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켜지 않는 밤
불을 켜지 않고 방 안에 앉아있는 밤이 있다.
이따금 저녁이 깊어질 때면 굳이 형광등을 켜지 않고, 어둑한 방 안에서 조용히 앉아 있다가 작은 스탠드 불빛만으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낸다.
무거운 하루를 딛고 들어온 날, 별다른 계획도 움직임도 없이 내 자리에 앉아 밤의 소리를 듣는다.
“왜 이렇게 어둡게 있어?” 누군가 물으면 대답은 늘 이렇다
“그냥, 조용한 게 좋아서...”
굳이 “머릿속이 터질 듯 복잡해서”라고 털어놓는 일은 나조차도 어색했다.
그러면 끝내 나서지 않고 내 얼굴을 덤덤히 건너다 보았다.
그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늘이 드리운 날 나는 조용히 어둠을 즐겼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조심스레 불을 끄고 TV도 켜지 않은 채 적막한 고요 속에서 내 숨소리에 취하듯 큼큼한 목재냄새와 멀리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를 듣는다.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하여 내면의 소리와 대화를 하고 나면 벅찬 소용돌이를 머금고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삶의 여유가 생기는 날은 한 치의 어둠도 두렵다.
불을 환하게 밝히고 소음을 틀어 활기찬 기분 안으로 내 하루의 총량을 쏟아붓는다.
혼자 어두운 곳에 앉아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어김없이 또 한 번 목소리가 메아리친다
“불 좀 켜지 그래?”
그럼 마지막 말을 수건을 짜내듯 비틀어진 말투로 대답한다
“귀찮아, 그냥 이대로 있을게.”
이미 오늘 하루 온 에너지를 다 써버려, 불조차 켤 힘이 남지 않은 날이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바라는 것도, 어둠을 선호하는 것도 결국은 ‘잠깐 쉬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의 다른 이름이었다.
어쩌면 점점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이유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하루의 치열함 속에 찌든 우리는 조용한 어둠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어둠이 충분히 익숙해지면, 우리는 조용히 다시 누군가를 찾았다.
누군가를 찾는 첫말은 고양이가 소리 없이 다가올 때의 느낌과 같다.
“불 켜도 돼?” 조심스레 불을 밝히며 가족에게 묻고, 밤이 깊으면 오늘 하루 어땠는지 안부를 궁금해한다.
혼자가 좋다는 건 “잠깐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싶다”는 뜻이지만 영원히 혼자이고 싶은 건 아니다
그저 하루에 쓸 에너지의 총량을 다 써서 핸드폰 배터리를 충전하듯 잠시 고요를 머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차를 끓이기로 했다.
차를 끓이고 대화를 시작하면 내 마음의 숲에 다시 들어가 그 상쾌한 웃음을 가져올 수 있다.
내가 차를 끓이고 커피를 만들며 온전히 그 사람에게 집중하면 다시금 함께할 수 있다는 동질감에 사로잡힌다.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는 누군가에게 차를 내어주는 건 어떨까?
그러면 온전한 그 사람의 시간을 기다려줄 수 있지 않을까?
오늘 그녀에게 넌지시 물었다.
'차 한잔 줄까?'
그녀가 수줍게 대답했다.
'난 탄산수로 부탁해~ 얼음 동동 띄워서 시원하게~'
탄산수라도 좋다면 내어드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