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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malldataguru Oct 15. 2016

전 직장인의 미국 통계학 석사 도전기

한 달 차 보고서

빅데이터가 요즘 핫하니까 미국 통계학 석사 과정을 가면 나같이 직장인도 있을 것이고, 수학과는 거리가 조금 있는 다양한 사람이 있겠지!...라는 예상이 산산조각 나기까지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각자 자기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나를 제외한 모든 동기들은 수학이나 통계 전공이었다. 게다가 60명 중 50명은 중국의 유명 대학에서 바로 온 천재들. 하다보다 그중 한 명은 나의 전공 (경제학, 심리학)을 듣고 핵직구를 날리는데:


“Why are youhere?” 너 여기서 뭐하냐?


이 아이들을 보니 나도 그런 생각이 절로 들기 시작했다. 이 중국 천재들 사이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학교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금요일 저녁에 인종을 불문하고 도서관에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앞으로 2년간 미래가 어두워질 것임을 직감했다. 물론, 공부를 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위험한 선택을 한 것이지만, 성적은 쉽게 받고 싶은 옛날 습관은 버리지 못했나 보다.


오리엔테이션 기간 동안은 마치 대학교 1학년 신입생 생활을 다시 재현하는 것 같았다. 똑같은 인사, 똑같은 소개, 그리고 똑같은 화제… 일주일간 무슨 수업을 듣는지에 대한 얘기를 만난 동기 한 테마다 했으니까 최소 59번은 한 것 같다. 학부 때와 차이가 있다면 필자가 나이로 전체 프로그램의 3등이라는 정도? 그리고 동기들과 대화를 하다가 필자의 나이를 듣고 나면 일순간 침묵이 흐른다. 그래도 나는 굴복하지 않으리라 (나는 젋다, 나는 젊다, 나는 젊다). 이 정도 되니 위에 2명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그렇게 우려만 가득 안고 학기가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아직은 직장 생활하면서 굳었던 뇌를 말랑말랑 하게 만들고, 스스로 채워야 할 구멍들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고 있다. 혹시나 미국 통계학 석사 과정을 준비하는 직장인들을 위해 오기 전 준비하거나 미리 알고 들어오면 삶이 매우 편해질 수 있는 것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복습 또 복습]


초반에 수업들은 비교적 기초적인 개념들을 복습하면서 시작하지만, 필자처럼 수학적 기초가 약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오기 전 Multivariate Calculus와 Linear Algebra는 복습하고 오는 것이 좋다. MIT 등의 학교에서 제공하는 공짜 온라인 코스도 있고, 한글로 된 좋은 책들도 시중에 많이 판매되고 있으니 적극적으로 활용하자. 아무리 복습을 잘해도 22, 23살 파릇파릇한 두뇌를 가진 수학/통계학 전공 친구들보다 수학 능력이 뛰어나긴 힘들겠지만, 학교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쿼터제 vs 학기제]


필자도 학기제 학교만 다녀봐서 쿼터제 학교가 어떤 느낌인지 전혀 몰랐다. 쿼터제는 9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1월부터 3월까지, 4월부터 6월까지, 총 3 쿼터가 진행되는 구조다. 각 쿼터마다 보통 3과목씩 수강하는데, 기간이 짧다 보니 진도는 학기제에 비해 1.5배속 한 느낌이다. 수업 첫날부터 진도를 빼고, 숙제를 던져준다.  주말에 숙제와 복습을 해서 겨우 끝내면 또 다른 숙제가 도착하고, 정신 차리고 달력을 보니 다음 주가 중간고사... 조금 익숙해질 때쯤 겨울방학이지 않을까 싶다… 


[Recruiting]


만약 외국에서의 커리어를 생각하고 통계학과 진학하는 직장인이라면, 첫 학기부터 바쁘게 움직일 준비 해야 한다. 대부분의 통계 석사 프로그램은 1~2년 정도기 때문에 첫해부터 인턴/취업을 준비해야 한다. 더군다나 필자처럼 쿼터제라면, 학기 시작한 다음 주부터 채용 설명회가 시작되기 때문에 사전 resume와 interview준비는 미리 하는 것이 좋다. 학교 내 커리어 센터도 활용하도록 하자. 뱅킹과 컨설팅은 가을학기에 인턴을 뽑고, 나머지 업계는 2~3월에 뽑는 것이 일반적이는 참고 바란다.


[프로그램 Focus]


같은 미국 통계학 석사 프로그램이어도 분위기는 천지차이다. 어떤 학교는 취업 사관학교라 불리며 이론적인 부분보다 실용적인 부분에 중점을 두고 공부기간도 1년으로 단축한 학교도 있는 방면에, 어떤 학교는 박사생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이론적인 수업들을 중점적으로 편성한다. 학교 특성도 프로그램의 분위기에 큰 영향을 끼친다. 필자가 재학 중인 University of Chicago는 재미없기로 유명한 학교다. 오죽하면 학생들 사이에서 “Where fun comes to die”라고 말하고 다닐까. 하루는 교수님께서 수업 중에 본인이 제일 자랑스러워하는 통계자료는 “The most fun colleges” 순위에서 학교가 꼴등한 것이라고 행복해하며 말하는 것을 듣고, 소름이 돋았다… 이렇듯 진학할 프로그램의 특성이 본인의 목표와 성격에 맞는지도 미리 파악하자.


[People]


매우 매우 매우 강조해도 부족한 부분이다. 학업적으로나 커리어적으로나 석사에서 사람을 만나고 의미 있는 관계를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학업적으로 먼저 말하자면, 직장 생활을 제법 하고 학교로 돌아온 분이라면, 잊었던 개념들, 공부습관을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이 과정을 조금이라도 순조롭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좋은 동기들과 잘 지내는 것이다. 필자는 인복이 있는 편이라 숙제에서부터 시험공부까지 좋은 동기들의 도움을 톡톡히 받고 있는 중이다. 또한, 교내 있는 다양한 선배들과의 만남을 통해 커리어적인 조언도 많이 얻고 있다. 이들이 없었다면 진짜 일찍이 짐을 싸고 집에 돌아갔을 수도… 학기 초 여러 가지 행사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학업만큼이나 인간관계에도 투자를 하자.


[Others]


대부분 석사생들은 혼자 산다. 독립적으로 지내고 싶은 마음과, 룸메를 할 정도로 잘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입학 전 한국에서 미리 룸메를 구할 수 있다면 구하는 것을 추천한다. 단순이 비용을 절감하는 부분뿐만 아니라, 타지에서 서로 자극이 되고 의지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이 생긴다 (집을 꾸미는 일부터 아팠을 때 서럽지 않은 것까지 다양하다). 필자는 미국 와서 아직까지 제일 잘한 선택이 훌륭한 룸메를 찾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안 좋은 룸메를 찾았을 때는 최악의 선택이 될 수도 있지만, 그만한 리스크를 감내할 가치가 있다. 


아직 1 달차기 때문에 정신이 없지만, 그래도 조금씩 학교생활에 익숙해지고 있다. 물론 이제 갓 학부를 졸업한 22,23살 아이들의 두뇌회전 속도를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동기들이 1시간 소요되는 것을 3시간 동안 붙잡고 있다. 그래도 고생한 만큼 나의 피와 살이 된다는 직장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감정이 오늘도 나에겐 큰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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