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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is Chung Feb 18. 2017

170215 레알 마드리드 vs 나폴리 1차전

교과서적인 카세미루 사용설명서

여러분의 <구독>과 <좋아요>를 먹고 삽니다.





호날두 부진, 벤제마 부진, 베일 부상 등 여러 악재가 겹친 가운데, 지단 감독은 나폴리를 맞이합니다. 당시 나폴리는 메르텐스를 센터포워드로 활용하는 전술로 세리에서 재미를 많이 보고 있었고, 레알 마드리드 공격진들은 하나같이 순발력에 문제를 겪으며 좀처럼 좋은 경기력을 내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번 경기는 오랜 휴식 덕에 선수들의 상태 자체가 많이 좋아졌다는 것이 승리의 결정적인 요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하메스 투입을 하면서도 팀의 수비력과 공격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는 점을 고무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Action Zone. 레알 마드리드 (좌), 나폴리(우)


두 팀의 점유율은 반올림하여 50대 50이고, 미세하게는 레알 마드리드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다만 액션 존 기준으로 볼 때 공 자체는 나폴리 진영에서 더 많이 머물렀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슈팅과 유효슈팅의 개수 역시 레알 마드리드가 압도적으로 차이나는 점을 보아, 레알 마드리드가 압박을 많이 했고, 공격 찬스를 많이 가져가며 수비력을 어느 정도 잘 유지했다… 정도로 경기 양상을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 선발 출장 명단.



이날 지단 감독은 하메스를 선발로 내보냅니다. 크로스-모드리치-카세미루 3명을 쓰는 전술에서는 속도와 드리블에 강점이 있는 선수들을 투입하던 패턴에서 벗어난 겁니다. 카세미루가 패스 플레이에 도움이 되지 못하기에 크로스와 모드리치가 공격진과 가까운 곳에서 공을 받기 힘듭니다. 그래서 1:1에서 강점을 보이는 선수들을 선호해 왔던 건데, 바스케스가 있는데도 하메스 투입을 강행한 것은 체력 안배를 위해서였거나, 다른 노림수가 있다는 뜻으로 여겨졌습니다.





나폴리는 왼쪽에 지우친 빌드업과, 변칙적인 오른쪽의 오버래핑을 이용한 역습 위주로 경기를 운영해 나갑니다. 마르셀로가 공격적인 풀백들이기 때문에, 왼쪽에서 공을 돌리다 빠르게 방향을 바꿔 오른쪽에서 치고 들어가는 쪽을 택한 걸로 보입니다. 특히 후반 들어 마르셀로는 위치선정에서 많은 문제를 겪었고, 바란이 메르텐스를 제어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나폴리 첫 골. 훌륭한 움직임이었고, 키퍼를 잘 속여넘겼다.


첫 번째 골에서 나폴리가 정말 잘 준비했다고 보는 것이, 메르텐스가 뒤로 나오며 바란을 앞으로 끌어내고, 함식이 찔러주는 패스를 인시녜가 수비수 사이로 들어가 받고 슛을 찹니다. 나바스가 앞으로 나온 틈을 타서 넣은 영리한 슛도 슛이지만, 수비수를 끌어내고 그 사이의 공간을 활용하는 플레이만큼은 칭찬받아야 한다고 봐요.  


나폴리 진영 + 아군 진영 전방에서 볼 경합, 인터셉트, 태클이 많이 발생했고, 성공적이었다.


이번 경기에서 공격진과 크로스-모드리치는 나폴리 수비진을 적극적으로 압박을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줬습니다. 13초 만에 골찬스를 만들 수 있었고,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나폴리 진영에서 공을 뺏고 빠르게 달려드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압박 역할 분배가 잘 되지 않아 사인이 안 맞거나 타이밍이 늦는 문제들이 나오고는 있지만, 그 빈도는 많이 줄었으며 성공적으로 나폴리를 괴롭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좋은 압박에서 나온 역습골들이 2번째, 3번째 골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팀원들이 카세미루의 수비력을 믿고, 적극적으로 움직여준 까닭에 나폴리가 계속 수비에서 실수하며 맞불을 놓는 상황이 되었는데, 맞불을 놓는 상황에서는 대개 전체적인 개인 클래스가 높은 팀이 유리하게 마련입니다. 故 빌라노바 감독의 바르셀로나가 좋은 예시입니다.




