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와 각인
어려서부터 향기에 민감했던 걸까?
그 사람 특유의 채취나 향기를 통하여 나는 그 사람을 인식했다.
그리고, 그 향기에 이끌려 점점 알 수 없는 그 사람의 영역에 내가 '각인'되는 듯했다.
체온에 이끌려 그 사람의 온기 속에 빨려 들어가면 그 영역의 정점에는 항상 향기의 발자취가 있는 듯했다.
그 발자취를 따라가면 내 몸을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몰아붙여도 항상 눈을 뜨지 않았다.
그냥 그곳에 잠겨버렸다.
내가 처음 좋아한 향은 어머니의 향기이다.
유치원에서 돌아와 어머니의 품속 안에 들어가 있으면 그곳에는 오렌지와 감귤을 섞어서 말린 후에 따뜻한 보리차를 데워 넣은듯한 향기가 났다
달콤하면서 부드러운 향기에 취해서 하염없이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면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자애로운 마음을 담아 이마와 손등에 뽀뽀를 해주시며 나를 온전히 가슴에 쓸어 담았다.
햇살이 하나의 씨앗을 품듯 그 안에서 피어나는 따뜻한 보리차 향을 기억한다.
아버지를 만나게 되면 항상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한다.
그러면 시원한 박하향과 바다내음을 머금은 스킨향과 마주하게 된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승승장구하던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나고, 우리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된 때가 있었다. 새벽 2시쯤 물을 먹으러 허름한 냉장고 앞을 서성거렸는데 싸늘한 베란다 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천천히 다가가보니 아버지가 처음으로 흐느끼며 울고 계셨다.
공허함 안에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기 위해서 억지로 울음을 참으며 울고 계셨고, 그때의 아버지의 등뒤에서는 시원한 박하향이 담긴 고독과 외로움의 향기가 번졌다.
그날밤 이후에 박하사탕을 먹으면 나 자신도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참지 못하고 뱉어버렸다.
처음 그녀를 만난 건 모든 것이 멈춰지는 순간의 절정에 서있는 코로나 시기였다.
멀리서 손을 흔들며 어색하게 내차에 탄 그녀에게서 딸기향 풍선껌과 복숭아향이 어우러진 꽃향이 났다. 어색한 우리는 앞만 보며 이야기를 나눴고, 슬쩍 쳐다본 그녀의 옆모습은 설레임과 따뜻한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머릿속과 심장에서 쿵쾅거리며 용암이 솟구쳤지만,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태연하게 그녀에게 한 걸음씩 다가갔다.
그날 바다를 거닐며 싱그러운 바다냄새와 그녀의 꽃향이 어우러져 이내 사랑스러운 향기를 꽃피웠다.
그녀와 만남을 시작하고 손을 잡고 산책 중에 문득 사랑스러운 그녀가 내게 말했다
"오빠는 오빠 특유의 부드럽고 달콤한 향기가 나"
나도 누군가에게 어떠한 향기로 기억된다는 걸 그날 느끼게 되었다.
눈을 감고 시각적인 한계를 넘어서 그 사람을 발견하는 첫 번째는 향기이다.
두 번째는 감싸는 체온, 세 번째는 따뜻한 음성.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그 한 사람을 만들고 사랑하게 된다.
설령 그것이 내 기억 속에 안 좋은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따뜻한 향으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땅만 보며 살지 않으려 했다.
앞을 보며 그 사람의 향기를 맡고 살려고 했다.
땅만 보며 직접 그 사람의 향을 맡지 못하면 행복한 그 사람의 발자취를 따라가지 못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