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튀김의 대모험
요리하는 사람도 아니고 음식비평가도 아니고 요리연구가는 더더욱 아니지만 돈까스의 변화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부분이다.
우리에게 돈까스란 아마 명ㅇ돈까스로 상징되는 경양식 돈까스일거다. 케첩과 데미그라스 흉내 낸 소스 섞어 만든 달근하고 멀건 소스에 샐러드와 마카로니, 깨나 후리카케 얹은 밥 등등
아마 거기에 첫 번째 변화는 습식빵가루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일식 카츠의 등장일 거다. 내가 고등학교 대학 다닐 때 이런 집들이 생겼다. 소스를 따로 주고 소스의 깨를 음식을 기다리며 빻는 집들이 많았고 샐러드드레싱이 참깨나 유자폰즈 베이스로 바뀌기 시작했다. 경양식과 일식 카츠의 대결 구도가 하나의 문화였던 것 같다. 남정네들이 모이면 어느 카츠를 먹을 것인가 고민이 길었다..
그러다 어느새부터 정돈으로 대표할 만한 프리미엄 카츠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부터의 결정적 전환은 튀김 요리로서 돈까스/돈카츠가 고기요리로서 비치는 게 아닌가 싶다. 여기저기서 미디엄으로 익힌 돈까스들이 출시되었고, 그런 집들이 인기를 얻으며 서민음식 돈까스를 먹으려 줄을 서는 모습들이 흔히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면서 한편으로는 고기의 숙성에 대해, 다른 한편은 품종, 요컨대 버크셔나 듀록 같은 것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지금은 사라진 돼지곰탕과 카츠 전문인 도래완생에서 버크셔란 품종의 맛을 봐버렸는데 이건 우리가 알던 애랑 확실히 뭔가 다른 구석이 있는 녀석이었다.
그렇게 카츠 중심부에 은근한 핏기(정확히는 미오글라빈의 잔해)가 있는 카츠가 돈까스 세계의 큰 흐름이 되어가는 동시에 이젠 저온 튀김 돈까스라는 물건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저온 조리의 효과가 무엇인지 난 잘 모른다. 그럼에도 먹어보며 느낀 바를 살펴보면 첫째는 고기의 익힘 정도를 중심부와 바깥을 비교적 균일하게 조리하는 게 가능하고 두 번째는 고기의 보수력 즉 촉촉하고 부드러운 질감을 미디엄 돈까스 보다 더 강하게 살리는 게 이 조리의 목표인 듯하다. 이러면서 부족한 부분을 여기저기서 훈연의 방식으로 덧대기도 한다. 부산의 톤쇼우나 대구의 시오톤 같은 곳들이 저온 조리한 카츠를 훈연하는 집들인데, 고온의 튀김에 비해 부족한 것을 훈연으로 채우는 느낌이다.
여하튼 돈까스라는 어쩌면 뻔하고 정형화돼 음식이 한 20년의 세월을 겪으며 되게 급격한 변화와 도전을 겪는 것 같다. 한편에선 돼지를 바삭 익혀 먹어야 한다는 갈고리촌충의 위협이 사라진 게 있을 테고 돼지 생산량 경쟁이 아니라 다양한 장점을 가진 품종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또 불과 몇 년 새 강화되고 있는 취향과 선호 중심의 소비가 이런 추세를 더 강화하는 것 같다. 그냥 돈까스를 먹는다가 아니라 요리로써 돈까스를 경험한다고나 할까....
전후의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어느 프랑스 경제학자는 현대 자본주의를 취향과 선호의 경제로 갈 거라 설명했지만 사실 우리가 경험한 것은 개성과 취향의 소비가 아니라 한편에선 맥도널디제이션으로 대표되는 획일화된 소비 다른 한편에선 극도의 사치품으로 점철되는 상품 경제였던 거 같다. 그런데 스페셜티 커피의 안착이나 코로나 시기의 위스키 붐 같은 것들이 아직 대중소비의 영역은 아니라도 선호와 취향의 경제 같은걸 여는 거 같단 생각도 든다. 아마 취향과 선호를 가질 수 있는 90년대 이후의 문화적 배경, 사회적 배경, 특히 어린 시절의 경험이 이런 취향과 선호의 경제를 미약하나마 여는 게 아닌가 싶다.
다 적고 나니 돈까스가 허공에 보인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조선과 일본은 겉은 바삭하나 속은 촉촉한 상호 모순 되는 두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데 미친 민족 같다. 프렌치에서 파테나 테린느 같은 요리나 크로와상 같은 빵 안에 젤리나 기름으로 속촉을 만드는 거완 다른 경지인 거 같다. 완벽한 겉바속촉에 대한 이 지독한 강박과 고기요리로 카츠의 진화는 전혀 다른 세계를 열고 이는 양돈 산업도 요리 기술에도 도전이 될 것이다.
내 또래는 대개 한국 발전국가의 호황기 정점에서 어린 시절을 맞았다. 집에서 엄마가 튀겨주는 돈까스, 분식집의 돈까스, 목 힘주고 먹던 경양식집 외식이나 뭐 좀 있던 날 가던 레스토랑의 돈까스가 우리의 몸에 흐른다. 이 우리 영혼의 일부는 어디로 또 이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