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배와 소인배의 차이
무더운 여름이 고개를 들어 올리며 오후부터 공기는 팽팽한 날이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북콘서트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점심밥도 잊은 채 허겁지겁 콘서트가 열리는 강당으로 향했다.
이미 많은 사람이 빼빼로마냥 빽빽하게 일자로 줄을 서며 강당으로 호기롭게 들어갔다.
나도 성난 파도처럼 그 안으로 밀려 들어가 구석에 자리를 잡고 새학기 선생님을 기다리는 초등학교 학생처럼 가방에서 꺼낸 작가의 책을 부둥켜안고 사인을 받을 생각에 엉덩이는 반쯤 들려있었다.
귀를 애는 듯한 박수소리와 함께 작가가 등장했다. 특유의 인자한 미소로 인사를 한 후 책의 내용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 이어졌다. 작가는 당혹스러운 질문에도 눈을 마주 보며 성심성의껏 대답하려 노력했다.
30분쯤 지나자 순간 정적이 흐르는 시간이 발생했고, 이때다 싶어 나도 준비한 질문을 되뇌이며 손을 번쩍 들어 질문을 이어갔다.
사실 질문을 하기전에 식상한 질문을 하기 싫어서 내가 하는 질문을 다른 사람이 한 적은 없는지 인터넷을 통해 기사를 읽고 또 읽으면서 중첩되는 질문을 배재한 후 좋아하는 글귀의 해석이 궁금해서 선택하게 되었다.
"작가님께서 사람으로 표현한 소나무의 진액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고, 그렇게 생각한 이유에 대해 궁금합니다"
무심히 턱을괸 손을 바닥에 내려놓고 흥미롭다는 듯 나를 가리키며 작가는 말했다.
"소나무의 진액은 너무 끈적거리지도 너무 달라붙지도 않아요. 저는 그걸 사람의 사랑이라 생각하며 썼어요. 사랑은 그런거 같아요. 메마르지도 않고 한쪽만 너무 붙지도 않는 이미 그 자리에 있었던 '공기'와 같이 생각해야 하는 것 같아요"
다들 무언의 압박이라도 받은 듯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작가의 말에 동조하고 이내 감명한 듯 '오~'를 외치는 사람들도 많았다.
모두들 하나의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며 눈으로 말하는 듯했다.
"너도 얼른 고개를 끄덕이렴. 안 그럼 뜨거운 회초리 맛을 보게 될 테야"
거대한 중력이 짓누르듯 작가를 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이 거의 끝나갈 무렵 작가가 아쉬운 듯한 어조로 말했다
"마지막으로 저에게 하고싶은 얘기가 있다면 스스럼없이 하세요"
그말을 기다린 듯 중간에서 대학생처럼 앳되어 보이는 한 여자가 손을 번쩍 들며 거침없이 말했다.
"작가님과 끝나고 맞담배를 피우고 싶어요"
순간 정적이 흐르고 공기가 무거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사회자는 다급하게 작가를 쳐다보며 상황을 무마시키기 위해 손을 저으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당혹스러운 질문에 모두들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사회자는 "그런 건 나가서 혼자 하셔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상황을 무마시키려 했다.
순간 정적을 깨며 작가가 말했다
"저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얘기군요. 기회가 되면 담배 말고 재밌는 이야기를 나눠봐요"
질문이 일단락되고 작가의 책에 사인을 받기 위해 다시 긴 빼빼로의 한 부분이 되어 사인을 받았다.
사인이 부서질라 책을 허겁지겁 가방에 넣고, 기쁜 마음으로 강당밖에 있는 음료수를 하나 뽑아서 먹고 있는데 뒤쪽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질문을 한 여대생이 친구들 사이에서 흐느끼며 울고 있었다.
강당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볼멘소리를 하며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번개처럼 갑자기 강당입구에서 작가가 나오더니 여대생 앞으로 달려갔다
멀리 있어 흐릿하게 말소리가 들렸지만 이 말을 똑똑히 기억한다
"난 괜찮아요"
여대생은 연거푸 고개를 숙이며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취했고, 작가는 그런 여대생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그게 의도되었든 의도되지 않았든 간에 그런 상황에서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진정한 대인배의 성품을 가진 사람이 있구나"
"괜찮다고 말해주고 안으려고 하는 사람이 진정한 작가구나"
이 글을 쓰면서 사랑하는 그녀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자기는 어떤 사람이 대인배 같아?"
그녀는 거리낌 없이 순수한 말투로 대답했다
"맛있는 걸 거리낌없이 다 사주는 건 대인배야. 소인배들은 더치페이를 하지"
"그렇구나 그럼 자기는 친구들이랑 더치페이 안해?"
"그래서 난 소인배야, 대인배들은 그래서 지갑이 얇은 사람이 많아"
인터넷에서 말한 대인배의 법칙은 이렇게 나와있다.
"냉면을 시켰는데 젓가락을 안 줬을 때 손가락으로 먹어야 합니다. 그게 진정한 대인배입니다."
대인배를 따라가는 건 쉽지않은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