오늘 지단 감독이 보여준 전술 중 가장 특이한 부분은, 빌드업 시에도 카세미루가 밑에 머물러 있거나, 크로스와 같은 라인에 서 있는 경우가 많았다는 겁니다. 원래 카세미루는 빌드업 과정에서 패스미스를 종종 범하고, 압박에 대처하는 속도가 느립니다. 그래서 지단 감독은 공격 시에는 크로스가 내려가고, 카세미루가 올라가고, 수비 시에는 그 반대가 되는 쪽을 택해왔습니다.


이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2가지입니다.


1. 자리를 억지로 바꿔야 한다. 비효율적인 체력 소모가 많다.

2. 크로스가 공격 시 앞으로 전진하지 못한다.


크로스는 넓은 시야와 세계 최고의 킥력을 갖고 있는 선수입니다. 패스의 사정거리가 길기 때문에 조금만 전진할 수 있어도 상대 패널티 에어리어를 공략할 수 있는데, 카세미루와 자리를 바꿔 후방에서 시작하니 그게 불가능합니다. 경기장을 3 등분했을 때, 2/3 위치까지는 어떻게든 공을 보낼 수 있더라도 1/3 위치에 있는 공격수까지는 닿기가 어렵죠.


이날 카세미루는 뒤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신 롱패스를 뻥뻥 날려댑니다. 카세미루의 롱패스를 받기 위해 호날두/벤제마(번갈아가며)와 하메스는 팀이 공을 가진 직후 바로 윙의 자리로 들어갔습니다. 혹은 마르셀로와 카르바할이 적극적으로 전진하며 그 자리를 대신하기도 했지요. 


카세미루 대시보드. 장거리 패스에 주목.


베니테즈 시절에 보여준 카세미루의 킥은 수준급입니다. 저렇게 보내도 성공률이 꽤 높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지단 감독은 카세미루에게 횡으로, 일단 빠르게, 길게 날릴 것을 주문한 것으로 보입니다. 덕분에 나폴리 공격수들이 압박하기 전에 빠르게 사이드로 보낼 수 있었지요. 


이 덕에 크로스는 좀 더 앞에서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볼 받으러 내려갈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적은 점유율을 가지고도 더 위험한 상황을 연출할 수 있었고, 공격수들이 골문 앞에서 많은 찬스를 만들 수 있었다고 봅니다. 



이타두 대시보드.



그리고 오늘 가장 고무적인 부분은 호날두와 벤제마의 몸 상태였습니다. 지단 감독이 쉬는 동안 선수들이 몸 상태를 잘 끌어올렸다고 보는 것이, 일단 순발력 부족으로 공을 뺏기는 상황이 잘 나오지 않았고, 호날두가 지난 시즌과 같이 사이드와 중앙을 오가며 경기를 원활하게 풀어나갔기 때문입니다.


벤제마의 골. 호날두가 뒤로 빠지는 움직임에 주목.


호날두의 클래스를 알 수 있는 부분이 벤제마의 골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시다시피 토니가 전진할 수 있기에 골대 근처의 하메스한테 공을 보낼 수 있었고, 하메스는 자신이 미끼가 되어 수비를 몰고, 뒤에 있는 카르바할이 안전하게 크로스를 올릴 수 있도록 해줍니다. 여기서 호날두가 벤제마를 위해 미끼가 되어줍니다. 수비수 뒤로 빠지는 척하며 시선을 유도하고, 일부러 이른 타이밍에 점프를 하여 수비수들이 호날두에게 집중하게 만들었지요. 


