차 아직도 어느 인생 경로가 맞는지 찾지 못하면서, 아들에게는 마치 그게 정답인 듯한 삶의 방식대로, 계획한 방식대로 그렇게 살아가길 바라면서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있다.
불확실한 상황은 통제하고, 직감적으로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것은 미리 차단하고, 뭐든 계획하고 다듬어서 그에 합당한 결실이 나오기를 바라는 엄마다. 아주 단편적이고 미흡한 경험을 가지고 내린 결정이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말이다.
나의 나침반이 고장 났는지도 모르면서 아이의 나침반을 저평가하며 사용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내가 마련한 안전지대에 있어야만 예상치 못한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고 우기는 엄마다.
엄마! 내가 알아서 할게! 나 못 믿어?
잘잘한 나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내뱉는 말이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이가 알아서 할 공간을 마련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슬며시 든다. 너무 아이 손을 꼭 잡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마음은 불확실성에 직면할 용기를 낼 때 성장합니다. 우리 마음대로 앞일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참아낼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가장 현명해집니다.
손을 조금 덜 세게 쥐고 더 활짝 편 상태로 살 수 있길 바랍니다. 조금 덜 통제하고 더 신뢰하길 바랍니다. (I May Be Wrong,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이 책의 저자는 미래를 통제하고 예견하려는 헛된 시도를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럴 용기가 있다면 그 불확실한 공간에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했다.
아들에게 기적의 공간을 만들어줘야겠다.
안개 자욱한 불확실성 안에서 때론 길을 잃더라도 자기만의 나침반으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 가슴 벅찬 기적을 경험한 아들과 나중에 손 꼭 잡고 도란도란 걸어가는 게 내가 바라는 기적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