이번 경기에서는 이타두의 모습을 많이 보여줬는데, 하메스와의 원투로 2줄 수비를 빠르게 끌어들이고, 크로스에게 넘겨 2번째 골을 기록하는 부분에서 스타일 변화에 노력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호날두가 좀 더 플레이메이커/미드필더의 마인드를 갖고 뛴다면 1 시즌 정도는 더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벤제마 역시 호날두가 중앙으로 빠질 때 사이드로 내려와 공을 받고 전진하는 등, 부분적으로는 모라타가 해주던 역할을 문제없이 소화할 수 있었고요. 사이드 중심으로, 굉장히 광범위하게 움직여줬습니다. 팀은 철저히 사이드 -> 중앙으로 들어가는 패턴을 보였는데, 벤제마 가사이드에 같이 들어가 공간을 만들어주거나, 공을 이어주는 부분이 뛰어났다고 봐요. 다만 오늘 경기에서는 결정력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하메스가 나온 만큼 하메스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었는데요, 하메스는 지단 감독 이후로 보여준 최고의 폼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지단 감독이 요구하는 압박을 정확히 해결해냈고, 사이드 플레이메이커로서 카르바할의 오버래핑을 돕고, 모드리치와 공을 주고받으며 가끔씩 정확한 크로스를 구사했습니다.


하메스 대시보드. 사이드에서 집중적으로 머무르며 패스의 연결고리가 됨.


정확히는 카르바할이 사이드 공간을 잘 파고 직접적인 위협을 더 많이 하는 대신, 하메스는 좀 더 자신에게 맞는 역할을 부여받고 플레이메이킹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팀 자체가 역습을 골자로 템포를 많이 끌어올렸기 때문에, 공격진과의 원투에 뛰어난 하메스가 비교적 활약을 많이 보일 수 있었습니다. 


하메스가 중앙으로 들어가는 움직임에 주목.


토니의 골에도 하메스가 꽤 기여한 것이, 중앙으로 침투하는 움직임을 보여 크로스를 받는 척하고, 두줄 수비가 크로스를 놓치도록 유도를 해줬지요. 덕분에 호날두의 패스를 받은 토니가 안정적인 중거리를 날릴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하메스가 사이드에 주로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사이드를 장악하며 경기를 이끌어나갈 수 있기도 했었지요. 나폴리의 빠른 역습에 위험한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카세미루가 빌드업에 문제를 겪지 않았고, 그래서 모드리치가 좀 더 앞으로 전진할 수 있었고, 하메스도 사이드에서 머무를 수 있는 이상적인 상황이 되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거기다 킥이 좋으니 벤제마에게 직접 택배를 보내기도 했지요.




전체적으로 요약하자면,  팀 단위의 전진과, 강한 압박, 그리고  2줄 수비를 갖추고, 2줄 사이에 카세미루나 모드리치가 들어가는 식으로 해서 라인 사이의 공략에 대비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공격 시에는 사이드로 빠르게 주고 역습을 하거나, 크로스 모드리치의 킥과 전진 능력을 좀 더 앞선에서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줬지요.


카세미루의 애매한 빌드업 능력과, 공격진의 애매한 컨디션이 레알 마드리드의 발목을 잡고 있던 문제였다면, 지단 감독은 공격진의 폼을 끌어올리고, 카세미루의 킥을 최대한 활용해 빌드업 상황에서 생길 수 있는 에러를 많이 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문제가 될 것 같던 수비 부분은 압박 시스템의 정교함과 카세미루가 커버하고 있지요. 거기다 토니는 3선 선수치고 수비력이 약한 거지, 2선 선수 중에서는 수비력이 굉장히 뛰어난 축에 속하니 왼쪽 미드필더로 서면서도 나폴리 수비를 잘 압박했습니다. 다만 공격진이 19일에 열릴 경기, 그리고 그다음에 열릴 리가 경기들을 거치며 얼마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을까가 위험요소가 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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